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 스튜디오에서 마신 특별한 스페셜티 커피 코스

안녕, 에디터 유정이다. 얼마 전 블루보틀에서 초대장이 날아왔다. 5월 3일, 한국 진출 5주년을 맞은 블루보틀이 종로구 소격동에 ‘블루보틀 스튜디오 서울’을 오픈한다는 소식이었다. 매년 새로운 매장을 오픈하고 있으니, 여기까진 별로 놀랍지 않았다. 다음 대목이 핵심이다. 그곳에서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스페셜티 커피를 코스로 선보이는데, 초대에 응하면 오픈 전날 특별히 창립자 제임스 프리먼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다녀왔다. 총 8가지 커피와 2가지 디저트로 구성된 특별한 코스, 그런데 이제 블루보틀의 창립자가 직접 내어 준. 지금부터 그 후기를 들려드린다.

‘블루보틀 스튜디오 서울’은 한옥이 늘어선 좁다란 골목길 안에 위치해 있다. 대문으로 들어서 작고 소박한 중정을 지나면 오직 6명의 손님을 위해 마련한 작은 방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오늘의 페어링 코스가 진행됐다.

골목을 지나 대문을 건너 방으로 향하는 짧은 여정은 마치 바깥 공간과 단절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자연스럽고 정갈한 공간에서 오롯이 커피에만 몰입할 수 있게 설계된 것 같았다. 이 공간은 기존 ‘블루보틀 삼청 한옥’이 있었던 곳으로, 세계를 무대로 한국적인 공간 디자인을 선보이는 양태오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새롭게 단장되었다.

씨드(SEEDS)

처음으로 준비되는 메뉴의 이름은 ‘씨드’. 맹물에 에스프레소를 한 방울 똑 떨어뜨린 것 같은, 보리차보다도 훨씬 맑은 수색의 씨드는 커피를 극도로 라이트하게 로스팅해 차처럼 만든 독특한 메뉴다. ‘커피콩 차’라고 하면 설명이 될 것 같다. 풍부한 향을 내기 위해 주로 고급 와인을 마실 때 하는 ‘디캔팅’이라는 행위를 접목해 ‘디캔터’에 음료가 담겨 나오는 것도 독특했다(향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시각적으로 즐거웠다). 씨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풋풋한 흙 향이 얼핏 나는, 대지의 느낌을 가진 차였다.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산뜻하게 입맛을 돋워주었다.

솔루블(SOLUBLE)

그다음 준비된 코스는 ‘솔루블’. 블루보틀의 인스턴트 커피 파우더가 담긴 유리잔을 건네준 다음, 향을 맡고 나면 눈앞에서 물을 부어준다. 인스턴트 커피에 ‘크래프트(공예)’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았을 때부터 느껴졌던 자부심이 이번 코스 구성에서도 느껴졌다. 물론 인스턴트 커피에 물만 부어서 낸 만큼 맛에 차별점은 없었다.

롱 컵(LONG CUP)

전 세계에서 극소량으로 수확되는 희귀 원두 3종을 선보이는 ‘롱 컵’. 분쇄된 커피 가루를 물 위에 뿌리고 대나무 패들로 천천히 저어 브루잉한다. 커피의 향을 보존하는 전통적인 침지식 추출 방식이다.

국내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캘리포니아 원두와 최근 각광 받는 아시아 커피 산지인 대만, 500년 커피 역사를 보유한 예멘의 커피까지 3종을 한 번에 마셔볼 수 있었다. 셋 다 구수한 맛보다는 산뜻하고 가벼운 산미를 강조해 가벼워진 옷차림과도 잘 어울렸다. 예멘의 커피가 가장 독특했는데, 톡 쏘는 향신료와 과일의 산미로 시작해 약간은 느끼한 듯 부드러운 바닐라로 마무리됐다.

파테 드 프뤼 (PATE DE FRUITS)

코스를 넘어가기에 앞서 프랑스식 과일 젤리 ‘파테 드 프뤼’를 내어준다. 특별히 봄 제철을 맞은 방아잎을 넣었고, 내어주기 직전에 신선한 라임즙을 뿌려준다. 극도로 상큼한 과일과 향긋한 허브의 향이 입안을 완벽히 환기해 준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때 LP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주앙 지우베르투라는 브라질 음악가의 보사노바, ‘O amor, o Sorriso e a Flor’. ‘숏 컵’을 내리기 직전 바리스타의 눈짓에 따라 음반이 교체되고, 노래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가 물줄기를 흘려보내는 손짓이 마치 우아한 교향악단의 지휘를 감상하는 것 같았다.

숏 컵(SHORT CUP)

‘숏 컵’은 일본의 킷사텐에서 영감받은 메뉴다. 제임스 프리먼이 ‘이름과는 달리 전혀 숏하지 않다’고 말했을 만큼 준비 과정이 아주 길고 정성스러웠다. ‘넬’이라는 양모로 짠 천을 사용해 커피를 추출하는데 그 과정을 보고 있으면 마치 커피를 내린다기보다 ‘달여낸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맛도 비슷했다. 정성껏 달인 한약의 쓴맛 같기도 하고 톡 쏘는 산미가 느껴지기도 하는, 입안의 감각을 깨우는 새로운 맛이었다. 커피를 천천히 우려내 신맛, 쓴맛, 단맛 등 여러 풍미가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오 레(AU LAIT) & 다쿠아즈

숏 컵과 같은 커피에 우유를 곁들인 라테도 마셔볼 수 있었다. 커피 위로 따뜻한 우유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풍성한 거품이 가득 생기는데, 가볍고 보글보글한 질감의 거품이 다 마실 때까지 꺼지지 않아 부드럽게 즐길 수 있었다. 뾰족했던 풍미가 우유를 만나 둥글어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함께 제공되는 달콤한 다쿠아즈를 찍어 먹으니 궁합이 완벽했다. 우유는 요청 시 오트밀크로 변경할 수 있다.

디제스티프(DIGESTIF)

코스의 마지막 순서는 ‘디제스티프’. 커피를 처음 발견한 에티오피아에는 커피에 향신료를 첨가해서 마시는 전통이 있는데, 거기에서 영감을 받은 색다른 식후주다. 에티오피아산 인스턴트 커피에 에티오피아의 향신료 블랙 카다멈, 우리나라의 증류식 소주인 ‘여유 소주’에 달콤한 맛을 위해 바닐라 빈을 더했다. 처음에 커피만 단독으로 맛봤을 때는 진하고 달콤한 커피 리큐르에 스모키한 향의 향신료를 톡톡 뿌린 맛이었다. 진한 커피에 향신료, 소주까지. 강렬한 맛의 총집합이 조금은 과한 느낌이었는데(특히 평일 낮에 마시기에는) 우유를 조금 부어서 마시니 훨씬 부담스럽지 않게 마실 수 있었다. 일전에 인도식 밀크티 ‘짜이’ 전문점에서 럼을 첨가한 짜이를 맛 본 적이 있는데, 그 음료를 팔팔 끓여 졸이면 비슷한 맛이 날 것 같다. 전체적인 코스에 강렬한 마침표를 찍는 메뉴였다.

블루보틀 스튜디오 서울(https://tinyurl.com/bdfthxy7)은 5월 3일부터 단 7주 동안 예약제로 운영된다. 인당 8만 7,000원으로 부담되는 비용임은 분명하지만 국내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희귀한 원두와 독특한 추출 방식, 예상치 못한 재료와의 조합으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커피 외에 코스를 이루는 것들도 인상적이었다. 90분 코스에 완벽히 몰입할 수 있는 공간, 코스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음악, 눈앞에서 섬세하게 커피를 다루는 바리스타의 퍼포먼스까지. 모든 것들이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래서 더욱 일상적이지 않고 특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