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외교관들 “北당국, 주민들에 ‘두 국가론’ 설득 못한 듯”
한국 온 北외교관 12명 중 7명 참석
임종석 ‘두 국가론’ 발언에 “분노 금할 수 없어”
북한 외교관 출신 고위 탈북민들이 최근 북한이 ‘적대적인 두 국가론’ 관련 헌법 개정 여부를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언한 두 국가론에 대응해 일관된 대북 정책과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외부정보 유입,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北정권도 통일 지우기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
10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개최한 ‘탈북 외교관들이 보는 8·15 통일독트린 vs 두 개 국가론’ 토론회에는 1991년 탈북한 ‘탈북 외교관 1호’ 고영환 통일교육원장(전 주콩고 북한 1등서기관)을 비롯해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처장(전 주영국 북한 공사), 류현우 전 주쿠웨이트 북한 대사대리, 리일규 전 주쿠바 북한 참사, 김동수 전 주이탈리아 북한2등서기관, 이영철 전 핀란드 주재 북한대사관 2등서기관, 한진명 전 주베트남 북한 3등서기관 등이 참석했다. 현재까지 12명의 북한 외교관이 한국 땅을 밟았는데 절반이 넘는 7명이 이날 한 자리에 모인 것.
북한이 7일부터 이틀 간 진행된 최고인민회의에서 통일·민족 삭제를 비롯, 적대적인 두 국가론과 관련한 헌법 개정 여부를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태 처장은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이해, 설득력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통상 북한이 새 정책을 발표하면 간부나 주민들이 관영매체에 나와서 적극 홍보를 한다”며 “그 과정이 끝나면 노동신문에서 이 정책이 왜 정당한지에 대해 논설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까지 관영매체에 단 한 번도 북한 간부나 주민이 나와서 두 국가론을 지지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끝내 김정은이 이것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브레이크가 걸린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이 진정한 통일 포기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 전 서기관은 “적대적 두 국가론은 김정은 정권의 호전성과 취약성을 동시에 반영한다”며 “북한의 전통적인 대남 노선을 ‘김정은표 핵 무력 통일전략’으로 대체한 것”이라고 했다. 고 원장도 “북한 정권에게 있어서 아직도 ‘통일 지우기’는 굉장히 부담스럽다”며 “대다수 북한 주민은 ‘내 인생을 통째로 조국 통일에 바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외부정보 유입·국제 공조가 北정권에 핵폭탄”
이 전 서기관은 “변하지 않는 탈북민 정책, 변하지 않는 정보 유입, 변하지 않는 국제적 공조야말로 북한 주민에게는 힘이 되고, 독재 정권에는 무서운 핵폭탄이 될 것”이라며 “국제적 공조, 압박, 여론은 김정은 체제도 대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 원장도 “해외에서 김정은 이름을 결부시켜 비판하면 알게 모르게 김정은 책상 위에 보고서가 올라간다”며 “이게 반복되면 그 보고서를 올리는 간부가 불편해지고 김정은도 ‘밖에서 이런 얘기 안 나오게 대책을 강구해봐라’ 이런 식으로 되니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했다.
한 전 서기관은 “정보 유입 활동은 오늘 내일 시작될 일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 속에 우리들의 정보를 정확히 캐치하고 전달할 수 있는 이런 준비 세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북한은 실질적으로 3명 이상 모이는 게 힘든 나라기 때문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10명 이상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날 류 전 대사대리는 최근 “통일하지 말자”는 최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발언에 대해 “반통일, 반국가적인 말을 한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임 전 실장은) 통일을 하지 말자고 할 권리가 없다. 역사가 결정하고 민족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발언은 보수 진보를 떠나서 반한법적인 발언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본다”며 “김정은 밑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우리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품어야지 누가 하겠느냐. 반민족적 발언이고 국민들이 다 분개해야 할 처사”라고 직격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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