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만원으로 11평 시골집 짓기 3, 길가에 집 못 짓는다?

은퇴 후 교외 지역에 농막이나 작은 주택을 마련하고 전원생활을 원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축업과는 무관한 공무원 출신 방송국 PD가 고향 시골에 직접 집을 짓고 그 경험을 <이 PD의 좌충우돌 4천만원으로 11평 시골집 짓기>라는 책으로 펴내 서점가에서 잔잔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 저자인 이상철 씨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시골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세 번째 사연을 전한다.

진행 이형우 기자 | 글 사진 이상철(국악방송 프리랜서 PD)
조용하던 마을이 소란스러워졌다. 기초공사를 마치고 산더미 같은 건축자재를 마당에 내려놓자 평온하던 마을의 정적은 깨졌다. 공사하는 사람들과 장비가 드나들면서 마을 사람들도 덩달아 술렁인다.
누구 집 몇째 아들이 집을 짓는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에서 읍내로 퍼진다.
“그 아들이 돈을 많이 벌었나 보네. 집을 다 짓고.”
“아니에요. 돈이 없어서 집을 직접 짓는다고 하던데요.”
“진짜 돈 없는 사람은 돈 없다는 얘기를 못해. 그 사람이 돈이 없긴 왜 없겠어!”
그 다음부터 나는 돈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다고 하지 않았어?”
“펜대 잡던 사람이 집을 어떻게 짓는다는 거야?”
“목수학원에서 집짓는 걸 배웠대요.”
“그래가지고 제대로 지을 수나 있겠나?”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콩만한 사실은 수박만큼이나 부풀어져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린다.
구경거리이자 만남의 광장이 된 공사 현장
망치와 전기톱 소리로 뚱땅 쓱싹거리는 공사 현장에는 어느 때부터인가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한적한 시골에 이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가 어디 있겠나.
“여기 구경하는 사람들 앉아 먹을 수 있게 술상이라도 하나 차려 놔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사람 좋은 이웃집 아저씨가 농담을 할 정도였다.
가만히 보니 공사 현장에는 한 사람이 혼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어서 말 걸기도 좋았다. 다섯 살에 부모 따라 상경한 뒤로 오십이 훌쩍 넘어 돌아왔으니 반가운 것은 둘째 치고 궁금한 것도 많았을 것이다. 공사 현장은 오래 전부터 한마을에서 살아 왔던 먼 친척들과 이웃들로 북적이며 만남의 광장이자 즐거운 축제의 장이 되어 갔다.
망치와 전기톱 소리로 뚱땅 쓱싹거리는 시골마을 공사 현장
건축 전문가 아재들의 귀띔과 딜레마
조립식 주택을 며칠 사이에 불쑥 갖다 놓는 대신, 몇 개월 동안 집 짓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 사람들과 서로 알게 되고 마을에 쉽게 동화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사람들이 모두 건축의 전문가라는 점이었다.
처음 시작은 뒤안이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척 동생은 “형, 집을 뒤로 바짝 붙여서 짓지 왜 멀찍이 띄어 지었어요? 마당이 좁아졌잖아요”라고 했다.
‘그런가, 내가 건물을 너무 안쪽에다 앉혔나?’ 나는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그런데 곧 “아니야, 뒤안은 넓은 게 좋아”하고 함께 오신 고모가 바로 정정해주셨다. 그제야 나는 안심이 되었다.
안방 창문도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웃집 아저씨는 거실과 화장실에는 창문이 각각 두 개씩이지만 안방에만 창문이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셨다.
“안방이 어둡잖아. 이쪽에다가 창문 하나를 더 내라.”
이 말은 목조주택의 벽체를 세울 때부터 집을 다 지을 때까지 이어졌다.
“봐라. 방이 어둡잖아. 이쪽에다 창문 하나 더 내라카이!”
나는 방안에서 조용히 집중하고 싶었고, 또 그리 넓지 않은 방에 창문이 많으면 숙면을 취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일부러 창문을 하나만 낸 것이었는데 어둡다는 이유로 설명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집을 다 짓고 난 뒤 “방이 어두워 못쓰겠어요, 아재 말대로 창문 하나 더 낼 건데 그랬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봐라, 그렇타카이.”
이웃집 아저씨는 자신의 말이 옳았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배수로 설치와 실내 난방 공사. 집 짓는 내내 동네 분들은 물론이고 낯선 분들도 도움이 되라고 다들 한 마디씩 하시곤 했다.
“그래서 길가에 집 못 짓는다 카잖아”
건축 현장에는 동네 분들은 물론이고 낯선 분들도 가끔 구경을 오셨는데 다들 도움이 되라고 한마디씩 의견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집을 짓는 동안 이런 지적 사항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느 분은 거실 창이 작다며 더 큰 창을 냈어야 했다고 지적하셨고, 다른 분은 건물 방향을 좀 더 남향으로 앉혔어야 했다고 하셨다. 또 다른 분은 기초를 더 높게 해야 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 고향마을 사람들이 다들 건축 전문가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한마디씩 하고 가면 정말로 그런가 하고 한동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중에는 도움이 되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건축 일을 하는 동네 분이 보일러실을 작은 집 안에 두면 가스 냄새로 큰일난다며 보일러실을 밖으로 따로 내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이 옳다고 여겨져 보일러실을 밖에 따로 만들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건축에 대한 각자의 취향이거나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지적들이었다. 그분들이야 도움을 주기 위해 하신 말씀이겠지만 나에게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마을 어르신에게 “구경하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해서 못 살겠다”고 했더니, 그분께서는 “그래, 그래서 길가에 집 못 짓는다 카잖아”라고 말씀하시면서 웃으셨다.
지붕 위에서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는 필자
집짓기는 집단 지성의 산물
길가에 집을 짓다 보면 지나는 사람들이 다 한마디씩 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걸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해서 그 말을 들으면 결국 이도저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집 짓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자기 주관을 가져야 한다. 짧은 속담에 조상님들의 지혜가 들어 있음을 느꼈다.뿐만 아니라 집짓기는 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된 집단 지성의 산물인 것 같다. 집 짓는 사람이 겸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집 짓는 현장은 단순한 공사 현장이 아니라 거대한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