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성엔지니어링이 지난해 실적이 급감하며 사업 다각화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 신성장동력으로 공들여온 디스플레이·태양광 장비 부문 매출이 사실상 ‘증발’ 수준으로 줄면서 반도체 의존 구조가 더욱 심화했다는 분석이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3106억원, 영업이익 312억원을 달성했다. 직전년도와 비교하면 매출액은 24.1% 줄었고, 영업이익은 67.8% 감소한 수치다.
태양광 및 디스플레이 사업부문의 부진이 뚜렷했다. 해당 사업 부문 매출은 2024년 597억원에서 지난해 69억원으로 88.4% 급감했다. 1년 만에 매출규모가 8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면서 사업 존재감이 희미해졌을 정도다. 같은 기간 주력인 반도체 사업 매출 역시 3497억원에서 3037억원으로 13.1% 줄었다.
회사측은 실적 부진의 원인을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규모 증가”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 주성엔지니어링은 매해 꾸준히 R&D에 투자하고 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16.5%, 25.4%, 23%로 고공행진 중이다. 절대 금액 또한 같은 기간 721억원에서 727억원, 942억원으로 늘며 외형의 4분의 1 가까이 미래 기술에 쏟아붓고 있다.
다만 인공지능(AI) 시대 개화와 데이터센터 확대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은 물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들이 유례없는 실적 상승세를 누리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아쉽다는 평가다. 주요 고객사인 SK하이닉스의 일부 장비 발주 지연과 함께 막대한 투자가 실제 매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1993년 설립된 주성엔지니어링은 1세대 소부장 대표 기업으로, 반도체 전공정 장비를 국산화한 상징적 존재다. 최첨단 메모리와 로직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원자층 증착장비(ALD)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
증착장비는 기판 위에 얇은 막을 입히는 기기를 말한다. 빵 위에 잼을 얇고 고르게 바르는 것처럼 반도체 웨이퍼나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태양전지 패널 위에 극도로 얇은 막을 층층이 쌓아올리는 장치다. 반도체 칩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십 층에서 수백 층의 박막을 정밀하게 쌓아야 하며, 각 층의 두께와 균일도가 제품의 성능을 좌우한다. 주성엔지니어링은 SK하이닉스를 핵심 고객사로 두고 글로벌 ALD 장비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해 왔다.
문제는 반도체 업황 변동성을 완충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육성해 온 디스플레이와 태양광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2000년대 초반부터 사업 다각화를 위해 해당 분야에 뛰어들었다. 2021년 러시아 엔코어그룹으로부터 대규모 태양광 장비를 수주하며 반등 신호탄을 쏘아 올렸으나, 이후 후속 대형 수주 공백이 길어지며 동력을 잃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유럽의 보조금 정책이 축소되고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증설로 공급 과잉이 심화되면서 태양전지 산업이 구조조정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역시 액정표시장치(LCD) 생산 축소와 중국 중심의 산업 재편 속에 대규모 신규 투자가 줄었다. 그밖에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경학적 요인들도 영향을 끼쳤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24년 주성엔지니어링은 인적·물적분할을 통해 사업별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려 했으나, 주가 하락과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신사업의 자생력을 증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분할 명분이 약했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올해부터 SK하이닉스의 HBM 관련 시설투자가 본격화하며 주성엔지니어링의 실적 반등을 점치고 있다. AI 서버 투자 확대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가 이어지는 만큼 단기 실적 회복 여지는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반도체 장비 매출이 더욱 집중될수록 특정 고객사 투자 일정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고객사향 신규투자 및 중화건 고객사의 신규투자는 2분기부터 다시 집중될 전망”이라면서 “1분기도 고객사 전반의 전환투자 확대 기조로 점진적 개선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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