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연상과 비밀결혼, 출산 후 들킬까 봐 아들을 남동생으로 호적에 올린 탑연예인

1967년 영화 ‘엘레지의 여왕’으로 데뷔했던 나미는 1980년대 ’영원한 친구’ ’슬픈인연’ ‘빙글빙글’ ‘아리랑 처녀’ 등의 노래를 히트시키며 허스키한 목소리와 함께 1980년대 최고의 댄스가수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는 후일 DJ DOC의 제작자로도 이름을 알렸던 신철을 발굴해 ‘붐붐’으로 활동시키면서 ‘인디언 인형처럼’을 유행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는 ‘인디언 인형처럼’으로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90년도, 나미는 갑자기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종적을 감췄습니다.

20살 연상 유부남 소속사 사장과의 동거
최고의 인기 속에서 사라진 스타에 대한 의문과 함께 그가 소속사 대표 최봉호와 동거 중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나미의 스캔들은 최대표가 나미보다 20살이나 나이가 많은 유부남이라는 점에서 당시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놨습니다.

아내와 별거 중이었던 최대표는 80년부터 나미와 함께 살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고 나미가 많은 사랑을 받던 84년,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까지 생겼습니다. 두 사람은 동거 소문의 진실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기자들에게 ‘전혀 사실무근이다’라고 발뺌하며 약 20년 동안 그들의 사이를 비밀로 유지했습니다.

나미는 비밀 출산 후, 다시 가요계에 복귀했고 그가 낳은 아이는 어머니가 대신 돌봤습니다. 한 번은 백화점에서 아들이 멀찍이 가고 있는 나미에게 ‘엄마’라고 불러 혼이 났고, 남편 최대표는 아이를 데리고 그 자리를 얼른 뜨기도 했습니다.

비밀 존재였던 나미는 아들 최정철 출산에도 호적에 남동생으로 올려야 했습니다. 한 방송에서는 “나미가 1980년대 매니저였던 지금의 남편과 사실혼 관계였지만 당시 결혼했다는 것을 알릴 수 없기에 암묵적인 비밀이었다”라고 전했습니다. 1984년 아들을 낳았지만 호적에 남동생으로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최 회장은 전처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95년에 나미를 법적인 아내로 맞이하고 아들의 호적도 바로잡았습니다.

어머니의 끼를 이어받아 가수가 된 아들 최정철은 2002년 1집 앨범으로 가수로 데뷔해 2008년 가수 가인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싱글 ‘결혼’이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의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에 수록되면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의 아들 가수 최정철의 아내가 임신소식을 전해 이로써 나미도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1984년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당시 첫아들 최정철을 낳았던 나미는 당시 활동을 위해 대외적으로 출산사실을 함구하는 등 어려운 과정도 겪었지만 이번 아들의 임신소식에는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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