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올린 미래 제조업 … 韓, 비전을 현실로 만들 '생산거점' 돼야
대형 원자력발전소를 대체할 것으로 주목받는 소형모듈원전(SMR)은 설계 능력을 보유한 회사는 여럿이지만 막상 제작과 운영을 할 수 있는 기업을 찾기 힘들다.
소형 인공위성, 직접탄소포집(DAC)과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설비 등도 미래 첨단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생산 분야에선 뚜렷한 강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관련 기술력과 경험을 두루 갖춘 제조업체가 전 세계적으로 드문 탓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본격 양산 단계에 이르지 않은 산업은 일단 시장이 개화하면 사업 '실적(트랙레코드)'을 갖춘 기업들이 상당 기간 독과점적 이익을 향유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이 한국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 국내 시장에서 관련 사업 경험을 미리 쌓아놓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매일경제신문 비전코리아 프로젝트팀이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함께 22일 개최하는 제33차 국민보고대회에서 5대 첨단파운드리 시장을 한국 제조업의 주요 먹거리로 제시하는 것은 해당 산업의 성장성과 한국의 기존 제조 생태계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먼저 SMR, 소형 인공위성, 탄소포집설비 산업은 현재 시장 규모가 약 40조원대로 크지 않다. 하지만 개발 단계를 지나 10여 년 뒤 본격적인 상용화 단계에 이르고, 2040년께 대량 공급이 시작될 시점에는 3000조원이 넘는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특히 SMR은 이른바 4세대 원전으로 불린다. 물로 핵연료의 열을 식히는 기존 경수로나 중수로 방식이 아니라 나트륨과 납, 소듐 등을 활용하는 원자력발전 방식이다. 소규모로 제작이 가능하고 해변가에 위치할 필요가 없는 점, 방사능 유출을 원천 차단하는 설계 등으로 차세대 에너지원이라고 불린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설계에 들어간 SMR은 뉴스케일파워, 엑스에너지, 테라파워 등 미국의 주요 원전 설계업체를 중심으로 시범 원자로 제작이 진행 중이며 2030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설계 시장은 미국이 주도하지만 1960년대 이후 직접 제작을 하지 않은 탓에 미국 내에서는 가치사슬(밸류체인)이 무너져 있다. 반면 한국은 지속적으로 원전을 건설·운용해온 강점이 있다. 국내에서 두산, SK, DL, 삼성 등 주요 대기업이 설계회사에 투자하고 협력을 시도하는 이유다.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SMR 시장 발주처로 적극 나서면 한국 기업들은 사업 실적을 미리 쌓을 수 있다. 미국 에너지부 차관을 지낸 클레이 셀 엑스에너지 최고경영자(CEO)는 인터뷰에서 "두산, DL 등 주요 한국 업체는 시공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무대로만 인식된 인공위성 시장도 저궤도 통신·안보위성 시장이 태동하면서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다. 유로컨설팅에 따르면 2030년대에는 매해 2500개 이상의 인공위성이 발사될 전망이다. 특히 저궤도 위성은 대기권에 위치하기 때문에 부식과 고장 우려로 수명이 2~3년으로 추정된다. 교체 주기가 빠른 만큼 지속적인 제작 시장이 형성된다는 의미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통신용 저궤도 위성으로 가장 빨리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통신과 안보주권 문제로 세계 각국이 저궤도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화시스템을 비롯해 쎄트렉아이, 나라스페이스 등 벤처기업이 설계·제작 시장에 뛰어들었다. KT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관련 기업과 정부 기관에서 산업 육성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발주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CCUS는 2040년 2000조원대로 성장하는 초거대 시장이다. 대형 제조업체들은 탄소 발생 저감을 위해 공장마다 CCUS 설비를 갖춰 탄소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상쇄하는 방식으로 '넷제로'에 도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70년께 전 세계 이산화탄소 감축량의 15%(연간 100억t)를 CCUS 플랜트가 담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기술 실증 단계에 있다. 국내에서 SK머티리얼즈는 미국의 '8rivers'라는 DAC 기술을 보유한 CCUS 기업에 12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한국전력과 한국석유공사 등이 관련 산업에 투자해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적극 발주할 필요가 있다.
이들 신산업에서 파운드리를 선점하려면 '트랙레코드'가 가장 중요하다. 국내에서는 원전, 우주방산, EPC 플랜트 생태계가 이미 있고 투자도 진행돼 있는 만큼 전문적인 제작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급선무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민관 합동 메가펀드를 조성하고, 이 자금으로 시험생산 발주를 한다면 설계기술을 실현하는 데 가장 앞설 수 있다.
[진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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