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에 무감한 정부 보상 액수부터 언급해”
이태원 참사 사흘 뒤인 11월1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에서 고성이 들렸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저 추모만 하라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에 왜 국회가 들러리를 서야 하느냐.” 이날 행안위에서 행정안전부·경찰청·소방청은 이태원 참사 관련 보고를 할 예정이었다. 당시 행안위 이채익 위원장과 김교흥(더불어민주당)·이만희(국민의힘) 간사는 참사 수습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질의는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이 ‘질문이 금지된 현안 보고’에 항의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11월14일 국회에서 만난 용 의원은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현안 보고”라며 참사를 대하는 정부·여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참사의 원인을 따지거나 책임을 묻는 걸 정쟁으로 프레임 씌우고 허락하지 않는다. 참사의 파급력을 어떻게든 축소하고, 정부가 모든 주도권을 쥐고 이 참사를 ‘사고’ 수준으로 끝내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용혜인 의원에겐 “조용히 슬퍼하기만 할 것을 강요했던 국가의 모습”이 4·16 세월호 참사 때와 겹쳐 보였다. 2014년 4월29일 당시 경희대 4학년이던 용혜인 의원은 청와대 게시판에 ‘우리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침묵시위를 제안했다. 전 국민이 충격을 받고 슬퍼하고 있었다. 혼자 방에 있으면 괴로움이 몰려와 ‘뭐라도 하자’라는 마음이었다.
다음 날인 4월30일 서울 홍익대 앞에 용 의원을 비롯해 검은 옷차림을 한 시민 수십 명이 모여서 ‘가만히 있으라’고 적힌 팻말과 국화를 들고 침묵 행진을 벌였다. 그 뒤로도 용 의원은 “세월호 이후는 달라야 한다”라고 외치며 침묵 행진을 주도하고, 전국의 대학가에 유가족 간담회를 열었다. 4·16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용혜인 의원이 다짐했던 목표는 여전히 ‘미완’이다. 이태원 참사 직후 온라인에 ‘놀러 갔다 죽은 걸 어떡하냐’ ‘왜 추모해야 하느냐’ 따위 글이 올라왔다. 그는 이러한 표현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이라고 지적하면서도, 국가를 향한 신뢰를 만들지 못한 데 대해 정치인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국가 공동체가 나를 지켜야 한다’ ‘나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라는 감각이 국민들에게 전혀 없다. 놀러 가서 죽으면 당연히 놀러 간 사람의 책임이 되는 거다.”
국가를 향한 불신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용 의원은 정부가 개인의 책임이 아님을 명확히 한 뒤 국가 시스템이 부재했음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참사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확신을 주고, 성역 없이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
용 의원이 보기에,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정반대다. 10월31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가 “경찰이나 소방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이건 축제가 아니다. 핼러윈데이에 모이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엿새가 지난 11월4일에야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처음으로 사과 메시지를 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정치가 잘못됐다’고 처음 느꼈던 장면
윤석열 대통령은 이어 경찰 지휘부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 대신, 참사 당시 현장 경찰관 137명의 대응을 문제 삼았다.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130여 명의 경찰이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왜 조치하지 않았나” “제도가 미비해서 대응하지 못했다는 말이 납득이 안 된다” “서울경찰청에서 인원이 보강되거나 용산경찰서에서 추가로 오지 않아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도 현장 실무자들에게만 책임을 지우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는 사이 11월11일 용산경찰서 전 정보계장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숨진 계장은 참사 이후 직원들을 회유·종용해 핼러윈 인파 급증을 우려하는 정보보고서를 삭제하게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용 의원은 이 경찰관의 죽음을 두고 “사법적 책임을 실무자 선에서 끊고자 하는 경찰의 몰아가기식 셀프 수사가 불러온 죽음”이라고 규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실상 사과’만 던져놓고 형사적 책임을 일선 공무원들에게 지우는 방식으로 이 참사를 끝내고 싶어 한다. 경찰의 꼬리 자르기, 몰아가기식 셀프 수사가 현장 공무원들을 내몰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는 책임을 다하고 있을까. 용혜인 의원은 ‘정치가 무언가 잘못됐다’고 처음 느꼈던 장면을 떠올렸다. 2014년 9월30일, 장소는 국회. 세월호특별법 제정 논의를 위해 이완구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원내대표와 세월호 유가족들이 3자 회동을 했다.
당시 이완구 원내대표는 세월호특별법 협상 주체는 여·야라며, 유가족에게 새정치민주연합과 박영선 원내대표에게 전권을 위임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유가족들은 100만명이 넘는 국민에게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완구 원내대표가 유가족을 협상의 대상으로조차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게 너무 이상했다.”
용혜인 의원은 지금 정부가 유가족들을 대하는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정부는 10월31일 지원 대책으로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구체적 보상 액수를 언급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게 위로금 2000만원, 장례비 최대 15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곧바로 부정적인 여론이 생겼다. ‘이태원 참사에 세금을 사용하면 안 된다’라는 내용의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5만명 동의를 받아 행안위 안건으로 회부됐다.
정부가 참사 책임을 회피한 채 보상 액수부터 언급하면서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고립됐다. 용 의원은 “위로금 액수를 부각한 모욕적 행정의 결과다. 참사에 무감한 정부가 참사 피해자를 또다시 고통으로 몰아넣었다”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구체적인 금액을 발표하는 데는 ‘생색내기, 돈으로 무마할 수 있다, 참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불러올 수 있다’라는 정부의 세 가지 욕망이 담겨 있다. 세 번째가 핵심이다. 알고 그랬다면 악랄한 정부이고 모르고 그랬다면 무능한 정부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거짓 해명 밝혀내
용혜인 의원은 8년 전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용 의원은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국민들이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부 책임자들은 사과하지 않고, 어떻게든 책임과 처벌을 피하려고 하는데 왜 국민들이 미안해할까?’ 4·16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서해 페리호 침몰,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과거 참사들이 언급됐다. “오래 고민한 끝에, 참사가 반복되는 사회를 만든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라고 이해했다. 지금 그 마음을 제가 갖고 있다.”
2014년 대학생이던 용혜인 의원은, 8년 뒤 행안위 소속 국회의원이 되었다. 참사 이후 열린 행안위에서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책임을 물었다. 용 의원은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해명과 핼러윈 축제에 대비해 종합상황실을 운영했다는 용산구청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시작되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합류하는 게 다음 계획이다. 용혜인 의원은 특수본 수사는 중단하고, 국정조사를 통해 총체적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특수본 수사가 진행되면 형사적 책임 이외의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벌써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각종 정부 부처, 지자체에서 입을 다물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기 시작했다.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한 후에 형사적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다.”
국정조사가 수사권과 강제력이 없어 정쟁만 일으킬 뿐이라는 국민의힘의 주장엔 자료 제출에 대한 강제력, 증인을 채택할 수 있는 권한, 위증하면 위증의 벌을 받게 되는 조항이 있어서 충분히 강제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앞으로 용혜인 의원이 국정조사를 통해 규명하려는 건 크게 두 가지다. 먼저, ‘2005년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압사 사고에 대비하는 시스템과 매뉴얼을 갖추었는가’. 2005년 10월3일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에서 공연에 입장하려던 관객이 몰려 11명이 사망하고 162명이 다치는 압사 사고를 계기로 압사 사고 대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참사가 일어난 2022년 10월29일 밤,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이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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