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사망…中 G2 이끈 '상하이방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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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을 주요 2개국(G2) 반열로 이끈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30일 별세했다.
장 전 주석은 중국 공산당 3대 정파 중 하나로 분류되는 '상하이방(上海幇)' 좌장이었다.
상하이방은 시 주석이 당 지배력을 강화하기 전까지 중국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다수를 차지했지만 현재는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보수 색채가 강했지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적극 계승하며 중국 경제 발전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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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후계자…개혁·개방 지휘
집권기간 GDP 7배 이상 고성장
시진핑 집권 후 입지 급격히 약화
상하이방 몰락과 함께 눈 감아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을 주요 2개국(G2) 반열로 이끈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30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장 전 주석은 이날 낮 12시13분 백혈병으로 상하이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뒀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장쩌민 동지의 서거는 우리 당과 군, 각 민족 인민에게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그는 지난해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과 지난 10월 20차 당대회에 불참하며 건강 이상설에 휩싸였다. 장례위원장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맡는다.
장 전 주석은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마오쩌둥, 덩샤오핑의 뒤를 이은 3세대 지도자다. 1993년부터 10년간 국가주석으로 중국을 이끌었다.
그는 1989년 톈안먼 사태를 거치며 중앙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상하이 시장이던 그는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을 무력 진압한 정부를 옹호하면서 덩샤오핑의 신뢰를 얻었다. 같은 해 장 전 주석은 당 총서기로 발탁됐다. 그는 공산당 총서기(1989~2002년),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1989~2004년), 국가주석(1993~2003년)까지 맡으며 중국 최초로 당·정·군의 최고위직을 거머쥐었다.
장 전 주석은 중국 공산당 3대 정파 중 하나로 분류되는 ‘상하이방(上海幇)’ 좌장이었다. 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사로 구성된 상하이방은 시 주석의 파벌인 ‘시자쥔(習家軍)’과 대척점에 있다. 상하이방은 시 주석이 당 지배력을 강화하기 전까지 중국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다수를 차지했지만 현재는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보수 색채가 강했지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적극 계승하며 중국 경제 발전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대표 사상은 ‘3개 대표 이론’으로 전통 사회주의 국가에서 배척받는 자본가 계급을 포용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중국은 장 전 주석의 재임 시기인 2001년 미국 중심의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이 영향으로 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기업이 중국 투자를 급속도로 늘렸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장 전 주석의 지휘 아래 중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가 당 총서기에 오른 1989년 1조7200억위안(약 319조원)이었던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2002년 약 7배인 12조1700억위안(약 2260조원)으로 뛰어올랐다.
홍콩 반환(1997년)과 마카오 반환(1999년)도 그의 임기 내에 이뤄졌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도 유치하며 중국의 폐쇄적인 국가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데 기여했다.
굵직한 성과를 쌓았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톈안먼 시위 참가자에 대한 중국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에 대해 눈 감았다는 점에서 인권 유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1999년에는 종교단체인 파룬궁 신자 수천여 명을 구금하기도 했다.
한국과는 인연이 많다. 1995년 한국을 찾은 중국의 첫 번째 지도자다. 장 전 주석의 전임 지도자인 양상쿤 전 주석이 한·중 수교(1992년 8월)를 성사시킨 후 한국을 방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친분도 각별했다. 그는 사석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따거(大哥, 큰형님)”라고 부르며 존경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가입 압력을 거부하는 등 중립 외교를 펼친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해석됐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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