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대적 편견과 시련을 딛고 신화적인 성공을 일궈낸 여성이 있다.
훗날 광원산업을 일구며 대기부가의 반열에 오른 이수영 회장의 이야기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언론계에 첫발을 내딛었으나 불의의 해직과 거센 방해 공작을 겪어야 했던 그녀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기업가 정신으로 막대한 부를 일구어내며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반전 서사를 써 내려갔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도전했던 이수영 회장은 고배를 마신 후 언론사 기자로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시기와 질투, 팽배했던 성차별적 편견 속에 수습 기간도 채 채우지 못한 채 4개월 만에 해직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다른 언론사로 적을 옮겨 날카로운 분석력을 지닌 경제 기자로 이름을 날렸으나, 정권의 압력과 이익 집단의 위협에 시달리며 도망자나 다름없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장기 절제 수술까지 받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면서도 그녀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삼성 이병철 회장과 현대 정주영 회장 등 당대 최고의 재벌 총수들조차 그녀의 취재력과 혜안을 인정할 정도였으나, 거듭되는 압박 속에 결국 언론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퇴직금과 자금을 모아 5,000평 규모의 부지를 매입한 그녀는 돼지 1,000마리를 키우는 양돈업에 전격 뛰어들었다.
돼지 파동으로 축산업계가 휘청일 때는 군부대 위문품 형태로 돼지고기를 공급하는 파격적인 수완을 발휘해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나아가 우유 소비가 급감하자 초등학교 무료 급식이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낙농업계 전체를 구원하는 사업가적 수완을 입증했다.

축산업으로 기반을 다진 이수영 회장은 하천 모래 채취 사업에 도전해 거대한 부의 기틀을 마련했다.
사업적 안목을 바탕으로 유찰을 거듭하던 여의도 백화점 건물 5개 층을 헐값에 매입하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그러나 백화점 건물을 무단 점거한 이익 집단과 마찰이 생겼고, 무려 10년에 걸친 지루하고 치열한 소송전이 이어졌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법정 승소를 거머쥔 그녀는 부동산 자산의 가치를 폭발적으로 증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시선을 해외로 돌린 이수영 회장은 미국 연방정부가 장기 임차한 빌딩을 매입하는 영리한 투자 전략을 펼쳤다.
이를 통해 매달 막대한 달러 임대 수익을 거둬들이며 단딴한 글로벌 자산가로 입지를 다졌다.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려오던 그녀의 삶에 또 다른 기적이 찾아온 것은 82세가 되던 해였다.
청년 시절 가슴에 품었던 첫사랑과 재회해 운명적인 결혼식을 올리며 인생의 새로운 봄날을 맞이했다.

수습기자조차 떼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했던 청년 시절부터 5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끌어올리는 것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신념으로 KAIST에 766억 원이라는 거액의 전 재산을 흔쾌히 기부했다.
시련과 편견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부를 일궈낸 뒤, 이를 사회를 위한 숭고한 유산으로 남긴 이수영 회장의 행보는 대중에게 깊은 울림과 존경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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