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실명까지 공개한 공익신고자들…"류희림 민원 사주 의혹 수사해야"

이명선 기자 2024. 9. 2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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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직원 3인, 공개 기자회견…"류희림 민원 사주 목적은 여론 호도"

"류희림 씨의 민원 사주가 실행된 지 1년이 지나가고 이제 증거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익명의 신고자라 하더라도 충분한 자료와 증거를 증빙하면 국가기관을 통해 합리적인 조사와 판단이 이뤄질 거라 기대했으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이제 저희는 익명 신고자가 아닌 실명의 공익 신고자로서 류희림 씨의 민원 사주 의혹을 제기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일에 국회와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류희림 민원 사주' 의혹을 공익 신고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직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얼굴과 이름 등 신분을 공개하며 류희림 방심위원장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공익 신고자 지경규 지상파방송팀 차장, 탁동삼 연구원, 김준희 언론노조 방심위지부 지부장 등 3인은 "20년 안팎으로 애정을 가지고 다닌 직장 방심위는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독립적인 사무를 수행해야 하는 심의기구"라며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적기구의 구성원으로서 비리나 공익 침해행위가 발생하면 신고해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굳이 법적 책임을 따지지 않아도 직업인으로서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지켜야 할 양심이 있었다. 그래서 저희는 양심에 따라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공익 신고를 하고 외부에 알렸다"면서 "돌아온 대가는 이어진 고발과 경찰의 수사, 권익위의 방관, 공익 신고에 도움을 주거나 엮인 정황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게 압수수색당하는 동료 직원들의 고통"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류희림 씨는 민원 사주 행위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임기를 무사히 마친 것은 물론, 3년 임기의 위원장으로 연임돼 지금 이 순간에도 업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3인은 "공익 신고자로서 독립심의기구 방심위 직원으로서 당당히 신분을 밝히고 모든 조사에 응하겠다"며 "류희림 씨도 본인의 말처럼 억울하다면 더 이상 경찰 조사를 핑계로 민원인을 가장한 가족과 지인들의 뒤에 숨지 말고 나와서 함께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내내 류희림 위원장을 '류희림 씨'라고 호명했다.

▲ 9월 2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류희림 방심위원장 '민원사주' 공익 신고자 신분 공개 기자회견-우리는 왜 공익 신고자가 되었나'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류희림과 민원인 관계, '구글링' 통해 확인…"집단 민원의 목적은 여론 호도"

지경규 차장은 '류희림 민원 사주' 의혹을 처음 인지하고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의혹을 제기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9월 4일 오후부터 방심위로 MBC의 <뉴스타파> 인용 보도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그 민원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특정인을 중심으로 다량의 민원 내용이 유사한 구조라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 2022년 대선을 앞두고'(라고) 시작하는 내용의 민원들이 다수였다"고 말했다. 2023년 9월 4일은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에서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파일 보도에 대해 "방심위 등 감시하는 곳에서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고 발언한 날이다.

지 차장은 민원이 들어온 시점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에 대해서는 1000건 이상의 민원이 들어왔다. 이런 다량의 민원은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란이나 쟁점이 되는 시기에 집중된다"며 "그런데 MBC의 <뉴스타파> 인용 보도는 지난해 9월 4일 기준으로 1년 반 전에 있었던 방송이었다. 시의성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 차장은 "9월 5일 이후에 류희림 씨의 쌍둥이 동생과 아들이 민원을 넣었다는 사실을 동료들에게 듣게 됐"고 "이들이 (민원 내용에) 입력한 이메일 정보로 '구글링'(구글 사이트 검색)을 했고, 그 결과 류희림 씨와 사적 이해관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민원을 넣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탁동삼 연구원도 구글링을 통해 류 위원장과 민원인 간의 사적 이해관계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는 "제가 알 수 있는 정보는 유사한 민원 내용을 넣었던 다수의 민원인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이 전부였다"며 "확인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른바 구글링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검색이었다"고 했다.

탁 연구원은 류 위원장과 민원인들의 이름을 같이 검색해 부고 기사를 찾았고, 해당 기사에 나온 이름과 가족 관계 등을 토대로 SNS 계정 및 활동 내용을 살펴 류 위원장과 민원인의 관계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메일을 통한 검색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키워드 조합 등의 과정을 통해서 류희림 씨의 전 직장 동료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류희림 씨의 동생이 운영하는 단체 소속 직원 등을 파악할 수 있었고, 약 20여 명·50여 건에 이르는 직접적인 민원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 탁 연구원은 자신이 확인한 내용을 지 차장과 공유했지만, "막상 밝혀진 엄청난 사실 앞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고 했다. 그는 "월급을 받아서 가족을 건사하는 직업인으로서 위원장의 비리를 알린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며 "그러나 두려움을 넘을 수 있게 해준 것은 시민기구의 일원으로서 가져온 직업적인 양심 그리고 동료와 회사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이었다"고 했다.

▲ 방심위 탁동삼 연구원이 9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구글링'을 통해 류희림 위원장과 민원인 간의 사적 이해관계를 확인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준희 지부장은 집단 민원의 목적에 대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서라고 확신한다"며 "정상적으로는 심의할 수 없는 대상을 억지로 심의하기 위해서 거짓 명분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건의 본질은 여론 조작"이라고 재차 강조한 뒤 "여론 조작을 목적으로 방심위원장이 방심위 심의 시스템을 사적으로 침탈한 업무방해 사건이고 직권남용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김 지부장은 "진작에 사퇴했어야 마땅한, 그리고 당연히 해촉되었어야 할 류희림 씨는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재위촉을 받았고 지금도 위원장 자리에 있다"며 "민원 사주 범죄자가 적반하장으로 공익 신고자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권익위와 경찰은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 진짜 범죄자를 비호하고 있다. 류희림 씨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유유히 빠져나가는 이 현실을 견디는 게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류희림 씨에게 묻는다. 가족과 지인들을 민원에 반영하지 않았나(사주하지 않았나)"라며 "국민 앞에서 당당하게 해명하지 못한다면 공직자 자격이 없다. 지금이라도 물러나야 된다"고 촉구했다.

이들을 대리해온 박은선 변호사는 "류 위원장과 민원인들의 이해 관계는 구글링 등 매우 적법한 방법으로 알아낸 것"이라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도 검토했지만 정당 행위로서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권익위가 해당 사건을 '판단 불가'라며 방심위로 돌려보낸 데 대해 "증거가 너무 확실해서 공익 신고에 대한 처리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증거가 확실하니 진행도 굉장히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판례에 비춰보아도 그 위법성이 크기 때문에 권익위가 제대로 된 처분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박 변호사는 특히 법원이 지난 2019년 12월 제3자 명의로 '대리 민원'을 신청한 방심위 직원의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하면서 밝힌 판결문 내용을 언급하며 '류희림 민원 사주'는 "(방심위의) 핵심 가치인 공정성·공공성을 크게 훼손하는 행위"로 "결코 용납하여서는 아니 될 종류의 비위 행위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류 위원장은 권익위에 민원 사주 의혹 관련 조사 기간을 연장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실에 따르면, 방심위는 지난 20일 권익위에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신고사건 송부 관련 기간 연장 통보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해충돌방지법 시행령(23조)에 따르면, 조사기관은 위반행위 신고를 이첩·송부받을 경우 60일 이내에 조사를 마쳐야 한다. 다만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권익위에 사유 및 기간을 통보한 뒤 연장할 수 있다.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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