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연금개혁, 하원 건너뛰고 ‘강행’… 스페인은 노동계 지지 얻어 ‘합의’ [佛·스페인 ‘연금개혁 드라이브’]
정년 62세→64세 연장이 핵심
하원 이탈표 감지되자 ‘특단책’
野, 정부 불신임 투표로 맞대응
노정 합의 이룬 스페인
납부 늘리고 연대 할당제 도입
양대 노조 “역사적 계획” 환영
보수 야권·재계 반발 변수 남아
‘개혁 드라이브’ 尹정부에 교훈
한쪽은 대통령이 여론과 의회의 반발을 감수하고 추진하는 리더십을, 한쪽은 노동계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공법을 펼쳤다. 연금개혁 입법화 문턱에 다다른 프랑스와 스페인 얘기다. 세부 방향성은 다르지만 이들 국가와 마찬가지로 연금개혁을 추진 중인 윤석열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평가다.
野의원에 야유받는 佛총리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총리(앞)가 16일(현지시간) 하원 의사당인 부르봉궁에서 정년을 62세에서 2년 연장하는 내용의 연금개혁 법안을 하원 표결 없이 헌법 특별조항을 발동해 처리하겠다고 밝히자 좌파 사회당 등 야당 의원들이 ‘64세는 안 된다’고 적힌 종이를 들고 야유를 보내고 있다. 파리=로이터연합뉴스 |
1차 집권기엔 여론의 거센 항의에 밀려 연금개혁을 접었지만, 이번에는 ‘정치적 정당성 결여’와 ‘민주주의 퇴보’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입법을 밀어붙여 연금재정 건전화의 기틀을 잡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늘리는 연금개혁법 강행에 야권은 강하게 반발했다. 보른 총리가 하원에 나와 정부 방침을 설명하려 하자 의장석 왼편 야당 의원들은 ‘64세는 안 된다’고 적힌 종이를 들어 보이며 야유를 보냈다. 일부는 “퇴진하라”고 외쳤다. 극좌 성향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당 의원들은 ‘압제자에 맞서 무기를 들라’는 내용의 국가 라마르세예즈를 소리 높여 불러 총리 발언을 방해하기도 했다.
여당 르네상스(RE) 내에서조차 “실망과 분노 사이를 오가고 있다. 우리는 투표했어야 했다”(에리크 보토렐 의원)는 반응이 나왔다.
야권은 정부 불신임 투표 카드를 꺼내들었다. 불신임안이 1962년 이후 처음으로 가결되면 총리와 내각은 사퇴해야 하고 연금개혁 법안은 철회된다. 부결되면 법안은 바로 법률로 발효된다. 다만 공화당이 범여권과 연대할 전망이어서 불신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평가다. 외신들은 “불신임 투표는 이르면 월요일(20일) 진행될 전망”이라고 했다.
거리에선 전운이 감돌았다. 당장 이날 의회 맞은편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약 1만명이 몰려들어 시위를 벌였다. 필리프 마르티네즈 노동총동맹(CGT) 사무총장은 정부의 법안 강행이 “국민에 대한 경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사용해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 분노한 시위대는 해산한 뒤에도 인근 샹젤리제 거리를 돌아다니며 수거업체 파업으로 곳곳에 쌓인 쓰레기와 주차된 차량 등에 불을 붙였다. 전국적으로는 24개 도시에서 6만명이 시위에 나섰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파리 시위 참가자 258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310명이 체포됐다고 RTL라디오에 밝혔다.
정치·사회적 혼돈에 빠진 프랑스와 달리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정부는 연금제도 개혁에 관한 노동계 지지를 무난하게 얻어냈다고 AP, DPA 통신이 전했다.
중도좌파 성향 사회민주당 정부가 이날 각료 회의에서 승인한 연금개혁안은 노동자의 연금 기여금 납부 기간을 25년에서 최대 29년으로 연장하고 고소득자 대상 ‘연대할당제’를 도입해 기여금 부담을 늘리는 내용이 뼈대를 이룬다. 고령화와 높은 청년실업률에 따른 연금재정 고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다. 프랑스와 달리 스페인 은퇴 연령은 65세로 유럽연합(EU) 평균 수준이어서 이 부분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스페인 양대 노조인 노동자위원회(CCOO)와 노동자총연맹(UGT)은 이번 개혁안을 두고 “역사적 계획”이라고 환영했다. 우나이 소르도 CCOO 사무총장은 전날 “이번 개혁은 2048년까지 1000만∼1500만명 늘 것으로 예상되는 스페인 은퇴 인구의 연금을 보장하는 데 핵심이 될 것”이라며 “이는 사회복지 시스템의 근간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개혁안은 스페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회복기금을 추가로 지원하면서 EU가 내건 사회보장제도 개편 요구 조건에 부합한다고 DPA는 전했다. 페페 알바레스 UGT 사무총장은 “정부가 EU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에도 축하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페인 연금개혁안은 이제 의회 표결 절차만 남겨뒀다. 변수는 보수 야권과 재계의 반발이다. 개혁안에 고소득층과 기업의 사회보장 비용 부담을 늘리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다. 제1야당 국민당(PP)의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대표는 “노동과 재능에 새로운 세금을 물리는 셈”이라며 연말 총선에서 승리하면 연금제도를 다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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