20년 전 아이들의 우상이었던 히어로의 '깜짝' 근황

KBS 2TV '울라불라 블루짱'(2004년) 고아성
[인터뷰] "복잡한 마음"에도 '한국이 싫어서'를 택한 고아성의 이끌림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의 계나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직장과 가족,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홀로 뉴질랜드로 떠나는 이야기다. 행복을 찾아 따뜻한 남쪽 나라 뉴질랜드로 떠나는 계나 역의 고아성.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항거:유관순 이야기'가 개봉한 뒤 '한국이 싫어서'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함께 있던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유관순이 한국이 싫으면 어떡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네, 내 인생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배우 고아성이 2020년 영화 '한국이 싫어서'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를 떠올리면서 한 말이다. 유관순도 됐다가 뉴질랜드로 떠나는 지친 직장인도 될 수 있는 유연한 배우, 고아성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년)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 주연작을 들고 관객과 만난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제작 모쿠슈라)이다.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서 고아성은 행복을 찾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가족과 남자친구마저 뒤로한 채 뉴질랜드로 떠나는 20대 청춘 계나 역을 연기했다.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아성은 "여태까지 찍은 작품들은 운명적인 이끌림에서 시작됐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의 말을 인용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성은 신이 부여한 선물'이라는 말을 했어요. 저는 그걸 퍼뜨리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목적이나 의도로 작품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계나 또한 자유의지와 이성이 뚜렷한 인물이죠."

소설 속 계나는 호주로, 영화 속 계나는 뉴질랜드로 떠난다.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한국 떠나는 계나, 모두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고아성이 연기한 계나는 20대 후반의 평범한 인물이다. 취업난을 겪고 직장에 들어갔지만, 출근 시간만 2시간이 걸리고 회사는 부조리로 가득 찼다. 준비된 것 없이 결혼을 하자는 남자친구, 자신의 적금을 깨서 아파트로 이사 가자는 부모, 여기에 추위를 싫어하는 성향까지. 계나는 결국 한국을 떠난다.

그렇다고 해서 뉴질랜드의 삶이 마냥 장밋빛만은 아니다. 영화는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났지만, 한국을 떠나는 것이 맞는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통해 행복과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고아성은 "계나를 향한 저의 마음은 복잡했다"면서 "계나는 '여기서 못 살겠다'고 떠나지만, 남자친구는 '외국에 나가서 사는 게 더 힘들다'고 말한다. 나는 둘 다 동의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저처럼 보시는 분들의 의견이 갈려도 좋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감독님 또한 계나가 한국을 떠나는 걸 모두에게 설득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죠."

극중 인물의 선택을 강요하는 대신 고아성은 "시나리오 속 계나의 흐름과 고민을 잘 담아내고 싶었다"고 짚었다.

"남자친구 가족과 만나는 자리를 찍었을 때인데, 감독님이 '이렇게 차려입은 날에는 싸울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초기 유학생활을 지나 적응하고 오만해질 즈음 '주저앉게 되는 일이 생긴다'고도 했고요. 그런 인간사를 잘 포착하려고 했죠."

그는 "어느 정도 지치고, 자신의 미래도 보이는 특정 시기가 있지 않나. 그 시기를 통해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고 희망했다.

고아성이 본인이 연기한 계나는 "자유의지와 이성이 뚜렷한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작품이 최우선인 배우로 살아갈 것"

극중 계나는 배고프고 춥지만 않으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인물이다. 고아성은 "어렸을 때는 새로운 이벤트가 생기는 것이 행복이었다면 30대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에 맞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늘 주변에 두려고 해요. '한국이 싫어서'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잖아요. 시나리오가 연구하고 파헤쳐야 하는 과제 같은 느낌이라면 원작은 달랐어요. 힘이 되는 문장들을 엽서에 적어두고 항상 가지고 다녔죠."

고아성은 이 엽서를 인터뷰 현장에 들고 왔다. 예쁜 그림이 그려진 엽서 네 장에 빼곡히 적혀 있는 문장들은 그 자체로 고아성의 '행복'이었다. 그는 "뉴질랜드에도 이 엽서를 가지고 가서 틈틈이 읽었다"고 미소 지었다.

KBS 2TV '울라불라 블루짱'

2004년 어린이 드라마로 데뷔해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고아성은 첫 영화인 봉준호 감독의 2006년작 '괴물'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KBS 2TV '울라불라 블루짱'

고아성은 어릴 때부터 자신을 지켜본 분들 덕분에 "든든한 마음"이라며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보여드리는 것이 나의 욕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옷도 잘 입고 싶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공유하고 싶기도 했지만 이제는 배우의 길을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제가 차기작 '파반느' 촬영 때문에 10kg을 찌웠어요. 이 모습으로 홍보를 하는 게 자신이 없지만, 작품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작품이 최우선인 배우로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