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그렇게 붕괴되었다…'보통의 가족', 제목에 담긴 역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퓰리쳐상 수상 작가인 안나 퀸드랜은 "가족은 다른 모든 사회 영역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한 개인이 탄생과 동시에 속해지는 최소 단위의 사회가 가족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가족 안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사회로 나아간다. 가족을 빼고는 쓸만한 소재를 생각할 수 없다는 드랜의 말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
'보통의 가족'(A Normal Family)은 제목부터 역설이다. 영화는 사고처럼 터진 위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두 가족을 보여준다. 언뜻 보면 이들은 대한민국 중산층(사실 상류층에 가까운)의 전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떻게 봐도 '보통의', '평범한', '정상적인'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난폭 운전으로 실랑이를 벌이를 두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딸을 태우고 운전을 하던 한 남성은 스포츠카를 난폭하게 모는 젊은 청년의 행태에 화가 나 차를 멈춰 세운다. 이 남성은 과격하게 상대를 비난한 뒤 다시 차에 오른다. 이에 분노한 청년은 차를 후진한 뒤 액셀레이터를 밟아 앞차를 들이받는다. 이 보복 운전으로 인해 남자는 즉사하고 어린아이는 생사를 헤매게 된다.
잘 나가는 변호사인 재완(설경구)은 피해자 가족이 아닌 가해자 청년을 변호하게 된다. 이 청년은 재벌 2세다. 재완은 재벌 2세가 의도를 가지고 차를 들이받은 게 아니라 실수였다는 취지로 변호하고 피해자 가족과의 합의를 통해 사건을 무마하고자 한다. 공교롭게도 생사를 헤매는 피해자 딸의 주치의는 재완의 동생 재규(장동건)다.
두 형제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형인 재완은 돈 되는 일이면 다하는 변호사고, 동생인 재규는 돈보다는 명예를 추구하며,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고 헌신하는 의사다.
관객은 당연히 이 에피소드가 영화의 핵심이 되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일종의 복선이고, 추후 발생할 사건의 거울 같은 기능을 한다.
두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에 파열음을 내는 건 자식들이 일으킨 사건 때문이다. 재완의 딸과 재규의 아들이 연루된 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두 가족은 이 일의 처리 방식을 두고 부딪히게 된다.
CCTV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영화는 크게 두 번의 CCTV 화면을 제시하는데 사건의 발단에서 등장하는 CCTV와 반전의 키가 되는 CCTV가 있다. 특히 두 번째 CCTV 화면은 클라이맥스가 돼 인물이 폭주하는 계기가 된다.
네덜란드 원작 소설 '더 디너'(헤르만 코브 作)에서는 두 형제의 직업이 교사와 정치인으로 설정돼 있다. 리메이크작인 '보통의 가족'에서 형제의 직업은 변호사와 의사로 바뀌었다. 둘 다 성공한 사회인의 전형으로 제시될 수 있는 전문직이다.
이들의 배우자 역시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은 캐릭터다. 연경(김희애)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며 맏며느리 노릇하고, 지수(수현)는 능력 있는 남편과 결혼해 호화로운 삶을 사는 젊은 아내로 묘사된다. 영화는 이들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부모의 수혜를 누리며 자란 2세를 통해 우리 사회의 엘리트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생명 경시와 도덕성 결여 등의 병폐를 제시하며 사회 풍자의 색채를 강화했다.
영화에는 재완 부부와 재규 부부가 함께하는 세 번의 저녁 식사(dinner)가 등장한다. 가족끼리의 정기적인 식사 자리지만 내내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그로 인해 긴장감이 감돈다.
아픈 모친을 모시지 않는 첫째 아들과 장남의 의무를 대신하고 있는 둘째 내외간의 불편한 관계, 어린 형님을 고깝지 않게 보는 동서와 그런 동서가 불편한 형님까지, 겉으로는 우애 좋은 형제 부부지만 그 속은 보이지 않게 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텐션은 영화의 주요한 사건을 기점으로 극대화되고, 서로가 애써 감추고 있던 민낯까지 드러내기에 이른다.
'보통의 가족'은 '당신이라면?'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확실한 건 내로남불로 요약할 수 있는 위선이라는 가면 아래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실이다. 특히 부모에게 '자식'이란 금지옥엽이자 아킬레스건이기에 개인의 신념도 윤리도 힘을 쓰지 못한다.
영화는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인간의 이중성과 도덕적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덕분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 역시 '미워도 내 새끼'라는 공감대와 '네 새끼 네 눈에나 예쁘지'라는 심리적 삿대질 상태를 오가며 영화가 던지는 딜레마에 때론 공감하고 때론 분노하게 된다.
영화는 극단적 설정을 통해 캐릭터의 이면을 보여주고, 가족원의 안위를 위해 스스로의 신념을 깨게 되는 다소 도식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이로 인해 지나치게 영화적이라는 비판을 할 수도 있지만 제시된 상황에 '나'를 대입한다면 과연 인물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보통의 가족'은 연출(허진호 감독)의 노련함과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수미쌍관과 대조 등의 이야기 구조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네 배우의 앙상블이 훌륭하다. 설경구의 무게감과 김희애의 폭발력, 장동건의 진화, 수현의 안정감이 돋보이는데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어 영화 내내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특히, 자식을 위해서 자신이 추구해 온 신념과 도덕률조차 깨버리는 재규 역의 장동건의 연기가 변화의 측면에서 인상적이다.
원작 소설이 가진 매력 덕분에 이 작품은 네덜란드, 이탈리아, 미국에서 총 세 번이나 영화화됐다. 네 번째 영화인 '보통의 가족'은 원작의 주제의식을 중심에 두고 한국의 가족 문화와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투영해 몰입감을 높였다. 메시지의 발화와 장르적 재미 모두 수준급인 작품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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