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눈 소식 듣자마자 달려갑니다" 3.3km 저수지, 숲길 따라 걷는 천년사찰 둘레길

갈등을 지나 상생으로 이어진 길
지리산 천은사 상생의 길

눈 내린 지난겨울 천은사 상생의 길 /출처:자연으로가는길,구례

겨울의 지리산은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풍경으로 다가옵니다. 잎을 떨군 숲과 차분한 공기 속에서, 사찰과 길의 윤곽이 또렷해집니다. 전남 구례에 자리한 천은사와 그 주변을 잇는 ‘상생의 길’은 이런 겨울과 특히 잘 어울리는 공간입니다. 걷는 동안 자연의 고요함과 함께, 이 사찰이 품어온 시간과 의미를 차분히 마주하게 됩니다.

지리산 3대 사찰, 천은사가 걸어온 시간

눈 내린 지난겨울 천은사 /출처:자연으로가는길,구례

천은사는 신라 흥덕왕 3년인 828년에 덕운조사와 인도 승려 스루가 창건한 사찰로, 화엄사와 함께 지리산을 대표하는 3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지리산 일주도로 초입에 자리해 예로부터 남도와 영남을 잇는 길목 사찰로 기능해 왔습니다.

창건 당시 천은사의 이름은 ‘감로사’였습니다. 절 안에 이슬처럼 맑고 차가운 샘이 솟아났고, 이 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 하여 많은 승려들이 모여들었다고 전해집니다. 한때는 천 명이 넘는 스님이 머물렀고,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 제일 사찰로 불릴 만큼 위상이 높았습니다.

이름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사찰의 변화

천은사 /출처: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천은사라는 이름에는 조금은 독특한 사연이 전해집니다. 임진왜란 이후 중건 과정에서 샘가에 나타나던 구렁이를 잡아 죽였더니, 샘물이 더 이상 솟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뒤 ‘샘이 숨었다’는 뜻에서 천은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후 한동안 원인 모를 화재와 재난이 이어졌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조선 4대 명필 가운데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라는 현판 글씨를 직접 써 걸었다고 전해집니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서체의 현판을 건 뒤로는 더 이상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이 사찰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일화입니다.

숲과 물이 함께 만든 사찰의 공간감

천은제 저수지 풍경 /출처:자연으로가는길,구례

천은사의 공간은 화려하기보다 단정합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계곡, 그리고 천은제 저수지가 사찰을 감싸며 자연스럽게 경계를 만듭니다. 그래서 사찰 경내를 걷다 보면, 절 안과 밖의 구분이 흐릿해지고 자연 속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경내에 자리한 수령 300년이 넘는 보호수 소나무는 이 사찰이 견뎌온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겨울에는 가지의 형태가 더욱 또렷해져, 소나무 한 그루만으로도 공간의 무게감을 느끼게 합니다.

상생의 길이 시작되는 자리

천은사 상생의 길 시작점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이런 천은사를 둘러싸고 조성된 것이 바로 상생의 길입니다. 총 3.3km 길이의 이 둘레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오랜 갈등을 협력으로 풀어낸 결과물입니다. 과거 성삼재 방향 도로 옆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던 문제는 사찰과 탐방객 모두에게 부담이 되었고, 오랜 시간 불편과 갈등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환경부, 국립공원공단, 천은사 등 여러 기관이 협력해 문화재 관람료를 폐지하면서 문제는 해결되었고, 그 상징으로 2020년 상생의 길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은 자연을 걷는 동시에, 사회적 합의가 어떻게 공간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사찰과 길이 만나는 구간들

눈 내린 지난겨울 천은사 일주문 /출처:자연으로가는길,구례

상생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천은사 경내와 이어집니다. 일주문을 지나 소나무 숲길을 걷고, 천은제 저수지를 따라 데크길을 걷다 보면 사찰과 자연, 길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됩니다.

특히 ‘묵언의 길’ 구간에 적힌 문구는 천은사의 분위기를 잘 대변합니다. “묵언은 말을 하지 않음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말을 하지 않음을 뜻한다.

”겨울 숲의 고요함과 어우러지며, 걷는 이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낮추어 줍니다.

겨울에 천은사를 걷는 이유

상생의 길 /출처:자연으로가는길,구례

천은사와 상생의 길은 사계절 모두 의미가 있지만, 겨울에는 그 본질이 더 잘 드러납니다.

숲이 비워지면서 사찰의 배치와 길의 흐름이 분명해지고, 사람의 발걸음이 줄어들어 고요함이 유지됩니다. 화려한 풍경 대신, 오래된 사찰이 가진 시간과 공간의 밀도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계절입니다.

천은사 기본 정보

천은사 /출처:한국관광공사 이범수

위치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노고단로 209

문의 : 천은사 종무소 061-781-4800

홈페이지 : choneunsa.org

이용시간 : 상시 개방

휴일 : 연중무휴

주차 : 가능(천은사 주차장)

이용요금 : 무료

천은사는 단순히 오래된 사찰이 아닙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온 시간, 그리고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 나아간 선택이 함께 축적된 공간입니다.

상생의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이 사찰이 왜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겨울의 지리산 자락에서, 말수를 줄이고 마음을 정리하고 싶을 때 천은사는 충분히 깊은 울림을 주는 장소가 되어줄 것입니다.

출처:나들 e진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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