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北에 ‘핵잠수함 대여’ 가능성도…韓, ‘공격용 무기’ 지원은 신중해야”
“한반도 유사시에 러 개입할 수도…러와 적극 대화해 북·러 협조 지연시켜야”
(시사저널=이원석·박성의 기자)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첫 단계"(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러시아를 돕기 위한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파병 소식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신(新)냉전'을 넘어 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물론 전쟁 당사국의 과장 섞인 전망일 수 있으나 적어도 그 불씨가 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각각 핵을 갖고 있으면서 반미(反미국) 등 같은 가치를 공유하며 군사적 '빚'까지 주고받은 두 국가의 '위험한 혈맹'이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세계가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가장 긴장할 수밖에 없는 쪽은 당연히 한국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더욱 고조되는 가운데 본격화하는 신냉전 속에 북·중·러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환경이 더욱 아슬아슬해졌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선명한 사태 파악이 먼저다. 북한의 전투병력 파병은 이제 확실해진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옳을까. 작금의 긴장 사태가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할까. 시사저널은 다수의 외교·안보 전문가의 진단을 빌려 현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해 봤다.
北 '전투병력'의 전장 투입 여부가 관건
이제 북한군 파병은 기정사실화된 모습이다. 우크라이나가 가장 먼저 파병 사실을 강력 주장했고, 우리 국정원은 10월18일 "북한이 특수부대 등 4개 여단 총 1만2000명 규모 병력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공식화했다.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서방도 한동안 확인을 미루다 최근 북한의 파병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밝혔다.
다만 현시점에서 중요한 지점은 북한이 실제 전장에 투입되는 '전투병력'을 투입했느냐다. 우리 국정원은 북한의 파병 사실을 전하면서 "(병력들이) 적응 훈련을 마치는 대로 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구체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서방은 여전히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미국 현지시간으로 10월23일 북한군의 러시아 이동 사실을 파악했다고 전하면서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함께 전투에 임할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매우 우려되는 가능성"이라고 전제를 달았다. 커비 보좌관은 북한군 파병이 우크라이나 전황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현재 북한의 정확한 의도나 목적을 알지 못하기에 판단하기 이르다고 거듭 밝혔다.
국정원 고위 간부 출신의 한 안보 전문가는 "정보에 있어 파병 사실이 최종 확인되는 건 전장에서 북한의 병력이 확인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파병 자체도 중요하지만, 실제 전장에 투입되는 전투병력인지가 미국 등 서방의 대응 수위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고 봤다. 서방의 신중한 태도는 그만큼 북한의 전투병력 파병 여부가 국제정세에 중대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으로도 읽힌다. 커비 보좌관은 "북한의 파병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칠 영향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에 미칠 영향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북한이 파병 사실을 매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볼 필요는 있다. 주요국들이 북한의 파병 사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나 양국은 수상하리만큼 발끈하며 '모르쇠'로 일관 중이다. 이는 그만큼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경우 더욱 강력한 국제 제재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고, 러시아 역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결과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노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등을 맡고 있는데 안보리 제재 결의에 정면 위배되는 행보를 하게 되면 국제적 위상과 신뢰도가 추락할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가 상당히 고민들이 있을 것 같다"고 추측했다. 최종적으로 북한 병력이 실제 전투 현장에 투입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투 목적의 파병이 실제 이뤄졌다면 북한과 러시아가 이토록 '위험한 거래'에 나선 이유는 뭘까. 우선 북한의 이번 파병은 지난 6월 북·러가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조약'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조약의 제4조에는 북·러 중 한 나라가 침공을 받을 경우 지체없이 군사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미 그 전부터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 지원 등은 지속적으로 해왔고, 새 조약을 러시아와 체결하면서 전투병의 파병 약속까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美 본토 앞까지 북 핵잠 이동 가능해질 수도"
북한과 러시아는 현재 모두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러시아는 2년 넘게 소모전 성격으로 이어진 전쟁으로 심각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또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기에 러시아가 조금이라도 땅을 더 차지하려는 '고지전' 성격의 막판 총력전을 준비하기 위해 북한에 파병을 요청했다는 관측도 있다.
북한의 필요는 상당히 복합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표면적으로 거론되는 건 돈과 김정은 체제의 안정이지만, 또 다른 핵심 요인으로 꼽히는 건 기술 협력 가능성이다. 북한이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핵과 미사일에 쓰이는 첨단기술을 약속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자국 병사의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러시아를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러시아도 북한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들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 필요는 김정은의 최대 안보 분야 목표인 핵잠수함·정찰위성 관련 기술들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정 센터장은 "북한과 러시아가 과거 냉전시대보다 더 끈끈하게, 현재의 한미동맹과 같은 '혈맹'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며 "러시아가 북한에 핵잠수함을 대여할 가능성도 있고, 결국엔 미국 본토 앞까지 북한의 핵잠수함이 이동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경환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파병과 러시아의 기술 협력을 별개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기술 협력이란 건 상당한 노력과 대가가 필요한데, 푸틴(러시아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국가는 자기들 나름의 합리적인 시스템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이번 파병으로 그 정도 수준의 '레드라인'은 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추측했다. 다만 조 교수의 견해 또한 기술 협력이 이뤄졌을 경우 그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란 걸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일이 벌어질 경우 국제정세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파가 불어닥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중에서도 한국이 직면한 위기는 가장 직접적이다. 핵 위협뿐만이 아니다. 국정원에서 30년가량 북한분석관으로 근무한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는 북한이 이번 파병으로 전쟁터에 나설 경우 "1950~70년대 무기로 버티던 북한의 재래식 무기가 획기적인 질적 개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전 경험도 쌓게 된다. 향후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도 커졌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6월 체결된 북·러 협정을 떠나 이번 파병으로 인해 러시아가 빚을 진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에 비상 상황이 생길 경우 러시아가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그런 차원에서 북한의 이번 파병은 미래 안보를 담보하기 위한 보험"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국정원이 북한의 파병 사실을 파악한 이후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통령실은 국정원의 북한 파병 관련 첫 공식 발표가 있기 직전 윤 대통령 주재로 긴급 안보회의를 갖고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고, 10월22일엔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향후 단계별 상황 전개에 따라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까지 지원할 수 있다는 계획도 밝혔다. 상황에 따라 살상용 무기 지원 가능성도 열어둔 것이다. 이러한 정부 대응에 대해 김열수 실장은 "기존엔 정부가 비살상무기를 지원한다는 방침이었지만, 북한이 1만 명 넘게 파병하는 상황에서 기존 방침을 유지하기엔 국제사회의 압력이 굉장히 커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대응 강도도 높여 나갈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러시아와의 긴밀한 대화가 가장 중요한 시기"
다만 다수의 전문가는 정부가 이번 사태 대응에 지금보다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조경환 교수는 "대통령 혹은 정치인들이 어떤 상황을 자신의 정치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할 유혹을 느끼게 되는데, 그래선 안 되고 정부가 이 국면에서 현실 인식을 정확히 해야 한다고 본다"며 "긴장감은 유지하되 앞으로 국제사회가 북한을 강하게 고립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발을 맞춰서 조금 더 느리게 가야 하고 내부적으로 절제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특히 일부 전문가는 미국과 나토 등 서방에 비해 이례적으로 빨랐던 우리 국정원의 북한 파병 관련 발표에 대해 '섣불렀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살상무기 지원이나 인력 파견 가능성에 대해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검토'가 협상 수단이 될 수 있는 카드들이므로 이 카드를 바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들고 러시아와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우리의 완급 조절에 러시아도 호응할 수 있도록 모든 채널을 동원해 러시아와 직접 대화하고 북·러 협조를 지연시키거나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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