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없는 지하방, 천장 높이 160cm 원룸에도 사람이 산다.. 최저주거기준 딜레마
강제성도 없어 지키지 않아도 처벌 힘들어
실거주하는 사람 적지 않아 무작정 퇴출할 수도 없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 주택. 좁고 가파른 계단을 깊숙이 타고 내려가자 어두컴컴한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계단 끝에 위치한 원룸의 호수는 B204호. 반지하보다도 낮은 지하층이다. 문을 열자 환기가 되지 않는 듯 쾌쾌한 냄새가 풍겼다. 방은 예상대로 비좁고 낡은 모습이었다. 16.5평방미터(㎡), 약 5평 남짓한 공간에는 싱크대, 소형 냉장고, 그리고 침대가 세간의 전부였다. 원룸은 창문이 없어 해가 중천인 오후 1시였지만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이곳의 가격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이었다.
앞서 방문한 원룸에서 주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또 다른 다세대 주택도 환경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굴절 계단을 두 차례 타고 내려가니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날은 최고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올라간 더운 날씨였지만, 지하 복도는 싸늘하기만 했다. B205호에 들어서니 방은 빛줄기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 원룸에는 창문이 있었다. 하지만 창문을 열자 시멘트 벽이 시야 전면을 가리고 있었다. 창문은 오직 구색 갖추기 수단에 불과해 보였다.


원룸이 밀집한 신림동 같은 지역에서는 이렇게 사람이 살만한 구조가 아닌 집들도 적지 않다. 유튜브에서는 이같이 열악한 환경을 가진 원룸을 소개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 정도다.
유튜브 내 ‘저렴한 원룸의 실체’ ‘최악의 원룸’ 등 검색어로 찾을 수 있는 관련 영상이 50만~20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복층이라고 소개한 원룸은 1평 남짓한 두 개의 방이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진 구조이고, 천장이 지나치게 낮아서 키가 160cm 이상인 사람들은 거주할 수 없는 집도 있다.
신림동에서 부동산 유튜브를 운영하는 이표민(26)씨는 “이런 열악한 환경의 원룸에는 주로 사회초년생 혹은 일용직 노동하는 사람이 많이 거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최악의 원룸은 주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만들어졌다”며 “집주인이 하나라도 방을 더 만들기 위해, 집 밑을 뚫고 뚫어 지하층을 만들거나 창고로 써야 할 공간까지 방을 쪼개고 쪼개다 보니 지금과 같은 열악한 방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이런 ‘최악의 원룸’ 시리즈가 유튜브 내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시청자들이 기상천외한 집을 보며 저런 집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사는지 신기해하는 것 같다”며 “보통 부동산은 안 좋은 집이라도 좋게 포장해 계약을 체결하려고 하는데, 해당 콘텐츠들의 경우 ‘최악의 원룸’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흥행 요소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최악의 원룸’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집주인들의 욕심이나 수요·공급뿐 아니라 한국의 최저주거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최저주거기준은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 수준에 관한 지표다. 국토교통부는 2004년 처음 최저주거기준을 법제화해 가구 구성 별 최소 주거 면적과 필수 설비, 구조와 성능·환경 등 최소 한도를 규정하고 있다. 현행 기준은 2011년에 개정이 된 것으로 11년째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법률상 국내 최저주거기준 면적은 1인 가구 기준 14평방미터(4.2평), 2인 가구 26평방미터(7.8평), 3인 가구 36평방미터(10.8평), 4인 가구 43평방미터(14.5평) 정도다. 면적만 놓고 보면 ‘최악의 원룸’으로 소개된 방들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해외는 어떨까. 일본의 경우 1인 25평방미터(7.5평), 2인 30평방미터(9평), 3인 40평방미터(12.1평), 4인 50평방미터(15.1평)로 한국보다 넓다. 또 영국은 1인 38평방미터(11.4평), 2인 51.5평방미터(15.5평), 3인 63.0평방미터(19평), 4인 72.0평방미터(21.7평)로 최저주거기준 차이가 더욱 극명하다.
주거의 질을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구조·성능·환경의 최저주거기준이 불명확하다는 것도 문제다. 최저주거기준법 제4조는 주거의 방음·채광·환기에 관해서 적절한 설비를 갖추고 환경요소의 경우 법정 기준을 따르라고만 명시돼 있을 뿐 구체적인 기준에 대해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채광·환기와 관련해 거실과 바닥 면적의 12분의 1 이상의 창문 면적을 확보할 것, 거실과 방의 창문이 절반 이상 개폐 가능한 구조일 것 등의 주거 환경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낮은 최저 주거 기준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최저주거기준은 행정 규칙이라 강제성이 없고 지키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실제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에 위치한 한 다세대 주택의 원룸은 9.9평방미터(3평)로, 1인 가구 최소 주거 기준 면적 14평방미터(4.2평)를 밑돌았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최저주거기준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최저 주거 기준이 강제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며 “현행의 낮고 모호한 최저 주거 기준을 상향하고 구체화하고, 이를 강제화해 모든 국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살도록 정부가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실적인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저주거기준을 밑도는 집에 거주할 수 없게 하면 당장 그곳에 거주하던 서민들은 갈 곳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가 밝힌 반지하 퇴출 대책에 쏟아진 반론도 이런 맥락에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반지하에는 먼 거리를 이동하기 어려운 노인, 환자,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실제 많이 살고 있다”며 “반지하를 없애면 그분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 이분들이 현재 생활을 유지하며 이만큼 저렴한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정부는 다양한 의견을 감안해 최저주거기준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1인가구 등 사회변화 환경도 감안해 최저주거기준 상 면적 개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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