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건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1974년 1월 30일, 한국과 일본은 동중국해 남부 대륙붕 일대를 공동으로 탐사·개발하기 위한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에 서명했다. 불안정한 해양질서와 대륙붕 경계획정에 관한 법적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던 당시, 양국은 경계획정을 뒤로 미루고 자원개발 협력을 우선하는 절충적 해법을 택했다. 그 결과 설정된 한일공동개발구역(Joint Development Zone, JDZ)은 일종의 잠정적 관리 체제(provisional regime)로서 출범하였다.

1978년 6월 22일 협정의 발효 이후, JDZ는 단순한 해저 자원개발의 공간을 넘어 동중국해 질서의 안정화를 담보하는 지정학적 위기관리 장치로서 기능해왔다. 실제 자원개발의 성과는 제한적이었으나, ‘합의 없는 단독행위 금지’ 원칙과 한일공동위원회의 합의제 운영 구조는 양국 간 잠재적 갈등의 확산을 제도적으로 억제하는 핵심적 완충 장치로 작동하였다. 다시 말해, JDZ는 실질적 개발성과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분쟁 억제와 관계 안정이라는 정책적 효과를 달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완의 개발 레짐’이자 동시에 ‘성공한 위기관리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러나 협정 발효 50주년이 다가오는 2028년 6월 22일, JDZ는 다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협정의 시효 만료는 단순한 제도의 종료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의 해양질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묻는 전략적 질문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위기이자 기회이다. JDZ는 이제 개발 중심 레짐에서 지속가능성과 공생을 지향하는 해양 거버넌스 체제로 재구상될 수 있는 ‘전환의 창(window of opportunity)’ 앞에 서 있다. 협정이 종료된다면, 유보되어 온 대륙붕 경계 문제가 재점화되고, 중국의 해양팽창 전략과 미·일의 인도-태평양 전략(FOIP)이 맞물리면서 동중국해의 긴장은 다시 고조될 수 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 해양생태계 보전, 블루카본(해양 및 연안 생태계가 흡수하고 저장하는 탄소, 육상의 그린 카본에 대비) 복원과 같은 진화된 국제규범 및 환경정책 의제들이 협정체계 속에 제도적으로 내재화될 수 있는 조건이 점차 현실적 가능성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JDZ의 50년, ‘위기관리 제도’에서 ‘지속가능성의 플랫폼’으로
그동안 JDZ는 종종 ‘개발이 지연된 실패한 협정’, 혹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의 운영 과정을 면밀히 보면, JDZ는 오히려 지정학적 위기관리의 제도적 장치로 기능해왔다. 한국은 대륙붕의 ‘자연적 연장(natural prolongation)’ 원칙을, 일본은 ‘중간선(median line)’ 원칙을 고수하며 근본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JDZ는 군사적 충돌과 외교적 파국을 방지하는 완충지대로 작동했다. 개발의 지연이 '경제적 비효율'로 보일 수는 있으나, 외교적 안정성을 유지한 '정치적 성공'이기도 했다.
JDZ의 역사는 1974~2000년의 ‘발전주의적 위기관리 체제’에서 2000년 이후 ‘지속가능성의 플랫폼’으로 이행해온 과정이었다. 다시 말해, 개발 중심의 해양질서가 점차 보전과 공존의 원리를 내포한 새로운 거버넌스로 변모해온 것이다.
1970~90년대 제1기는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 안보가 국가 생존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던 시기였다. JDZ는 해저 자원탐사와 개발을 통한 산업 성장과 경제안보 확보를 목표로 한 전형적인 발전주의형 체제였다. 기술체계는 석유 시추, 지질탐사, 해저자원 매핑(mapping) 등 산업기술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환경적 지속가능성보다는 자원 추출의 효율성과 수익성 극대화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2000년대 이후, 국제사회가 기후위기를 인류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면서 JDZ는 ‘지속가능성의 플랫폼’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JDZ는 천연가스와 희소광물의 잠재 매장지를 포함할 뿐 아니라, 탄소포집·저장(CCS)과 블루카본 복원(Blue Carbon Restoration) 등 차세대 기후기술을 실험할 수 있는 전략적 해양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제 JDZ는 산업과 안보의 관점을 넘어, 기후·생태·지속가능성의 언어로 재해석되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JDZ, ‘해양보호구역(MPA)’으로의 전환 가능성
JDZ를 MPA(해양 보호 구역, Marine Protected Area)으로 재구상하려는 논의를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기존 개발 전략에 ‘환경’을 부가적으로 연결하는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다. JDZ의 MPA 전환은 해양을 어떻게 인식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관한 패러다임 전환, 곧 개발 중심의 자원 레짐에서 지속가능한 공동관리 체제로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그동안 JDZ는 두 국가의 이해가 첨예하게 교차하는 경계적 해역이자, 잠재적 갈등의 압력이 상존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MPA 구상은 이 공간을 더 이상 ‘영유권 경쟁의 무대’로 상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적 협력·생태 복원·공생적 자원관리를 매개로 공동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해양협력의 장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이다.
JDZ가 MPA로 전환될 경우 기대되는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해양공간은 갈등의 전선이 아니라 협력의 플랫폼으로 전환된다. 분쟁을 ‘관리’하던 논리가, 해양을 공동의 생태·자원 기반으로 바라보는 공동관리의 논리로 대체된다. 둘째, 과학조사· 자원평가· 생태복원에 대한 공동 연구 체제가 정착될 수 있다. 해양학, 기후과학, 지질자원 탐사 등에서의 공동 데이터·모니터링 체계는 신뢰를 제도화할 수 있게 하는 핵심 기반이다. 셋째, 한일 양국, 더 나아가 동북아 해양질서에서 ‘공생의 규범’을 형성하는 계기가 마련된다.
이는 경쟁과 억제의 해양정치에서 상호책임과 연대의 해양정치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MPA는 단순한 해역 보호 정책이 아니다. 국제 해양 거버넌스의 제도적 실험공간이자 해양질서 전환의 촉매에 해당한다.
마침 국제사회는 2030년까지 전 세계 해양의 30%를 보호하자는 ‘30 by 30’ 글로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 1982)은 자원 개발권과 환경 보전 의무를 병행할 것을 명시하였고, 생물다양성협약(CBD, 1992)은 생태계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국제적 책무로 확립하였다. 이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2015)와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 2022)는 ‘보전과 이용의 조화’를 초국경 해역에도 적용해야 할 국제규범으로 격상시켰다. JDZ의 MPA화는 이러한 규범적 흐름을 제도 속에 내재화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JDZ의 MPA 전환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요청에 대한 적극적 응답에 가깝다. JDZ가 ‘분쟁 관리의 바다’에서 공존과 지속가능성의 바다로 전환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라 동북아 해양질서의 미래를 다시 쓰는 역사적 전환이 될 것이다.

JDZ, 공존의 바다를 향한 새로운 상상력
MPA 제도는 이제 단순한 생태계 보전정책을 넘어선다. MPA는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과 기후위기 대응을 동시에 추구하는 복합적 제도 인프라로 기능한다. 다시 말해, 해양을 ‘보전의 대상’과 ‘관리의 주체적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핵심 수단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보전과 이용의 균형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이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생물다양성협약(CBD),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 등 국제규범의 진화에 부응하며 MPA 제도를 발전시켰지만, 그 제도적 경로는 다르게 형성되었다. 한국은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2007)을 중심으로 중앙정부 주도의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하며, 블루카본 생태계를 국가 기후정책과 연계하는 ‘생태-기후 연계형 모델’을 발전시켜 왔다.
반면, 일본은 「해양기본법」을 틀로 삼고 지역 어업협동조합과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내재화한 ‘지역공동체 기반 참여형 모델’을 발전시켰다. 즉, 한국은 제도적 일관성과 정책 조정력을 강점으로 하고, 일본은 지역 수용성과 지속성을 핵심 역량으로 축적해온 셈이다.
이 차이는 바로 JDZ의 향후 전환 논의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JDZ는 그동안 실질적 개발 성과는 미미했지만, ‘합의 없는 단독행위’를 제약함으로써 갈등을 억제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협정 종료가 다가오는 지금, JDZ는 단순한 자원개발지가 아니라 동북아 해양질서의 안정과 기후위기 대응을 동시에 요구받는 전략적 공간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JDZ의 MPA 공동 지정은 현실적 대안이자 미래지향적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는 분쟁 억지와 안정적 관리 기능을 유지할 뿐 아니라, 블루카본 복원·과학조사·생태 회복·기후정책 연계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제공한다.
한국의 중앙관리 역량과 일본의 지역 참여형 거버넌스가 결합될 때, JDZ는 더 이상 ‘개발 지연의 공간’이 아니라 공존과 지속가능성을 설계하는 새로운 해양 거버넌스 플랫폼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바다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공생을 통해만 지속될 수 있는 공동의 환경이다. JDZ는 그 전환의 첫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해양의 시대, 공존의 바다로
202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종군위안부, 강제징용, 교과서, 그리고 독도 문제가 과거의 그림자라면, JDZ의 존속문제는 미래의 방향을 묻는 과제다. JDZ는 더 이상 과거의 외교적 타협이 아니라, 한일 양국이 미래의 해양질서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험대이자 예언적 공간이다.
JDZ의 미래는 더 이상 ‘누가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느냐’의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누가 더 지속가능한 바다를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JDZ가 산업적 효율성을 넘어 기후·생태·규범을 통합하는 복합적 해양협력 모델로 전환될 때, 양국은 경쟁의 바다를 협력의 실험장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제 JDZ는 산업동맹의 무대가 아니라, 규범동맹과 공생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술은 더 이상 국익의 도구가 아니라, 기후·생태·안보를 매개하는 공공적 관리 메커니즘으로 작동해야 한다. 협정 체결 50주년을 앞둔 지금, JDZ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선택은 동북아 해양질서의 미래를 가늠할 리트머스가 될 것이다.
JDZ가 ‘실패한 개발협정’이 아닌 ‘성공한 위기관리 제도’, 나아가 기후위기 시대의 공생적 해양 거버넌스 모델로 재탄생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외교적 성취를 넘어 새로운 해양 문명의 서막이 될 것이다. 해양의 시대, 한일의 공존은 JDZ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 박창건 교수는 2005년 영국 셰필드대학교(University of Sheffield) 동아시아학과에서 일본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2017년부터 국민대학교 일본학과에 재직 중이다. 현재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경북일보 객원칼럼위원, 고려대학교 아세아연구원 국제관계연구소 객원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학술·정책·언론을 연계한 연구와 사회적 소통에 힘쓰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의 정치외교, 동아시아 해양정책, 지역협력 이론이며, 2025년부터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해양전략연구센터 센터장을 맡아 해양규범, 해양분쟁, 해양환경 거버넌스 등 동북아 해양질서와 관련된 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