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숙도를 새까맣게 뒤덮었던 철새들을 떠올리며

김영동 2022. 11. 15. 18: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프리즘]

낙동강하구 생태공원 사진공모전 최우수 수상작 ‘오리날다’. 부산시 낙동강관리본부 제공

[전국 프리즘] 김영동 | 전국부 기자

1980년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부산 강서구 집에서 낙동강 하굿둑(1987년 준공)을 통해 사하구로 통학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하굿둑 가운데쯤 을숙도가 나오는데, 겨울철 그곳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철새가 새까맣게 내려앉아 있곤 했다. 철새 수천마리가 홰를 치다 일제히 날아오르는 모습을 종종 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야말로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친구들과 을숙도 갈대밭에 몰래 숨어들어 청둥오리나 고니 같은 철새를 잡아보려고도 했다. 천연기념물인 철새들을 잡다 경찰에 잡혀갈 수 있으니 을숙도 쪽으로는 가지 말라는 어른들 말에 겁을 먹고, 이후로는 을숙도에는 잘 가지 않게 됐다. 철새 말고는 갈대밭만 무성했던 허허벌판인 을숙도엔 별다른 놀 거리가 없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개발되지 않은 땅, 대신 먹잇감은 풍부했던 당시 을숙도는 철새에게는 낙원이었을 것이다.

2019년 1월, 20여년 넘게 낙동강 하구 철새 모니터링을 하는 환경단체 ‘습지와새들의친구’에서 고니가 사라져간다고 알려와 30여년 만에 을숙도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문화회관, 체육공원, 에코센터, 낙동강 생태탐방선, 부산현대미술관. 이들 시설에 딸린 주차장과 각종 편의시설…. 허허벌판이었던 어릴 적 기억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로 바뀐 모습이었다.

낯설었다. 새로 들어선 여러 시설보다도 겨울철이면 새까맣게 앉아 있었던 철새들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보호종인 큰고니 등 철새를 찾아보려고 을숙도 등 낙동강 하구를 종일 샅샅이 돌아다녔는데, 종일 돌아다녀 큰고니 10여마리를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철새 군락지가 낙동강 하구 곳곳, 사람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으로 잘게 쪼개져 있었기 때문이다.

습지와새들의친구는 2011년 4200여마리였던 큰고니 수가 2018년 1500여마리, 2019년 1200여마리로 해마다 줄어들었다고 했다. 박중록 습지와새들의친구 운영위원장은 “아파트 건설 등 낙동강 하구 근처 지역 여러 개발사업과 수변지역 도시화에 따른 철새 서식환경 악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낙동강 하구 철새 개체 수가 감소했다”고 분석한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조사한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를 보면, 2006년 1월 낙동강 하구에서 관찰된 조류 개체 수는 6만6961마리였는데 이후 차츰 줄어들어 2020년 1월에는 4만872마리로 조사됐다. 낙동강 하구를 찾는 조류 수가 줄어드는 것은 그만큼 자연환경이 훼손됐다는 방증이다.

부산시는 낙동강 횡단 교통량 증가 등을 이유로 대저대교 등 16개 다리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항 신항 물동량 증가, 에코델타시티 건설 등 서부산 개발로 2020년 하루 평균 58만6000여대 수준인 교통량이 2025년에는 73만6000여대가 될 것으로 전망돼 현재 다리 10개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낙동강 다리 건설 계획이 철새 서식처 파괴를 확대·증진할 것이라며 부산시에 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다리 건설에 따른 시민과 물류 편익’을 앞세운 부산시와 ‘자연보호의 생태적 가치 공공성 확보’로 맞서는 환경단체는 3~4년 동안 여러차례 토론회 등을 열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갈등만 커지는 모양새다.

답은 없을까. 시는 다리 건설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기존 낙동강 횡단 다리들의 연결로 증축과 신호체계 정비,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증편 등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차량 흐름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대안 마련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 을숙도는 다시 ‘철새의 천국’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평화로운 을숙도에서 수천마리 철새가 떼를 지어 날아오르는 장관을 본 적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언젠가는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이다.

ydkim@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