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력망 '대전환' 시작됐다…HVDC 프로젝트가 여는 '66조 규모' 기자재 시장

[더구루=김예지 기자] 일본이 제7차 에너지 기본계획을 통해 전력망 재편이라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 육성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기존의 이중 주파수 체계를 보완할 핵심 수단으로 광역 해저 초고압직류송전(HVDC)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전력 기자재 수급 경색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 내 조달 환경도 한계에 직면하면서 기술력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가치사슬(GVC) 편입 기회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3일 코트라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오는 2040년까지 에너지 자립률을 30~40% 수준으로 높이고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지원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과거 대비 8배 이상인 1000만kW 규모의 전력망 정비를 추진한다. 이를 위해 오는 2050년까지 약 6~7조 엔(약 57조원~66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특히 산지가 많은 일본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해저 HVDC 구축이 광역 송전망 확충의 핵심 사업으로 부상했다. 현재 홋카이도와 혼슈를 연결하는 동부 프로젝트와 주고쿠와 규슈를 잇는 서부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대규모 기자재 발주가 단계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일본 전력망은 메이지 시대 발전기 도입 과정에서 형성된 동일본 50Hz, 서일본 60Hz의 이중 주파수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지역 간 전력 융통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실제로 동일본대지진 당시에는 서일본 지역의 잉여 전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면서 전력 수급 불안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발전 잠재력이 높은 홋카이도·도호쿠·규슈 지역과 대규모 전력 수요가 집중된 수도권 간 거리적 제약까지 더해지면서 출력 제어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장거리 대용량 송전에 유리한 HVDC 도입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광역 전력망 구축 사업의 핵심은 해저 HVDC 프로젝트다. 동부 프로젝트는 홋카이도와 도호쿠 지역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공급하기 위해 약 800km 규모의 해저 HVDC 케이블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총 사업비는 1조5000억~1조8000억 엔(약 14조원~17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서부 프로젝트는 주고쿠와 규슈를 연결하는 약 54km 구간에 HVDC 설비를 구축하는 사업으로 약 4200억~4400억 엔(약 3조 9000억원~4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서부 프로젝트는 오는 2039년 3월 완공을 목표로 사업 절차가 진행 중이며, 동부 프로젝트는 자금 조달과 사업 구조 검토가 병행되고 있다.
다만 글로벌 전력망 투자 확대는 일본 프로젝트의 또 다른 변수로 꼽힌다. 유럽연합(EU)의 REPowerEU 정책과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력망 현대화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HVDC 케이블과 변환설비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주요 공급업체들의 수주 잔고가 늘어나면서 공급 부족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본 내 주요 제조사인 스미토모전공과 후루카와전공 역시 해외 프로젝트 수행과 생산시설 확충 일정으로 인해 단기간 내 대규모 내수 수요를 모두 충당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공급망 변화가 한국 기업들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LS전선 △LS일렉트릭 △효성중공업 △현대일렉트릭 등은 HVDC 케이블과 초고압 전력 기자재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전력사들이 오랜 기간 자국 중심의 보수적인 조달 체계를 유지해 온 만큼 직접 납품보다는 히타치에너지, 지멘스에너지 등 글로벌 HVDC 시스템 공급사 및 EPC 기업의 공급망에 2·3차 벤더로 참여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진출 전략으로 평가된다.
특히 해저 케이블 보호관과 접속 자재, 초고압 전력망 감시 계측 장비, 진단 솔루션 등 기술 차별화가 가능한 고부가가치 틈새 품목이 유망 분야로 꼽힌다. 일본 전력사들이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인증 취득과 현지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 선제적으로 시장 진입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국내 대기업의 HVDC 본선 설비 수주와 연계해 중소 협력사들이 주변 장치와 부품을 패키지 형태로 공급하는 동반 진출 모델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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