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에 갇힌 노동자를 위해, 다시 '노란봉투법'

배춘환씨는 자녀가 셋이다. 2013년 말 겨울, 막내를 임신 중이던 그는 〈시사IN〉 편집국에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다. “해고 노동자에게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입니다. 47억원… 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000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봉투에는 현금 4만7000원이 들어 있었다.
당시 배춘환씨의 남편은 새벽 2시에 집에 돌아와 아침 6시에 출근했다. 배씨는 과로에 시달리는 남편을 보며 ‘혹시라도 아이와 나만 남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종종 했다. 2013년 11월29일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이 쌍용차와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노조에 47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기사를 읽고 남편을 떠올렸다. 47억원, 평생 새벽 2시에 퇴근해서 아침 6시에 일을 나가도 갚을 수 없는 돈이었다. “파업하면 자동적으로 ‘불법’이라는 수식어가 붙잖아요. 그때는 저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 파업은 잘못했지, 그런데 해고당한 사람한테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내라고 할 수가 있지?” 손해배상청구를 받은 그 집 아이들이 걱정됐다.
배춘환씨의 편지가 소개되자 독자들은 너도나도 각자 봉투에 4만7000원을 담아 보냈다. 〈시사IN〉은 공익기금을 마련하는 단체인 ‘아름다운재단’에 모금을 맡겼다. 2014년 2월10일 ‘노란봉투 캠페인’이 시작됐다. 가수 이효리씨도 직접 쓴 편지와 함께 모금에 동참했다. 세계적인 석학 놈 촘스키도 47달러를 보내고 당시 미국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최초 우주비행사 이소연씨도 4만7000원을 보내왔다. ‘노란봉투 열풍’이었다. 모금을 시작한 지 16일 만인 2월25일 1차 목표액인 4억7000만원이 모였다. 이튿날인 2월26일에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청구되는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출범했다.
최종 목표액인 14억7000만원을 모으는 데는 111일, 약 넉 달이 걸렸다. 4만7547명이 모은 금액이었다. 노란봉투를 보낸 사람 중에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문재인 당시 민주당 의원은 4만7000원을 보내며 이렇게 편지를 썼다.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남용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을 무력화하는 부당한 처사입니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짊어져야 했던 이 짐들을 시민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한 시민이 호의로 시작했던 일이 정치권에서 주목하는 의제로 발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국회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번번이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일명 ‘노란봉투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은 노조와 노조원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무분별한 손해배상이나 가압류를 당하지 않게 하자는 취지를 담았다. 제19대 국회인 2015년 4월 은수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낸 발의안을 시작으로 제20·21대 국회에도 개정안은 나왔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나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법안 심사까지 올라간 건 19대 국회 단 한 번뿐이었다.
‘겁 없이 순진했던’ 배춘환씨는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던 국회의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실망했다. “시민 4만7000여 명이 노란봉투법에 대한 지지를 보내주셨던 거잖아요. 시민들의 지지와 국회의원들의 열의를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통과됐어야 하는데, 왜 안 됐을까요. ‘통과가 안 될 이유를 찾기가 어려운데 통과가 안 됐다’, 이게 대한민국 국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노란봉투법 통과를 위해 오랫동안 고군분투해온 윤지선 손잡고 상임활동가 역시 그동안 법이 통과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말 그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노동자들의 피해를 입증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시민들 여론이 떨어져서도 아니에요. 피해는 입증할 만큼 입증했고 여론은 필요한 순간마다 호응해줬어요.”

20대 국회 때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법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해명했다. “전국적으로 큰 이슈가 있지 않은 이상 국회에서 (법안 논의에 대한) 수요가 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선순위에서 밀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민주당과 정의당, 노란봉투법 적극 추진
지난 7월22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51일 동안 이어진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파업이 마무리됐지만, 손해배상 소송 문제는 여전히 갈등의 불씨로 남았다(회사 측은 파업으로 인해 약 8000억원 손실이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7월25일 정의당은 노란봉투법 통과를 올 하반기 국회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도 7월27일 노란봉투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배춘환씨의 뱃속에 있던 아이는 아홉 살이 됐다. 그는 최근 다시 뉴스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노란봉투법’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두 감정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이야기가 돼서 너무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겁이 나요. 또다시 희망 고문 10년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이번에도 통과되지 못하면 다음에 다시 주목을 받을 때까지 많은 노동자들이 손해배상을 당해야 하니까요.”
흘러가는 ‘시간’은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금액 못지않은 압박이다. 시민단체 손잡고에서 정리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기록 197건(전수조사가 아닌, 사건 번호가 확보된 재판만 대상으로 함)을 살펴보면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26개월이다. 이 중 가장 오래 걸린 재판은 2520일, 꼬박 7년이다. “원고 측(회사나 국가)이 100% 승소한 건은 197건 중에 11건밖에 안 돼요. 그런데 한참 뒤에 손해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이 나온들, 이미 사람들 인식 속에서는 ‘불법파업’만 남잖아요.” 윤지선 활동가가 말했다. 만약 노조 혹은 노동자가 패소한다면 고통은 더욱 가중된다. 재판 기간 불어난 이자까지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9년, 국회 구성이 세 차례 바뀌는 동안 노동자들의 시간은 변함없이 고여 있었다. 배춘환씨에게는 부채감이 쌓였다. “그래도 저희는 삶이 진행이 됐으니까요. 아이가 컸잖아요. 그런데 손해배상에 삶이 갇힌 분들을 보면 그때 왜 통과를 못 시켰을까 하는 생각이 여전히 들죠.”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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