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빵값, 세계 최고 수준... 독점 구조와 원가 상승의 이중고
한국의 빵값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는 가운데, 대형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의 가격 인상이 계속되고 있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가 빵과 케이크 110여종 가격을 평균 5%가량 올린다고 발표했으며,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도 지난 10일 빵과 케이크 120여종 가격을 평균 5.9% 인상했다. 이러한 가격 인상의 배경에는 원재료 가격 상승과 함께 국내 제빵 시장의 독점적 구조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빵값, 일본의 3배
한국의 빵값은 전 세계적으로 다섯 번째로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국내 빵 물가는 전년 대비 9.5% 상승했으며, 이는 전체 물가상승률 3.6%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운영하는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서 빵 1kg을 사는 비용은 15.59달러로, 뉴욕(8.33달러)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빵값은 인접국인 일본보다 최대 3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빵 1kg당 가격이 5.63달러(오사카 기준)인 반면, 한국은 그 세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는 밀 자급률이 한국(1%)보다 높은 일본(12%)도 여전히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원재료 수입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대기업 독점 구조가 빵값 상승 부추겨
한국 빵값이 비싼 첫 번째 이유로 제빵 업계의 독점 구조가 지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몇몇 대기업이 빵집 프랜차이즈를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독점 구조는 가격 경쟁을 제한하고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식품산업통계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대형할인마트, 편의점, 독립슈퍼 등을 통해 판매된 빵 매출액 중 75.6%가 SPC 계열사인 삼립의 매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SPC 계열사 5곳의 빵류 제조업 시장 점유율이 83%로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에 대해 SPC는 "통계에 누락된 부분이 있으며, 자사 점유율은 40% 수준"이라고 반박했으나, 여전히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 빵 시장이 제과점 중심으로 형성된 것도 특징이다. 식품산업통계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제과점업 매출은 5조9388억원인 반면 소매유통채널 매출은 4251억원으로 제과점 시장의 7%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제과점에서 판매하는 빵의 가격이 양산빵에 비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시장 구조가 빵값 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 상승의 영향
빵값 상승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원재료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이 꼽힌다. 한국의 밀 자급률은 1% 수준으로, 식용 밀 수요량 연간 215만톤 중 국내 생산량은 3만톤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국제 밀 가격 변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뚜레쥬르 측은 "제품 생산에 꼭 필요한 국내외 원부재료 가격이 크게 오르고 가공비, 물류 비용 등도 급상승하면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선물시장에서 밀 가격은 전년 대비 40% 폭등한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러시아의 밀 수출 억제 조치, 기후 변화로 인한 작황 타격,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간 봉쇄 조치 등이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인건비 상승도 빵값 인상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제빵 업계의 평균 임금은 약 20% 상승했으며,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숙련된 제빵사들의 인건비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한 대형 베이커리 체인점의 경우 전체 운영 비용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3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에너지 비용의 증가도 빵값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소 규모의 베이커리 한 곳에서는 월평균 에너지 비용이 작년 대비 25% 증가했다고 한다. 오븐 가동, 매장 운영에 필요한 냉난방 비용 등 에너지 비용은 전체 운영 비용의 약 15%를 차지하며, 이는 5년 전과 비교해 5% 포인트 이상 증가한 수치다.
정부 물가 통제 사각지대에 놓인 빵
빵이 한국인의 주식이 아니라는 점도 빵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한 전문가는 "빵은 한국인의 주식이 아니어서 정부의 물가 통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쌀과 달리 빵은 필수 식품으로 인식되지 않아 정부 차원의 가격 안정화 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부터 제빵 산업에 대한 실태 조사를 착수했다. 국내 제빵 시장의 현황과 거래 구조, 가격 상승 요인 등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조사 결과는 올 연말에 발표될 예정이다.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관련 규제 및 유통 구조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비자 부담 가중, 시장 구조 개선 필요
국내 빵값의 지속적인 상승은 소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최근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생활 필수품의 가격 상승은 저소득층에게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의 가격 인상은 중소 베이커리와 개인 제과점에도 영향을 미쳐 전반적인 빵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 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독점적 구조를 완화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 좋은 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원재료 가격 안정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함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 투자를 통해 장기적으로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노력도 필요한 상황이다.
향후 전망과 대안 모색
빵값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원재료 가격 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개입이 중요하며, 장기적으로는 시장 구조 개선을 통한 건전한 경쟁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또한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소비 습관과 함께 중소 베이커리와 개인 제과점의 경쟁력 강화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제빵 산업이 건강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형 프랜차이즈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을 견제하고, 다양한 경쟁 업체들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과 함께, 에너지 효율성 개선, 유통 구조 합리화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빵값이 더 이상 세계 최고 수준에 머물지 않고,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대를 형성하기 위한 산업계와 정부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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