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복잡한 게임이기도 하다.
숫자와 다양한 기록으로 얽힌 어려운 종목이다. 오랜 시간 그라운드에서 야구를 지켜보고 있지만 여전히 야구는 어렵다.
기자인 나보다 ‘야구’를 더 잘 아는 전문가 팬들이 많다.
난해한 이곳에서 나는 나름의 경쟁력을 위해 사람을 주목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야구,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누구도 인정하는 신체와 기술적인 능력을 가지고도 그라운드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다. 사람이니까 그렇다.
오랜 시간 이들을 지켜보면서 단순한 숫자와 수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 눈에 보이는 플레이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보고 있다.
스프링캠프를 시작으로 긴 시즌을 지나 마무리캠프까지, 오랜 시간 그라운드에 있다 보니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선수들과 지낸다.
시즌 준비 과정부터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까지 지켜보기 때문에, 시간이 쌓여 알게 되는 흐름도 있다.
그 덕분에 멋모르는 신인이 베테랑 선수로 성장하는 서사를 영화 보듯이 지켜보기도 한다. 감사한 일이다.
20년 가까이 야구판을 누비다 보니 나보다 키가 작던 꼬마 선수가 훌쩍 성장해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을 보기도 한다.
오랜 시간 본 선수들의 긴 시간이 오버랩 될 때 괜히 뿌듯할 때도 있고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
두산 박찬호와 KIA 정해영이, 마음을 흔들었다.
박찬호 하면 우선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누가 봐도 고졸 신인인 깡마른 선수가 함평챌린저스필드 휴게실에 있는 탁구대에서 끙끙대고 있었다.
야구공에 사인을 해야 하는데, 신인들에게는 공에 사인하는 게 세상 어려운 일 중 하나다.
박찬호는 사인을 그리다시피 오랜 시간을 그렇게 엎드려 있었다.
박찬호의 프로 데뷔전이었던 2014년 9월 6일 NC와의 원정경기.
마침 현장에 있었고 그곳에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던 어린 선수를 봤다.
자신의 첫 안타 1주년을 자랑하기도 하고, 행운의 끝내기 안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김기태 감독과 잔여경기 0.250의 타율을 놓고 내기 각서를 쓰던 박찬호.
그러던 박찬호가 수비상 수상자는 물론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단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또 울었다. 이번에는 V12 주역이 돼 엉엉 울었다.
할 말은 하는 장난기 가득한 모습의 박찬호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박찬호의 야구 욕심과 야구 센스를.
박찬호는 가장 많은 수비 이닝을 소화하고 무조건 달렸다.
안 아픈 선수는 없겠지만 여기저기 아파도 박찬호는 그라운드에 있었다.
사구에 맞아 손목이 으스러졌을 때도 박찬호는 담담하게 1루 베이스로 향했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 선배들 애를 태우던 천방지축 후배는, 후배들이 가장 믿고 따르는 선배가 됐다.
지난 시즌 많은 선수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도 박찬호는 굳게 자리를 지켰다.
임시주장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맡아 ‘함평 타이거즈’의 질주를 이끈 선수가 바로 박찬호이기도 하다.
무뚝뚝한 대선배 최형우도 인정한 박찬호의 2025시즌의 헌신과 발전, 김태군도 최악의 위기에서 팀을 지탱한 선수는 박찬호였다고 이야기를 했다.
박찬호는 솔직하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솔직하다.
인터뷰도 솔직하다.
그래서 겸손이 미덕이 되는 곳에서 그는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선수였을지도 모른다.
솔직한 박찬호와의 인터뷰는 웃음 또는 핀잔으로 끝나곤 했다.
하지만 가슴 철렁했던 날이 있었다.
계산이 서는 선수가 되면서 슬슬 FA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그날의 정확한 인터뷰는 기억나지 않는다.
박찬호가 경기를 잘했던 날인지 아니면 좋지 못한 성적표를 썼던 날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찬호는 “박수만 받으면서 야구를 하고 싶다”라고 웃었다.
그렇게 말하던 박찬호의 입은 웃었지만 눈은 울고 있었다.
유난했던 악플과 비난.
자신을 잘 아는 선수다.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을 알고 반성하고 노력하는 선수였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며 강했던 박찬호도 인간이 돼 악플과 비난에 흔들렸다.
“아빠가 되니 마음이 다르다”던 박찬호는 아이에게 아빠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그때 처음 박찬호가 없는 KIA를 생각했다.
2024년 9월 25일 정규시즌 우승을 이루고 홈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우승’을 입에 달고 살던 박찬호와 덕아웃에서 꽤 긴 시간이 인터뷰를 했었다.
박찬호가 ‘호랑이 새끼’들이라고 이야기한 김도영과 윤도현도 함께 했다.
누구보다 재능 있는 후배들이라서 내년 시즌 나도 긴장해야 한다면서 호랑이 새끼들을 키우고 있는 느낌이라면서 웃었던 박찬호.

김도영과 윤도현에게도 특별한 선배였던 만큼 함께 즐겁게 오랜 시간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이 인터뷰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정작 후배들은 믿고 따르는 선배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욕만 하고 싶은 선수이기도 했다.
박찬호는 미안해하며 후배들과의 인터뷰를 공개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혹시 나중에 내가 팀을 떠나게 되면 그때 쓰라는 말과 함께
“함께여서 행복했고 감사합니다”
2026년 5월 12일 두산 박찬호가 챔피언스필드를 찾았다.
팬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던 박찬호는 떡을 돌렸다.
직접 준비한 문구 “함께여서 행복했고 감사합니다”를 담아서.
그게 박찬호의 진심이었다.
낯선 유니폼 차림의 박찬호는 “정말 행복하다”면서도 “슬프다”고 그랬다.
마음 편하게 야구만 하는 지금이 행복하지만, 진한 추억이 슬프게 남았다.
박찬호는 여전히 박찬호다.
늘 그랬듯 박찬호는 한결같다.
KIA에서의 모습 그대로 다른 유니폼만 입었다. 야구에 대한 마음과 열정도 그대로고 솔직함도 그대로다.
“오히려 이곳에서는 더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며 박찬호는 홀가분하게 웃었다.
프로니까 무조건 이기겠다던 박찬호, 4타석에서 역할을 못 했지만 팀은 이겼다.
“첫 타석에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울 것 같으면 방망이에 스프레이 뿌리러 가겠다”던 박찬호는 초구에 중견수플라이 아웃으로 눈물 쏙 들어가게 빠르게 아웃됐다.
2014 신인 선수 KIA 박찬호 그리고 FA 선수 두산 박찬호. 길었던 여정이었다.
모든 선수와 마찬가지로 그의 순간순간을 지켜보고, 기억하고, 글과 영상으로 담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내가 쓸 수 있는 박찬호의 서사는 여기까지다.
야구선수 박찬호가 아닌 인간 박찬호의 모습에 가슴 철렁했던 날처럼, 며칠 전 정해영을 인터뷰하면 다시 또 그런 먹먹한 마음이 됐다.
박찬호의 모습이 겹치던 그날, “마음 단단히 먹고 왔다”는 정해영은 눈도 입도 울고 있었다.
아쉬웠던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기대했던 정해영의 모습은 아니었다. 팬들의 속을 끓이는 피칭들도 있었다.
신인 시절부터 숨 막히는 순간 마운드에 올라 통산 149세이브를 올린 정해영도 결국 비판이 아닌 원색적인 비난 앞에서 무너졌다.
많은 KIA 선수들은 진심으로 팬들의 힘을 이야기한다.
어디에서든 응원으로 지지 않는 팬들의 뜨거운 응원과 야구 도시 광주의 열기는 KIA 선수들에게는 자부심과 힘이다.
하지만 그 열정이 너무 뜨거울 때가 있다.
코로나 시대를 거쳐 야구 문화도 조금은 달라졌다.
팀이 아닌 선수에 집중하는 이들도 생겨나면서 가족 같은 동료가, 일부 극성 팬들에게는 밟고 넘어야 할 경쟁자가 됐다.
KIA 선수들은 인기 구단의 명과 암을 동시에 경험한다.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선수는 없다.
그리고 이들은 매일 안심할 수 없는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
1경기, 1이닝, 공 하나에 가슴 졸이면서 당장 내일을 다음 이닝을 걱정하면서 사는 이들이다.
부족한 노력과 실력의 책임은, 다른 어떤 직업을 가진 이들보다 더 빠르게 더 무겁게 진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공 하나에 각기 다르게 유기적으로 움직여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야구가 좋다.
공 하나에 맞물려 움직이는 모습이 예술 같다.
꼴찌가 1위를 이길 수 있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스포츠.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10번 타자’도 그 팀이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야구 그리고 이 그라운드에서, 야구가 아닌 다른 것으로 상처받고 흔들리는 선수가 더는 없으면 좋겠다.
야구를 사랑하는 선수들이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는 사랑만 했으면 좋겠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노래 가사가 떠오르는 오늘이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