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을 쉼 없이 달려온 뒤 마주하는 70대의 노년기는 화려한 인맥도 직장의 명함도 모두 사라진 채 지독한 고독과 마주하는 시기다.
많은 이들이 노년에 종교를 찾는 이유를 단순히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천국에 가기 위한 신앙심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최근 고령층이 매주 새벽같이 예배당으로 향하는 이면에는 자식도 사회도 채워주지 못하는 노년의 서글픈 생존 전략과 현실적인 외로움이 숨겨져 있다.

일주일에 단 한 번도 전화하지 않는 자녀들과 달리 매주 정해진 시간에 내 이름을 불러주며 정중하게 맞아주는 공간은 교회 외에 찾아보기 힘들다.
대화의 주도권을 잃고 소외당하기 십상인 노인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자리를 내어주는 환대는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다.
세상의 변화와 소통 차단 속에서 겪는 서글픈 소외감을 치료해 주고 내가 여전히 존중받는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안식처가 된다.

정작 내 내면과 건강을 위한 무리한 지출에는 인색할 수밖에 없는 노년기에 교회는 가장 가성비 좋게 사회적 교류를 유지할 수 있는 해방구다.
푼돈의 무서움을 아는 70대에게 매주 쾌적한 환경에서 또래들과 점심 식사를 나누며 소박한 대화를 이어가는 시간은 대체 불가능한 행복이다.
남들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불필요한 사교비를 과감히 도려낸 채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안전하게 어울릴 수 있는 현실적인 커뮤니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밖에서 털어놓았다가는 단숨에 안줏거리나 구설수가 되어 배신감으로 돌아오는 집안 사정을 신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심하고 고백하는 행동이다.
나를 인간 대 인간으로 위로해 주는 교인들 앞에서 억눌렸던 슬픔과 한탄을 쏟아내며 정서적 배출구를 찾곤 한다.
외로움과 공허함을 참지 못해 사방에 비밀을 발설하다 상처받던 노인들이 가장 안전하게 내면의 고통을 위로받고 치유하는 영리한 처세술인 셈이다.

과거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자리에 있었는지를 늘어놓으며 훈수만 두는 독선적인 노인들과 달리 교회 안에서 빗자루를 잡으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려는 태도이다.
주차 안내나 식당 배급 같은 사소한 봉사를 통해서도 내가 여전히 사회에 쓸모 있는 존재라는 깊은 성취감과 자존감을 얻어 간다.
입을 열어 대접받기만 요구하기보다 묵묵히 몸을 움직여 공동체에 기여하며 노년의 진짜 품격과 향기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70대 이후의 삶에서 교회가 주는 가장 커다란 지혜는 내 불행과 행복을 남에게 증명받으려 애쓰지 않는 단단한 자심을 기르는 것이다.
화려한 인맥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입을 열기보다 기도를 통해 묵묵히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며 가진 것을 겸손하게 숨기는 법을 배운다.
세상의 흐름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홀로 보내는 시간을 건전한 신앙과 명상으로 채워나갈 때 세월이 흐를수록 존경받는 인생이 완성된다.
Copyright © 나를 돌보는 마음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