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60년 모은 데이터 4만 개를 무료로 공유했어요" 지역 스타트업도 놀란 SK이노베이션의 파격

나주예 2024. 9. 29.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I·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 솔루션 개발
정유·석유화학 외 다른 제조업 분야도 적용 
국내 사업화 성공…해외 시장 진출 시도 중
SK이노베이션과 지역 AI기업 딥아이(DEEP AI)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AI 비파괴검사(IRIS) 자동 평가 솔루션'으로 열교환기 결함 검사를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24일 오후 울산 남구 SK이노베이션 정유·화학 복합단지 울산콤플렉스(CLX) 공장 한편에선 성인 남성 키보다 큰 열 교환기 튜브의 결함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가 한창이었다. 기술자가 열 교환기의 배관에 물과 초음파를 이용해 신호를 모으자 인공지능(AI) 영상 판독기가 파장 분석을 통해 '자동 분석을 진행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뜬 지 수십 초 만에 열교환기 내 결함이 의심되는 영역을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박재한 SK에너지 스마트플랜트추진팀 PM은 "열교환기 모든 영역의 결함이나 부식 상태를 분석해준다"며 "AI가 모든 사례를 찾아 두께가 얼마나 얇아졌는지 정량적으로 진단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검사는 'AI 비파괴검사(IRIS) 자동 평가 솔루션'으로, SK이노베이션 계열사 SK에너지가 울산 지역 AI 기업 딥아이(DEEP AI)와 협력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비파괴검사는 초음파를 활용한 설비 검사 기술 중 하나로 제품의 손상 없이 내부 결함과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원전, 반도체, 자동차 등 제조업 설비 대부분에 적용되는 열 교환기 결함 검사에 사용된다.

열 교환기는 정유∙석유화학 공정에서 제품을 만들 때 온도 조절에 쓰이는 핵심 부품 중 하나로 수천여 개의 배관(튜브)으로 구성된다. SK 울산 CLX에만 약 7,000개,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 안에 약 3만 개가 있을 만큼 광범위하게 쓰인다. 열 교환기는 고온의 원유가 이리저리 옮겨지는 과정에서 '그릇'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람이 건강 검진을 받고 의사가 결과를 진단하듯 안정성 유지를 위한 정기 검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동안 숙련된 기술자의 노하우와 역량만 믿고 결과를 판독해야 해 전문가의 기량에 따른 차이가 있었다.

SK에너지는 딥아이와 함께 머리를 맞댄 결과 AI에 데이터를 학습시켜 설비의 수명이나 결함 부위를 자동 판독하는 AI 자동 진단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김기수 딥아이 대표는 "SK에너지가 60년 넘게 공장을 운영하며 모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열 교환기 내 결함의 특징을 분석했다"며 "머신 러닝 모델을 활용해 결함이 있는지는 물론 남은 수명을 예측하는 등 검사 효율성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검사 속도와 정확도를 각각 70%, 98% 향상했을 뿐 아니라 검사 비용도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김 대표는 SK에너지를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했다. 김 대표는 "AI 스타트업들은 고객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기 어렵다"며 "SK에너지는 공장 데이터 4만여 건을 공유하며 개발이나 실증에 동등한 관계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지역 스타트업이 데이터 인프라를 함께 활용해 지역 스타트업과 협업이 시너지가 된 것이다. 김강석 SK에너지 스마트플랜트 추진팀 PM은 "딥아이와 함께 솔루션을 고도화해 국내 전체 정유∙석유 화학 산업뿐 아니라 같은 설비를 쓰는 배관, 보일러, 탱크, 자동차, 항공기 부품 분야까지 시장을 넓힐 계획"이라며 "해외 시장 진출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AI 솔루션으로 안전사고 예방에 기여"

SK에너지 구성원이 SK이노베이션에서 자체 개발한 설비자산관리 시스템 ‘OCEAN-H’를 활용해 회의를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SK에너지는 최근 울산 정보통신기업 인사이트온이 참여해 자체 개발한 설비자산 관리 시스템 'OCEAN-H(Optimized & Connected Enterprise Asset Network Hub)'의 사업화도 성공했다. 이는 에너지·화학 산업 설비 데이터를 쌓아 현장에서 손쉽게 활용하는 시스템으로 지난해 초 상업화한 뒤 울산 지역 정유∙석유화학 업체 5개사를 고객으로 확보해 35억 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SK에너지는 스타트업 기업과 만든 솔루션으로 당장 수익을 내기보다는 공장 효율을 높이고 이를 지역 중소·중견기업에 나누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정창훈 스마트플랜트추진팀장은 "해외 업체가 개발한 솔루션 프로그램은 업무 환경 차이로 인한 편의성, 활용성, 확장성 및 높은 비용 등 문제점이 있었다"며 "이를 크게 개선한 덕분에 국내 기업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인도의 글로벌 정보기술(IT) 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기업인 TATA그룹의 TCS(TATA Consultancy Service)와 업무 협약을 맺었고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인도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서관희 SK에너지 기술∙설비본부장은 "SK 울산CLX의 정유∙석유 화학 전문성을 바탕으로 AI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며 "울산CLX는 국내 최초 정유공장에 이어 국내 최초 스마트플랜트 도입이라는 도전을 시작한 만큼 확실한 성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SK에너지 울산 CLX 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울산=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