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진도 파울볼은 무섭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경기를 현장에서 중계했던 것은 2012년 캔자스 시티의 카우프만 스타디움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만큼 중계 시스템에 대한 꿈도 컸습니다. 중계석까지 오즈의 마법사처럼 황금 벽돌길이 깔려있을 걸로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앞서있는 게 있을 걸로 생각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의 배경이 캔자스라 황금벽돌길이라고 썼는데 사실 캔자스 시티는 캔자스주가 아닌 미주리주에 있습니다.)
현장에 도착해서 제 생각은 완전히 어긋났습니다.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캔자스 시티의 중계석에 대해 남아있는 기억은 ‘생명의 위협’뿐입니다.

캔자스 시티 로열스의 한국인 팬으로 현지에서도 유명했던 이성우 씨 <사진 OSEN>

우리(캐스터)는 화면을 보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캐스터는 시청자를 위한 서비스직이고 캐스터가 하는 말은 시청자가 보고 있는 화면에 맞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은 캐스터의 입장에서는 현장이건 스튜디오건 똑같습니다.
통상 중계석에는 PGM(실시간 중계차 PD커트 화면)과 On-air(pgm + 부조정실 자막가공으로 시청자가 보는 화면) 모니터 두 대가 있습니다. 두 모니터에는 시차가 있습니다.
PGM은 경기장 라이브에 매우 가깝습니다. On-air는 아무래도 방송사의 부조정실을 거쳤다가 자막 가공을 거친 화면이 다시 중계차로 돌아오니 지역과 망의 상태에 따라 0.5초에서 1초가량 느립니다. 캐스터는 PGM모니터를 보고 주로 말을 하면서 On air모니터에 뜨는 자막을 곁눈질로 체크해서 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PGM 모니터를 통해 타자 A가 타석으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면서 “A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라고 말을 하고, On-air 모니터에 A의 성적이 나오면 “A는 올시즌 0.280의 타율, 13개의 홈런, 70개의 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이렇게 기록을 말한 후, 다시 PGM모니터를 보면서 상대 투수의 1구부터 Play-by-play call에 들어가게 됩니다.

9월 26일 잠실야구장 중계석 캐스터 시점. 화면 오른쪽이 PGM, 왼쪽이 부조 가공을 거친 On air 화면. <사진 필자>

그런데 카우프만 스타디움에는 PGM 모니터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미국 현지의 On-air 모니터만 중계석에 한 대가 설치되어 있었어요.
저는 평소대로 모니터를 보고 중계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경기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서울의 부조정실에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제 멘트가 근소하게 타이밍이 늦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모니터가 아닌 현장을 보고 중계를 해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중계방송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중계석의 위치도 우리나라처럼 포수 후면이 아닌 1루 쪽 스카이 박스 쪽이었고 그 위치에서는 포구 위치가 타자의 몸쪽인지 바깥쪽인지도 도저히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 현장을 보고 중계방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환경이었습니다.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중계석 시야 <사진 필자>

카우프만 스타디움이 자랑하는 대형 전광판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멘트가 화면을 앞서가는 중계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모니터 위주이되 최대한 현장을 보는 중계를 하고 있던 시점에 ‘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우리 중계석 바로 옆 스카이박스에 파울볼이 날아든 것입니다. 저는 그 시점에 모니터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은 ‘공포‘가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일한 모니터인 On-air 화면은 0.5초가량 느리고, 내가 그 0.5초 느린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미 타구가 나를 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냥 타구에 맞는 거죠. 아무 방비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요. 이런 공포감이 급습해 온 순간부터 중계방송은 뒷전이 됐습니다.
타격의 순간은 그라운드를 보다가 투구의 로케이션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모니터로 자연스럽게 눈이 돌아가면 또 파울이 나오고, 저는 다시 섬뜩해하면서 그라운드를 응시하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2012 MLB 올스타전'은 제 커리어의 모든 방송을 통틀어 가장 망친 중계 중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타구에 대한 공포심‘이었습니다.

부산사직야구장 중계석 시야 <사진 필자>

9월 25일, 스포티비 최두영 캐스터가 대구에서 파울 볼에 맞았습니다. 최 캐스터가 웃으면서 올린 게시물에는 TBC(대구민방) 김대진 캐스터가 조심하라면서 본인도 두 번 맞았다고 본인의 경험을 댓글로 썼습니다.
그들이 파울볼에 맞은 이유는 하나입니다. 집중하면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공이 오는 것을 모르고 맞은 것입니다.
김대진 캐스터의 지난해 sns 게시물 중에는 중계석으로 날아오는 파울볼을 김용국 위원이 잡는 장면이 포착된 게시물도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DBJtS4NCcvc/?igsh=MTdhZmV2ZzdlcW9h
뿐만 아니라 지난해 티빙 중계에서도 대구에서 민병헌 위원이 파울볼에 맞을 뻔한 상황이 있었더군요.
https://www.instagram.com/reel/DBGBCVNuU3t/?igsh=MmY3Z3I2aDdqNHJr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중계석 시야 <사진 필자>

현재 KBO 야구장 가운데 파울볼이 중계석으로 날아올 가능성이 있는 야구장은 대구, 부산, 인천인데 그중 인천은 몇 년에 한 번 공이 뒤로 바운드 되어 들어오는 정도라서 크게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대구와 부산은 종종 파울볼이 다이렉트로 날아듭니다. 부산의 경우, 3연전에 한두 번은 파울볼이 같은 라인에 있는 창문을 때립니다. 그럼에도 부산은 창문이 열리지 않는 다른 칸을 선택할 수 있어서 중계석 창문이 열리는 칸에서 파울볼에 맞았다면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대가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구조가 바뀌기를 바라기는 합니다.)
반면 대구는 모든 중계석이 다 같은 구조입니다. 창문을 닫는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해설위원들의 시야가 창틀에 가려서 주로 창을 열고 중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올해 유독 파울 타구들이 중계석으로 자주 향하고 있습니다.

창원NC파크 중계석 시야 <사진 필자>

다행히 삼성 라이온즈 구단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었고, 9월 26일 통화에서 2026시즌을 앞둔 구장 보수를 할 때, 중계석 파울타구에 대한 안전조치를 항목에 넣겠다는 언급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야구팬들이 알다시피 우리나라 야구장의 시설은 야구단에서 직접 관리를 하지 않고, 지자체의 영향력이 매우 큰 관계로 구조를 바꾸려면 매우 복잡한 경로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중계진 - 그중 특히 그라운드가 아닌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캐스터 - 도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으로 경기장의 구조가 바뀌어서 앞으로 9월 25일의 최두영 캐스터처럼 중계진이 파울볼에 맞는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