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제천 주택, 호숫가의 집

광활하게 펼쳐진 산과 호수의 풍경이 집 안으로 파도쳐 들어온다.
주택 주위로 조성된 ‘중간 영역’은 밀려드는 자연이 가족의 삶에 차분하게 흘러들 수 있도록 건축적 완충제가 되어준다.


친숙한 듯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의 주택은 ‘자연과 벗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실내와 외부의 적절한 연결을 위해 오랜 고민을 거쳐 만들어진 장치들이 집에 특별한 인상을 더한다. ‘건축사사무소 김남’에게 ‘호숫가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주택으로 들어서는 길목. 빨간색 문이 방문하는 이를 환하게 반겨 준다.

대지가 지닌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 이러한 자연과 외부 공간을 마음껏 누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이 집을 둘러싼 ‘중간 영역’ 혹은 ‘완충 영역’이라고
지금까지 도시인으로 살아온 건축주 부부가 이곳에서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실내와 자연 사이의 중간적인 공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실내는 실외의 조건과 상관없이 쾌적하게 유지되는 공간입니다. 말하자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비를 전혀 맞지 않는 공간이죠. 이와 달리 ‘중간 영역’은 실외의 조건을 조금 받아들이지만 보호되어 있는 공간이에요. 위를 덮은 ‘루버-거터’ 처마는 비를 막아주고, 살짝 올린 바닥은 평평해서 의자를 두고 앉을 수도 있으며 흙탕물이 넘쳐 들어오지 않아 안전하죠. 이렇게 보호받는 동시에 계절의 변화와 바람, 빗소리 등 자연을 생생하게 느낄 수도 있는 영역입니다.

집 주변을 감싸는 철제 프레임은 ‘중간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이면 방 안에만 있기보다 바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을 것 같았어요. 세탁 후에는 건조기만 돌리기보다 강한 햇볕과 바람에 빨래를 널어두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고, 가을에는 곶감도 말리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중간 영역’에서 이러한 활동이 더욱 편리하게 이루어지려면 저희가 일부분에 설치한 ‘루버-거터’가 없는 곳에도 천막 같은 것으로 그늘막을 펼칠 수 있는 프레임이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대지 주변의 이웃 주택들을 살펴보니 집마다 마당 쪽으로 캐노피를 설치해 테이블과 의자를 두기도 하고, 농작물 상자를 꺼내두기도 한 것을 발견하게 됐어요. 이를 보고 프레임으로 완충 영역을 더욱 쓸모 있게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겨서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외장 목재는 아세틸 처리가 되어 있는 제품으로 사이딩을 제작해 적용했다. 창문, 처마, 프레임 부재의 높이와 연관되기 때문에 사이딩의 높이를 정확히 통제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래서 바라본 ‘루버-거터’의 모습. 위치에 따라 한 겹 혹은 두 겹의 루버를 설치했다. 루버 사이로 바람과 햇빛이 순환하여 자연으로의 중간 영역을 완성해 준다.
1층 주변의 데크는 자연스러움을 주기 위해 부정형 판석으로 처리했다. 바탕 면인 콘크리트 슬래브에도 구배를 주어 줄눈으로 스며든 물이 외측으로 흘러 나갈 수 있도록 처리했다.
지하부의 데크 공간. 경사로 인해 생긴 지하 공간에서도 바깥 공간이 직접 연결된다. 아래층은 아들 가족이나 지인 가족이 방문하였을 때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루버-거터’라는 새로운 형식의 시설이 궁금하다. ‘루버-거터’의 특징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나
평소 관심을 두는 여러 가지 건축적 요소에 대한 생각이 조합된 결과물입니다. 루버형 지붕을 가진 프로젝트들은 생각보다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건축가 노만 포스터가 설계한 미국 댈러스의 ‘AT&T 퍼포밍 아트센터’ 같은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에 있는 루버는 멋진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는 하지만 결국 빗물은 모두 그대로 떨어집니다. 빗물을 모아서 바깥쪽으로 흘려보내면 비가 오는 날에도 쓰기 좋을 것 같아서 고민했는데요, 원래 지붕에 모인 물을 모아서 흘려보내 주는 건축 요소가 거터이기 때문에 이 거터로 루버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위치에 따라 한 겹 또는 두 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남측에 위치한 두 겹의 ‘루버-거터’는 거의 모든 빗물을 막아줍니다.
또한 ‘루버-거터’는 완전히 막혀 있는 것이 아니라 틈이 있기 때문에 아래에서부터 상승하는 더운 공기를 배출시켜 전체적으로 쾌적한 공간을 만들고, 빛도 투과시켜 줍니다.

‘루버-거터’의 제작 및 설치 과정은 어땠나
‘루버-거터’를 지지할 수 있는 프레임은 철재로 만들고 현장에서 도장했습니다. ‘루버-거터’ 부분은 빗물을 직접 맞아야 하기 때문에 도장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고, 스테인리스 스틸을 절곡해서 만들었습니다. ‘루버-거터’가 두 겹인 부분은 아래쪽 레이어를 먼저 프레임 하부에 매달았고, 그다음에 위 레이어는 프레임 상부에 얹히는 방식으로 설치했습니다.

급경사에 지어진 집은 바라보는 각도마다 서로 다른 인상을 만든다. 주택은 대지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나
경사가 심해서 앞마당과 이어지는 레벨에 지상 1층을 만들면 반대편은 공중에 띄워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띄워지는 쪽의 아랫부분에 지하층을 만들었습니다. 지하층의 서쪽은 땅속에 묻히고 동쪽은 다시 숲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땅에 묻힌 부분에 지열 보일러 기계실을 두었고, 숲을 향한 쪽에 주요 생활공간을 배치했습니다.
급경사지에 건물이 안전하게 앉혀질 수 있도록 성토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30cm 두께씩만 성토하면서 다짐을 진행하는 것을 수일 동안 반복하고, 기초 측면과 하부의 물이 빨리 배수될 수 있도록 각층 높이에 지중 다발관을 설치했습니다.


SECTION


시골에 집을 지을 때 예비 건축주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시골에는 상수도가 구비되어 있지 않은 곳도 있고, 오수의 배수로가 확보되어 있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상수도가 없으면 심정(지하수)을 파서 직접 급수해야 할 수도 있죠. 오수의 배수로를 조성할 때 다른 개인의 소유지를 통과해야 한다면 이웃의 동의를 구해야 할 수도 있어요. 호숫가의 집을 지을 때도 오수의 배수로를 만들기 위해 이웃분의 동의를 구해야 했고 이 과정에 시간을 많이 들였습니다.

외부 마감재로 사용된 목재와 석재 모두 자연의 재료로 질감과 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어떤 콘셉트로 선택하게 되었나
도시를 벗어나서 시골로 이사를 하는 상황이니 되도록 자연의 느낌이 더 살아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가공된 것, 자연 상태의 느낌이 많이 남아 있는 재료를 선택했습니다. 석재나 목재도 결국 공장에서 가공을 해오긴 했지만, 컬러 강판이나 스터코에 비하면 원 상태의 느낌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목재는 부드러운 재료이기도 하고, 누구나 친숙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재료인데, 한국에서 사용하기에는 까다로운 재료입니다. 습기와 자외선의 영향을 받아 변형되는 재료니까요. 건물 주위에 처마를 붙이게 되면 그림자가 지기도 하고 빗물도 막을 수 있지만, 지면과 닿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물이 튀어서 더 빨리 낡습니다. 이 집은 조금 더 천천히 낡아가는 집이었으면 해서 하단에는 물에 의한 변화가 훨씬 느린 석재를 사용했습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1층의 남쪽 메인 뷰. 집 앞 이웃의 밭과 함께 호수가 겹쳐 보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하나로 크게 열린 공간을 벽체로 구획했다. 구획을 만드는 벽체에는 단단한 목재 사이딩을 적용했다. 부딪혔을 때 자국이 나거나 때가 묻는 것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집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욕실에서는 빽빽한 숲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내부 구성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래도 실의 구분 방식인 것 같다. 모든 공간의 천장이 열려 있는 구조인데, 건축주의 의견이었나
건축주 부부는 “하루 종일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각자 일하느라 얼굴도 못 보는 것 같은 집은 싫다”고 의견을 전했습니다. 또한 부인이 재봉틀을 쓰거나 피아노를 칠 때 잠깐 고개를 들면, 다른 일을 하는 남편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죠. 실내에 여러 열린 공간을 계획하며 벽이 천장까지 닿도록 구획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척도 쉽게 느낄 수 있고, 경사 지붕의 입체감도 더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 벽을 일정 높이까지만 올리고 천장도 막지 않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제안했는데, 건축주 부부도 굉장히 좋아해 주셨습니다.

도심이 아닌 자연 가까이에 자리할 주택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정해진 답이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보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집을 만드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자연에 어떤 식으로 가까이 가고 싶은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적당한 시간만큼만 가꾸고, 적당한 시간만큼 휴식하길 좋아한다면 너무 손이 많이 가는 마당을 갖추기보다는 아담한 사이즈의 마당과 그에 맞는 집을 설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본격적으로 농사와 원예에 관심을 두고자 한다면 농기구를 많이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나 새로운 식물을 키우기 위한 온실을 적극적으로 계획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PLAN


취미실을 통해서도 호수의 절경을 충만하게 담는다.
손님이 많이 방문하거나 손주들이 위층에서 자고 싶다고 할 때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도록 실내 창에 폴딩 도어를 달았다.
주방에는 바닥 타일로 포인트를 주었다. 경사의 천장 면에는 식탁 펜던트와 최소한의 조명 시설만을 부착해 은은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HOUSE PLAN
대지위치 : 충청북도 제천시
대지면적 : 999㎡(302.20평)
건물규모 : 지하 1층, 지상 1층
거주인원 : 2명
건축면적 : 198.66㎡(60.09평)
연면적 : 238.73㎡(72.22평)
건폐율 : 19.89%
용적률 : 16.88%
주차대수 : 2대
최고높이 : 6.87m
구조 : 기초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 지상 –철근콘크리트 구조
단열재 : 벽 – 준불연 경질우레탄 단열재 120T / 지붕 –준불연 경질우레탄 단열재 140T
외부마감재 : 외벽 – 아코야우드 사이딩 오일스테인, 호피석 잔다듬 / 지붕 –칼라강판, 둥근 자갈
담장재 : 각파이프에 도장
창호재 : 필로브 시스템 창호 911, C/M, T/T
에너지원 : 지열
내부마감재 : 벽 – 미송 무절 루버, 목재용 수성 스테인, 친환경 수성페인트 / 바닥 – 원목마루 / 천장 –노출콘크리트, 도장
욕실 및 주방 타일 : 윤현상재
수전 등 욕실기기 : CATALANO, 새턴바스
주방 가구·제작 가구 : 디자인 씨앤디
조명 : THE LITE, Astro, Belux
계단재, 난간 : 자작합판+환봉난간
현관문 : 메탈게이트
방문 : 합판도어+무늬목 부착
데크재 : 호피석 부정형 판석
기계설계 : 서인이엠씨
전기설계 : ㈜극동파워테크
구조설계 : 윤구조기술사사무소
시공 : 무일건설㈜
설계·감리 : 건축사사무소 김남

건축가 남호진, 김진휴 : 건축사사무소 김남
건축사사무소 김남은 2014년 스위스의 산골 마을에서 시작해 2015년부터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2023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였다. 건축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와 관점의 존재를 중시하며, “어제 옳은 것이 오늘 틀릴 수 있다”는 시각으로 의심하고 다시 그린다. 김진휴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스위스의 Herzog & de Meuron, 일본의 SANAA, 미국의 SO-IL에서 건축실무를 익혔다. 남호진은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Pelli Clarke Pelli Architects, 스위스의 Herzog & de Meuron, 한국의 남산 에이앤씨 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02-6339-9305 www.kimnam.co.kr

기획 조재희 | 사진 건축사사무소김남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4년 8월호 / Vol.306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