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리뷰] 용의 해, 양평 용문사에서 용의 기운을 얻다

[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갑진년, 새해 1월 1일에 양평에 있는 용문사에 올랐다. 용문사는 7세기 중엽 신라 진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용문사의 龍門은 말 그대로, 용이 되는 관문이라고 한다. 용의 문으로 들어가야 어려운 시험 등의 관문을 통과한다는 뜻의 ‘등용문’도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의 해이기도 하고, 마침 우리가 묵었던 숙소도 용문사에서 멀지 않은 양평이었기에 용의 기운을 얻고자 1월 1일 아침 떡국을 만들어 먹고 용문사로 향했다.

용문사 입구
용문산엔 눈이 쌓여 있다.
용문사 입구엔 농업박물관이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
용문사는 의병의 본거지였다.

용문사가 영험이 있는 건 이름 말고 따로 있다. 수령이 1100년이나 된 은행나무가 그것이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신라 경순왕 때 고려에 투항한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 잠시 용문사에 들러 망국의 슬픔을 달래며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 지팡이에서 움이 텄다는 설과,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해골물의 깨우침을 얻고 돌아와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텄다는 설이 전해진다. 마의태자 지팡이면 1100살이고, 의상대사의 지팡이면 1400살이다. 공식적으로 1100살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마의태자의 설이 좀 더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용문사답게 용이 문을 떠받치고 있다.
올라가는 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계곡에는 잔설 사이로 개울물이 흐르고 있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 기록되고 있는데 조선 태종은 이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고 ‘세상 모든 나무의 왕’이라고 불렀고, 세종대왕은 당상관 직책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사천왕문을 대신한다고 천왕목이라고도 불렸고, 수 차례의 전쟁과 환란에 함께 해 호국목이라고도 불렸다. 신령스러운 건 또 하나 있다. 1907년 일본군에 맞서 의병의 근거지였던 용문사를 일본군이 불태웠는데 이 은행나무만 타지 않고 살아남은 것으로 유명하다.

용문사에 그 전에 없던 철탑이 세워져 있다. 벼락을 대신 맞기 위한 피뢰침이다.
수령 1100년이 된 용문사 은행나무
용문사 대웅전

양평 용문사는 양평읍내에서 멀지 않다. 차로 20~30분이면 도착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해발 1,157미터 용문산 꼭대기엔 전날 내린 눈이 쌓여 새하얗다. 주차장에서 용문사까지는 약 1km 정도 거리다. 차를 세우고 걸어가면 된다. 작년부터 사찰 입장료가 무료가 되어 주차비만 내면 된다. 2시간 정도 주차하면 3천원 정도 나온다. 전날 눈이 많이 내려 용문사까지 가는 길은 상당히 미끄럽지만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걸어 올라갈 수 있었다.

용문사를 서너 번 왔지만 올 때마다 생경스럽다. 올라가는 길에 그 전에 보지 못했던 높은 철탑이 하나 세워져 있다. 절에 안테나가 세워졌을 리도 없고 뭐지? 하면서 올라갔는데 올라가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벼락이 은행나무에 치지 못하도록 만든 피뢰침이었다. 신령스러운 은행나무를 지키기 위해 천년 고찰에 어울리지 않은 철탑을 세울 정도이니 그 노력이 가상하다.

용문사 전경
대웅전 안에는 기도를 올리는 신도들이 가득했다.

양평 용문사에 들른 또 다른 이유는 백팔배를 위해서다. 올해 고3이 되는 첫째를 위해 아내는 대웅전에서 백팔배를 올렸다. 그리고 은행나무 앞에서도 기도를 올렸다. 양평 용문사에서의 이 기도가 효험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여행 팁) 거의 모든 사찰 앞에는 식당이 늘어서 있다. 어디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건 비추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에 맛이 떨어지는 곳은 없겠지만 딱히 훌륭한 곳은 거의 없다. 용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차장에서 2~3분 정도 내려가면 메밀촌 두부마을이라는 식당이 있다. 메밀 전문식당이다. 13,000원짜리 메밀촌 정식을 주문하면 보리밥과 메밀부침, 메밀만두, 메밀국밥, 메밀떡, 막국수를 먹을 수 있다. 가성비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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