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 3D 애니메이션 기술은 거들 뿐
아이즈 ize 영림(칼럼니스트)

스포츠의 유구한 역사만큼 스포츠를 소재로 한 만화의 역사 또한 깊다. 야구를 소재로 한 만화만 떠올려 봐도 '4번타자 왕종훈', '메이저', 'H2'가 있고, 축구를 소재로 한 만화도 무궁무진하다. 여기에 8090세대를 열광케 했던 피구를 소재로 한 만화, 최근에는 일본 내에서 배구 붐을 일으킨 '하이큐!'라는 만화도 있다.
그러나 농구를 소재로 한 만화라면 떠오르는 작품은 역시나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슬램덩크'다. 완결된 지 2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팬들은 강백호가 재활에 성공해서 다시 코트로 돌아왔는지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궁금해 한다. 완결 후에도 끈질기게 이어진 이 같은 질문에 원작자 이노우에 타케히코는 2014년 12월 '슬램덩크' 1억부 돌파를 기념해 한 폐교의 칠판에 북산고 5인방의 10일 후 모습을 그리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흰 수건을 둘러메고 초록색 칠판에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을 살려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참새가 와서 들이박았다던 벽화를 그린 솔거 같아 보였다.
이 이벤트로부터도 무려 9년이 지나서야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했다. 단행본으로도 최종장에 해당하는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경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미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에 의해 적지 않은 부분이 원작과 달라졌으며 극의 주인공 역시 강백호가 아닌 송태섭을 내세웠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것은 이 작품이 가진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준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은 당연히 원작 '슬램덩크'의 매력에 기인한 것이다. 사실상 100%라고 무방하다. 만화책으로 보며 상상했던 코트를 끄는 신발 소리, 선수들이 가쁘게 몰아쉬는 숨 소리,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선수들의 움직임이 3D 애니매이션으로 구현된 것도 상당한 쾌감을 주지만 그 쾌감을 느끼는 이유조차도 원작 '슬램덩크'의 매력 때문이다.
사실 원작 '슬램덩크'의 이야기 구조는 굉장히 단순한 편이다. 격투기를 소재로 한 스포츠 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불량 청소년이 우연한 계기로 운동부에 가입하게 돼 재능을 발견하고 팀의 주전으로 거듭난다는 이야기와 유사하다. 위기에서 도망치기 급급했던 나약한 소년이 운동의 재능을 발견하는 패턴과 함께 가장 널리 쓰이는 구조인 것이다.
그럼에도 '슬램덩크'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원작 주인공 강백호가 마치 물을 머금은 죽순처럼 쑥쑥 자라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단번에 슬램덩크를 꽂을 수 있는 인물이지만 레이업 슛을 익히고 2만번의 프리드로우를 군말없이 수행하는가 하면, 다음 경기에서는 반드시 그 연습의 성과를 보곤 했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모든 독자를 북산고 감독으로 만들었다. 키우는 맛이 있는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강백호를 깔보던 상대팀 감독들이 천방지축으로 코트를 누비는 강백호의 행동에 "여기에 왜 강백호가..."라며 말문이 막히는 모습도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이런 강백호의 안티테제가 바로 서태웅이다. 원작에서는 중학교 농구부 에이스임에도 오로지 집에 가깝다는 이유로 북산고를 선택하거나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도 팀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등 오히려 정통(?) 불량학생 출신인 강백호보다 더 아웃사이더의 기질을 가진 인물로 묘사됐다. 특히 서태웅은 강백호와 일대일 대결을 펼쳐 그를 완벽하게 압도하고 원작 전개 내내 강백호와 대립각을 세웠다. 슬램덩크의 명대사 "왼손은 거들 뿐" 그리고 서태웅과 강백호가 산왕공고를 이긴 후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이 올컬러 명장면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밖에도 전국제패를 입에 달고 살지만 팀을 위해 기꺼이 골 밑에서 가자미가 되기를 자처하는 채치수, 중학교 농구 MVP에서 심한 방황을 겪어 코트에서 초주검이 되어도 3점슛을 쏘아 올리는 정대만, 그리고 그를 믿고 리바운드에만 전념하는 강백호 등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배경이 되는 산왕공고전이 원작에서도 마지막 에피소드였던 까닭은 북산고 농구부 5인방에 이렇게까지 성숙해졌음을 어필하는 자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과거의 팬들이 코트 안에서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고 싶었다면 지금 당장 스포츠 채널을 켰을 것이다. 기술적으로나 규모로 보나 '슬램덩크'의 주인공들이 고교생임을 생각한다면 프로 농구가 훨씬 화려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작 어느새 농구계에서조차 '한국 농구가 망하는 이유', '아직 한국 농구가 망하지 않은 이유'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이례적인 흥행은 "농구가 보고 싶었다"는 말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이 신기술을 만나 스크린 안에서 제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는 바람 때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SBS에서 방송됐던 '슬램덩크' TV판만 봐도 앞선 해석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 정대만이 3점슛을 쏘면 골대에 들어갈 때까지 불량학생이던 시절, 중학교 시절 회상부터 시작해 최소 이틀이 걸리는가 하면 북산고 농구부가 보여주는 스피디한 플레이가 시작되려나 하면 작화 붕괴 현상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항간에 원작자가 TV판을 보고 욕설을 내뱉었다는 이야기도 돌았는데 어쩌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답답하면 너네들이 뛰던가"의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이 결과물에 3040세대는 물론 MZ세대 역시 열광하고 있다. 산왕공고전이 펼쳐지기 전 북산고 5인방의 서사를 전혀 모르는 세대마저도 반응한다는 것은 '슬램덩크'가 자랑하는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극화체 화풍, 몸치도 농구를 하고 싶게 만드는 스토리가 다시 한 번 통하는 무기임을 증명한다.
때문에 3040세대인 필자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을 처음 만난 MZ세대가 부럽고 질투가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할수만 있다면 능남전도, 해남대부속과의 경기도, 상양전도, 풍전고전도 본 적이 없는 그들의 눈을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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