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레바논 휴전 일축' 체면 구기고도 이스라엘에 또 군사지원
미국이 레바논 휴전 협상이 몇 시간 내 발표될 것이라며 언론 브리핑까지 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곧바로 휴전을 일축하며 체면을 구겼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을 향해 이스라엘에 더 큰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촉구한 가운데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87억달러(약 11조4400억원) 규모 추가 군사 지원을 확보했다.
미 CNN 방송을 보면 유엔 총회 연설을 하루 앞두고 2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도착한 네타냐후 총리는 기자들에게 "내 정책, 우리 정책은 분명하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헤즈볼라 공격을 계속할 것이다. 모든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휴전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앞서 이스라엘 총리실도 휴전에 대한 "보도"는 "부정확하다"며 "이는 미국과 프랑스의 제안이고 총리는 아직 응답조차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총리실이 언급한 "보도"는 미 정부의 휴전 관련 언론 브리핑에서 비롯됐다. 네타냐후 총리가 휴전을 일축하기 불과 수 시간 전인 25일 오후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휴전 발표가 임박했다며 배경 설명 브리핑에 나섰다.
해당 브리핑에서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휴전 발표가 "몇 시간 내" 나올 수 있고 "21일간 휴전이 시행될 것"이라며 내용까지 미리 알렸다. 직후 네타냐후 총리의 일축으로 미국이 체면을 크게 구긴 셈이다.
미 백악관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WP)를 보면 26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관련해 기자들에게 휴전안이 "협정에 서명한 국가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도 신중한 협의를 거쳐 나왔다"며 "특히 이스라엘과의 대화가 그 목표를 지지한다고 믿을 이유가 없었다면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입장이 불확실했다면 성명을 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냐는 질문을 받고 "내가 정확히 그 말을 하진 않았지만 부정은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네타냐후 총리의 휴전 거부 배경엔 국내 정치적 압력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날 휴전 발표 임박 보도가 나오자 극우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은 헤즈볼라가 재편할 시간을 줘선 안 된다며 휴전 반대 의사를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극우 연정에 의지해 정권을 유지 중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 내부에서도 휴전 반대 목소리가 나왔고 제1야당 예시 아티드를 이끄는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도 21일 휴전은 너무 길다며 7일만 수용할 것을 주장했다.
미 CNN 방송은 네타냐후 총리의 휴전 거부는 "실망스럽긴 했지만 일부 당국자들에겐 몇 달간 존재했던 현실을 강조한 데 불과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특히 이스라엘 내부 정치적 반대에 직면했을 때 공개적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관계를 끊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급물살을 타는 듯 했던 협상안이 좌절되며 조속한 타결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6일 미 CNN 방송은 미 소식통이 협상이 향후 며칠 안에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되지 않고 그 과정이 더 길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공개적으로 휴전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헤즈볼라 또한 수용 압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상황에 정통한 인사들이 네타냐후 총리의 유엔 총회 연설 내용이 상황을 변화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인사들은 미국이 네타냐후 총리가 연설에서 가자지구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발표해 헤즈볼라가 휴전에 동의할 여지를 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중단 조건으로 가자지구 휴전을 내걸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27일 성명을 내 "이스라엘은 북부 국경 주민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미국 주도 이니셔티브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며 "앞으로 며칠간 이러한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와 함께 '21일 휴전안' 타결을 위해 움직였던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6일 캐나다 방송 CBC 및 라디오 캐나다와의 인터뷰에서 "헤즈볼라는 휴전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이제 모두가 (네타냐후 총리를) 기다리고 있다"며 "미국이 이제 그렇게(휴전안 수용) 하도록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압박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큰 실수이며 거대한 확전 위험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미국에 방문한 네타냐후 총리는 압박에 앞서 일단 87억달러 규모 군사 지원 확보라는 선물을 안고 가게 됐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26일 이스라엘 국방부는 전시 필수 조달을 위해 이미 수령해 주요 군사 구매에 배정된 35억달러 지원 외에 아이언돔·데이비드 슬링 등 방공망, 첨단 레이저 시스템을 위한 52억달러 규모 지원을 미국으로부터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이번 지원이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질적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진행 중인 군사 작전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지원이 특히 이란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집단으로부터의 안보 위협 대처에 있어 "이스라엘과 미국 간 강력하고 지속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스라엘과 대치 중인 헤즈볼라 또한 이란 지원 무장 단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무기 공급국으로 군사 지원 중단을 통해 이스라엘을 움직여 레바논 휴전은 물론 가자지구 휴전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지적을 받지만, 바이든 정부는 가자지구 전쟁이 시작된 지 거의 1년이 다 되도록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군사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내 가자지구 전쟁 반대 단체들의 핵심 요구도 정부가 이스라엘에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26일 유엔 총회 연설에 나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마무드 압바스는 국제사회를 향해 "이스라엘에 무기를 보내지 말라"고 촉구했다. <로이터> 통신 등을 보면 그는 연설에서 가자지구 전쟁을 "집단학살 전쟁(genocidal war)"으로 규정하고 "전 세계가 우리 국민에 일어나는 일에 책임이 있다"면서도 특히 미국을 지목해 미국이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에 거듭 반대해 휴전을 방해했다고 비판했다.
또 완충지대 설정을 포함해 "가자지구의 어떤 부분도 빼앗기는 것을 거부한다"며 이스라엘군의 완전 철수를 요구했다. 그는 "우린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7일 가자지구 전쟁 발발 뒤 이달 25일까지 이스라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4만1495명이 숨졌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은 계속됐다. 26일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목표물 220곳을 타격했다고 밝힌 가운데 CNN을 보면 레바논 보건부는 지난 24시간 동안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최소 92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번 주에만 이스라엘 공습으로 레바논에서 700명 가량이 숨진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교전이 시작된 지난해 10월부터 이날까지 레바논 쪽 사망자는 1500명이 넘는다. 레바논 국영 NNA 통신은 이스라엘이 27일 오전에도 레바논 남부의 여러 지역을 공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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