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사로잡은 매운간짜장, 식당도 손님도 대를 잇네

이준희 기자 2024. 10. 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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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경기 연천 ‘명신반점’
경기도 연천군 명신반점 대표 메뉴인 매운간짜장. 일반적인 간짜장과 달리 면과 소스가 함께 나온다. 이준희 기자

첫 만남은 우연처럼 찾아왔다. 취재를 위해 점심시간 즈음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을 찾았다. 지하철 1호선 전곡역에 내려 형형색색 가을 점퍼를 입은 등산객들과 우중충한 군복을 입은 군인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무리가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오래된 식당. 간판에는 ‘명신반점’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홀린 듯 무리에 섞여 들어가 1층에 남은 자리 하나를 안내받았다. 다른 손님들을 따라 매운간짜장이라는 다소 생소한 메뉴를 주문했다. 짜장면을 먹고 생각했다. ‘아,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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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선 알아주지만 텔레비전(TV) 출연 등은 하지 않은 지역 맛집을 소개하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의 마감 순서가 다가온 차였다. 깔끔한 매운맛에 바로 감이 왔다. 며칠 뒤 따로 시간을 내 한 번 더 가게를 찾았다. 중국집의 생명인 튀김 요리를 먹어봐야 결정할 수 있을 듯했다. 입을 즐겁게 하는 바삭한 탕수육. 우연은 운명이 됐다. 연천 토박이들에게 식당에 대해 물었다. 답이 한결같았다. “아, 그 집 정말 맛있죠. 근데 지금도 사람 많아서 소문나면 진짜 곤란한데….”

다행히 연천 안내원을 자처한 서희정 전 연천군의원과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김대용 대표, 고경환 활동가와 함께 가게를 찾았다. 2층으로 안내를 받았는데 넓은 가게에 손님들이 가득했다. 서 전 의원은 “제가 1993년에 결혼해서 경북 청도에서 연천에 왔고 1994년 임신을 했는데 이곳 짜장면이 너무 맛있어서 당시 매일 점심을 여기서 먹었다”며 그때 짜장면 먹을 때 배 속에 있던 아이가 지금은 결혼해서 엄마가 됐다”고 했다. 가게를 자세히 살피니 1972년부터 영업을 했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주문을 서둘렀다. 요리 2개(탕수육 소, 깐풍육 소)와 식사 4개(삼선간짜장, 삼선짬뽕, 매운간짜장, 베이컨볶음밥)를 시켰다. 요리가 먼저 식탁에 올랐다. 깐풍육은 각종 야채가 어우러져 색깔부터 맛깔스러웠고 탕수육은 취향에 맞게 먹을 수 있도록 소스가 따로 나왔다. 우리는 ‘부먹’을 선택했다. 앞접시에 튀김을 덜어놓고 깐풍육부터 맛을 봤다. 튀김옷과 고기 사이가 야들야들했고 양념이 매콤달콤해 입맛이 돌았다. 곧장 탕수육을 입에 집어넣었다. 소스를 얹었는데도 바삭함이 살아있었고 튀김옷 속에 고기가 꽉 차있어 입안이 즐거웠다. 한동안 튀김옷만 두꺼운 탕수육들에 지쳐있던 터라 더 반가웠다.

식사도 줄줄이 식탁에 올랐다. 삼선간짜장과 삼선짬뽕은 해물이 가득 올라있어 식감을 자극했다. 특히 짬뽕국물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깊은 해물맛이 느껴졌다. 이 가게 특별 메뉴라 할 수 있는 매운간짜장과 베이컨볶음밥도 별미였다. 매운간짜장은 간짜장이라는 이름과 달리 면이 짜장소스에 비벼져 나오는데, 잔뜩 섞인 양파와 돼지고기가 면과 잘 어우러졌다. 잘게 썰어 넣은 청양고추 덕분에 기분 좋게 매콤했다. 이름을 보고 항상 궁금했던 베이컨볶음밥은 밥알과 계란이 고슬고슬 잘 볶아져 있어 짜장소스를 올려 먹어도 맛있고 그냥 먹어도 별미였다. 중간중간 먹는 식초 뿌린 단무지와 양파는 아삭함이 살아있어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맛있게 배를 채운 뒤 가게를 돌아봤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오후 2시)인데도 손님이 계속 들어섰다. 연천사람들은 여기서 모두 점심을 먹나 싶을 정도였다. 중간 휴식시간(3시30분) 쯤에야 다시 가게를 찾아 사장 장규흥(63)씨와 대화를 나눴다. 기자의 ‘삼고초려’ 끝에 인터뷰를 허락한 장씨는 “지금까지는 장사 흐름이 끊길까 봐 티브이 출연이나 이런 것도 모두 거절했다”며 식당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밝히는 명신반점의 역사였다.

명신반점은 1972년 화교 출신인 장씨의 아버지가 연천에 연 가게로 당시에는 대중적인 중식보다는 연천에서 나는 특산물을 중국식으로 요리했다. 특히 한탄강 일대에서 잡히는 쏘가리를 이용해 중국요리인 도미탕수처럼 튀겨냈는데, 연천지역 군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장씨는 “장교들이 승진 전에 최전방인 연천에서 복무할 때 모두 우리 가게를 거쳤기 때문에 육군본부에는 ‘명신반점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지금은 쏘가리 요리는 내놓지 않지만, 우연을 운명으로 만든 튀김 맛에는 깊은 전통이 있었던 셈이다.

명신반점 깐풍육과 탕수육 소. 1∼2인분 정도의 양으로 사람 수가 적어도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탕수육은 소스가 따로 나와 취향에 따라 먹을 수 있다. 사진은 소스를 부은 상태. 이준희 기자

가게 뿌리도 생각보다 더 깊었다. 연천에 가게를 낸 때는 1972년이지만, 실제로는 중국 산둥성 출신 장씨의 할아버지가 황해도 재령으로 넘어와 터를 잡았고, 그곳에서 장씨의 아버지가 중국집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전쟁 시기 남쪽으로 건너온 뒤 연천에서 가게를 이어갔으니 역사가 약 80년은 되는 셈이다. 지금은 장씨의 아들까지 대를 이어 4대째 중국요리를 하고 있다. 장씨는 “손님들이 대를 이어 계속 찾아주시고 저희가 대를 이어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니 보람차다”고 했다.

남녀노소 찾는 맛의 비결은 뭘까. 장씨는 “특별한 비법은 없다”고 했지만, 이내 요리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했다. 장씨는 “매운간짜장은 오로지 고춧가루와 청양고추로만 매운맛을 낸다”며 “캡사이신은 전혀 쓰지 않는다”고 했다. 짬뽕도 캡사이신 대신 고춧가루와 해물, 야채 등으로만 국물맛을 냈다. 실제 명신반점 짬뽕은 다른 중국집과 달리 새빨간 색이 아닌 밝은 주홍빛이었다. 맛도 자극적이지 않고 속이 편안하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명신반점에 대한 평가에 “드디어 옛날 짬뽕맛을 찾았다”는 말이 따라붙는 이유였다.

손님에 대한 다양한 배려도 인상 깊었다. 과거에는 요리류가 중자와 대자만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식사와 요리를 즐길 수 있도록 1∼2인분에 해당하는 소자를 만들어 판매한다. 실제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군인 중에는 이렇게 식사와 요리 모두 맛보고 부대로 복귀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그냥 볶음밥은 조금 심심한 듯해서 베이컨을 넣어봤는데 반응이 좋아서 계속 내놓고 있다”는 장씨의 말처럼 메뉴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었다.

명신반점 사장 장규흥씨(왼쪽)와 아내 김성희씨. 이준희 기자

이날 4명이 요리 2개와 식사 4개를 먹고 치른 가격은 6만1천원. 탕수육 소 1만원, 깐풍육 소 1만5천원, 삼선간짜장 9천원, 삼선짬뽕 1만원, 매운 간짜장 8천원, 베이컨볶음밥 9천원이었다. 일행들이 “오늘이 생일인 것 같다”며 요리에 식사까지 맛있게 즐기고도 한 명당 1만5천원꼴이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대를 이어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는 ‘박리다매’ 전략으로 보였다. 장씨는 “저희 가게는 주방에만 6명이 일하고 전체 직원은 13명 쯤 돼 이렇게 많이 팔아야 월급을 줄 수 있다”며 “지역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자부심”이라고 했다. 푸짐한 인심만큼 푸근한 미소가 장씨의 얼굴에 번졌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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