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을사년(乙巳年)은 청사(靑蛇) ‘푸른 뱀’의 해다.
‘을’은 음양오행 중 나무를 말하며 ‘푸른색‘을 대표한다.
‘뱀’은 ‘십이지신(十二支神 :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중 6번째로서 지혜와 야망이 많은 동물이다. 십이지는 예로부터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십이지동물 중 하나인 ‘뱀’이 한국, 중국, 일본에서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으며 오랫동안 사물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어떻게 일상생활과 문화에 반영되었는지 알아보자.

사람들은 뱀을 싫어한다. 뱀은 사람의 발꿈치를 물고 사람은 돌로 그 머리를 친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뱀 있나?” “뱀 없어”라는 말을 인사말처럼 주고받았다고 한다.
‘뱀에게 한번 물린 사람은 10년 동안 두레박줄만 보아도 놀란다’는 속담도 있다.하지만 세상에 살고 있는 2,700종의 뱀 가운데 독 있는 뱀은 4분의 1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 땅에는 180종의 뱀이 살고 있지만 독사는 그중 47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뱀을 그토록 싫어하는 것은 반드시 그 독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생김새 자체가 징그럽고 흉측스럽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신화, 전설, 민담에는 유난히 뱀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징그러우면서도 끌리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다. 다른 것은 다 덮어둔다 하더라도 뱀은 우리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12지신 가운데 하나다.
12지로 시간을 계산하고 춘하추동을 정하고, 그 방위와 연도를 헤아려온 한·중·일 세 나라에서는 지금도 12명 가운데 한 명은 뱀띠로 태어나고 있다.

‘뱀’을 통해 본 한·중·일의 문화 코드
십이지(十二支)의 동물들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한자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 사회에서도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런데 그중에서 유독 ‘뱀’만큼은 특유의 미끈미끈하고 차가운 이미지 때문인지 한·중·일 삼국에서 공히 부당한 문화적 오해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지나친 혐오감 뒤에는 또 다른 호기심과 관심이 있다. 뱀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불사, 재생, 영생의 존재이며, 다산성이기 때문에 풍요와 재물의 신이며, 생명 탄생과 치유의 힘, 지혜와 예언의 능력, 끈질긴 생명력과 짝사랑의 화신이다.

《문화로 읽는 십이지신 이야기 뱀》(이어령 편저, 열림원 발간)에 따르면 제주도의 ‘금녕굴 전설’이나 중국의 ‘사골탑 전설’, 일본의 ‘야마타노오로치 전설’처럼 하나의 영웅이 등장하여 인간을 희생 제물로 요구하는 뱀을 퇴치한다는 비슷한 줄거리의 이야기가 있는 반면, 뱀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선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 이야기도 존재한다.
뱀은 우선 생김새부터가 친근하지 않다. 차갑고 미끈미끈해 보이는 피부와 찢어진 눈, 그리고 쉴 새 없이 날름거리는 혀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꺼리고 두려워하는 존재다.
즉 뱀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모든 출발이 그 외양에서 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뱀을 부정의 대상으로 상징하는 한·중·일의 신화, 민담, 전설 등을 분석해 보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뚜렷해진다.

그러나 뱀의 단순한 외양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뱀을 바라볼 때 동아시아 삼국에서는 각기 다른 이미지가 생성된다. 먼저 신라 시대 토우에 나타나는 뱀을 살펴보면, 주로 ‘부활’이나 ‘재생’의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겨울잠을 자는 동안 잠시 사라지고, ‘탈피’라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뱀의 특성에서 연유한 것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뱀을 ‘강의 신’으로 숭배하기도 한다. 중국인들은 황하의 신을 네모진 얼굴에 황금색을 띤 작은 뱀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 일본에서는 토기 문양 등에 뱀이 그려져 있으며, 뱀을 주술적 신앙으로 삼아왔다.

서양에선 종교적 영향 부정성 강해
서양에서는 독을 가지고 있으며 땅을 기어서 가는 독특한 모습과 차가워 보이는 눈으로 인해서 두려움의 대상이면서도 뱀을 신으로 숭상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티폰(Typhon), 피톤(Python), 히드라(Hydra) 등과 이집트의 크눔(Khnum), 인도의 비슈누(Vishnu), 북유럽 신화 속 오딘(Odin) 등은 뱀과 강력하게 결부된 신으로 세계 여러 민족에게서 뱀을 숭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를 꾀어 원죄를 짓게 한 뱀,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도 같은 시각으로 보고 있다.
마야(Maya), 잉카(Inka) 문명권에서도 뱀을 숭배했으며, 뱀 숭배의 최고는 앙코르와트(Angkor Wat)로 앙코르 왕국의 최고신으로 강과 비를 주관하며 물과 땅의 비옥함, 벼농사를 상징했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뱀’과 ‘용’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동아시아에서는 뱀과 용이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십이지의 순서상 용 뒤에 뱀이 나온다는 사실이 그 재미있는 방증 중의 하나이다. 늦봄을 나타내는 용이 초여름을 나타내는 뱀으로 변신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바로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데 반해 뱀은 지하로 잠입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또 음양의 원리에 따라 생각해보면, 뱀은 젠더 코드에서 ‘음’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동양, 서양 할 것 없이 그 외양에 따라 유추하자면 뱀은 남근을 상징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한·중·일의 신화, 민담, 전설 등에서 뱀이 여성성을 상징하거나 직접 여성으로 현화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피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전통문화와 멀어진 오늘날에도 ‘꽃뱀(花蛇)’이라는 말속에 뱀 특유의 문화 코드가 뜨겁게 살아 있다.
서정주의 시 〈화사〉에서 남자를 유혹하여 돈을 빼앗아 가는 ‘꽃뱀’의 여성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꽃과 징그러운 뱀의 결합은 과학적 이성만으로는 풀 수 없는 심연, 원초적인 인간의 어둡고 깊은 심층적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뱀 꿈을 꾸면 임신을 했다고 여기며 커다란 뱀이 임신한 사람에게 가면 큰 인물이 태어날 거란 기대도 하게 된다.
수양하고 덕을 쌓은 시간이 오래되면 용으로 승천한다고 해서 좋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뱀은 동서양 모두 요사스럽고 간사하며 환영받지 못하는 미물로 취급되고 있지만, 뱀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범접할 수 없는 미모의 상징으로 유독 여자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중국의 창세신, 여와(女媧)와 복희(伏羲)가 뱀 형상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구려 벽화 등에 자주 나타나는 현무(玄武) 역시 뱀 형상을 띄고 있는 것으로 보아 뱀이 십이지신 중의 하나로 이름만 남겨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신성시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Eve)를 미혹한 동물로 오랜 기간 저주를 받아온 서양 문화 속에서도 뱀은 풍요의 상징이라는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데 특히 이집트에서가 그렇다. 파라오(Pharaoh)가 쓴 관을 보라.
클레오파트라(Cleopatra)가 괜히 뱀을 단짝으로 삼은 게 아니었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 뱀처럼 예민한 감각이 필요한 시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경계를 넘어 기회를 잡는 스네이크 센스(snake sense)가 필요하다.
글 이규열(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참고도서] 문화로 읽는 십이지신 이야기 뱀 | 이어령 | 열림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