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솜에 숨기고 선박 밑에 붙이고… 더 교묘해진 마약 밀수
마약 밀수량 10년 새 10배 증가… 작년 하루 평균 2건가량 적발
국제 우편, 화물 이용 수법 지속… 몸에 숨기는 밀반입 다시 성행
‘3초 스캔’ 밀리미터파 신변검색기… 연내 전국 공항-항만에 설치 확대
국내서 자극 강한 마약 수요 늘어… 효과 극대화 ‘칵테일 마약’ 적발도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마약범죄 척결을 위해 고강도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마약 밀수는 이어지고 있다. 수법도 날로 교묘해지고 있는 가운데 365일 마약과 씨름을 벌이고 있는 관세청의 단속 현장을 찾았다.》
지난달 28일 인천공항 제2터미널 입국심사장에서 만난 신동윤 인천공항세관 마약조사1과장은 최근 점점 교묘해지는 마약 밀수 사례 중 ‘이불 솜 필로폰’ 밀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998년 김포세관 특수조사과 시절 마약수사팀의 ‘막내’로 마약 수사 경력을 시작한 신 과장은 30년의 관세청 재직 기간 가운데 절반가량을 마약 조사·수사 경력으로 채운 대표적인 마약 수사통이다. 그는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방식의 마약 밀수 시도가 늘어나면서 ‘마약과의 전쟁’ 2년 차를 맞은 전국 세관의 마약 단속도 더욱 치열해졌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비교적 한산한 시간대로 분류되는 이날 오전 6시부터 입국심사장 한쪽에서는 세 살 난 마약 탐지견 ‘밀리’가 수하물에 연신 코를 들이대고 그 옆으로 입국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지난달부터 대표적인 마약 밀수 우려국인 멕시코에서 하루 1편씩 직항 항공편 운항이 재개되면서 멕시코 입국객에 대해서는 전수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멕시코발 항공편 입국객 201명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인체 은밀한 곳에 숨긴 마약까지 탐지할 수 있는 밀리미터파 신변검색기를 통과했다.
● 콘크리트 속에 숨기고 선박 밑에 붙여 오기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크게 늘었던 국제 우편이나 특송 화물을 이용한 마약 밀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신 과장은 “올해도 전자 기타나 스피커, 시리얼처럼 통상적인 해외 직구 품목 안에 마약을 숨긴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며 “식품을 포장할 때 함께 포함되는 방습제 봉지에서 방습제를 빼고 마약을 채워 수입하거나 간이 테이블이라며 수입한 콘크리트 블록 안에 대마초를 압착해서 밀봉해 놓은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선박을 활용한 마약 밀수 시도다. 올 4월 울산 온산항에서는 화물선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던 잠수부가 선박 바닥의 해수 흡입구(시체스트·Sea Chest)에서 수상한 물체를 발견했다고 마약밀수신고 ‘125’로 신고를 했다. 울산세관과 검찰이 조사한 결과 28kg에 이르는 코카인이 비닐로 포장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올 1월 부산신항에서도 정박해 있던 7만 t급 화물선의 시체스트에서 코카인 100kg이 발견된 바 있다.
마약 수사 당국에서는 선박 시체스트에 마약을 숨겨 이동하는 일명 ‘기생충’ 수법이 국제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발신자와 수신자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숨겨놓은 마약을 찾아내더라도 마약 사범을 검거하기는 힘든 밀수 수법이다.
● “몸에 마약 숨겨 들여오는 ‘보디 패커’ 다시 증가”
신체나 옷, 소지품에 직접 마약을 숨겨서 들여오는 마약 운반책은 이른바 ‘보디 패커’라고 불린다. 보디 패커를 활용한 여행객 직접 밀수는 통상 1명의 감시책에 5명 안팎의 운반책이 하나의 팀으로 꾸려져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약 운반 비용을 일컫는 ‘지게값’을 받는 현지인 혹은 한국인 운반책을 여러 명 동원하면 일부가 적발되더라도 나머지 운반책을 통해 일부 마약은 반입할 수 있다.
신 과장은 “허벅지나 복부는 물론이고 사타구니를 비롯한 은밀한 부분에 마약을 붙인 채로 교묘하게 숨겨서 들어오면 통상적인 세관 검색으로는 적발이 쉽지 않다”며 “이런 ‘보디 패커’를 막기 위해 밀리미터파 신변검색기 설치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효과 극대화한 칵테일 마약, ‘시장 원리’ 확산 보여줘”
국내 마약 시장에선 일종의 ‘시장 원리’가 확산되는 모습도 감지된다. 감시망을 피해 마약을 수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약 사범들이 원하는 종류의 마약을 공급하고 과거보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약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적발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대마 오일류의 경우 전자담배 등을 활용한 투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접근성을 크게 높인 마약으로 꼽힌다. 대마에서 환각 효과를 유발하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성분이 함유된 대마 오일류는 북미에서 유행한 바 있는데 국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 과장은 “필로폰은 투약을 위해 주사기가 있어야 하지만 전자담배를 이용한 대마액상의 경우 연령대를 떠나 누구나 손쉽게 흡입할 수 있어서 마약 확산 가능성이 높다”며 “최근 텔레그램 등 익명 메신저를 통한 마약 밀수가 증가하면서 실제 마약 소비자를 검거했는데 중고등학생인 경우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선진국도 엑스레이 판독 능력 배우고 싶어 해”
교묘해지는 마약 밀수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 과장은 해외 관세청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역량으로 한국의 엑스레이 판독전문요원을 꼽았다. 현재 339명인 판독전문요원은 장기간 쌓인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하루 수십만 건의 특송 화물과 수하물이 엑스레이 검색기를 통과하면 3초 안에 의심점을 찾아낸다. 신 과장은 “엑스레이 검색 화면을 통해 비정상적인 음영을 판별할 수 있다면 공간을 이용한 마약 밀수를 잡아낼 수 있다”며 “여행자 정보 분석을 통한 마약 밀수 적발에 특기가 있는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 세관에서도 배우고 싶어 하는 역량”이라고 말했다.
이날 만난 ‘밀리’처럼 현장을 누비는 마약 탐지견도 지난해 전체 적발 건수(704건) 가운데 11.9%에 이르는 84건을 적발하면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신 과장은 “일부 ‘보디 패커’는 마약 탐지견이 다가오기만 해도 큰 불안감을 보이면서 적발되기도 한다”고 했다.
전체 세관 직원들이 마약 적발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문화도 뚜렷하게 자리를 잡았다. 전국의 공항과 항만에서 하루 평균 2건씩 마약이 적발되는 상황을 보면서 세관 직원들 모두 ‘나도 마약을 적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수상한 가루가 보인다면 주저 없이 마약 성분 분석을 의뢰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감시를 뚫고 실제 국내로 유입되는 마약의 양은 얼마나 될까. 신 과장은 국내로 반입되는 마약의 양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국내의 마약 도매 가격이 해외에 비해 수십 배 높은 상황을 통해 한국으로의 마약 밀수가 여전히 힘든 상황이라고 추정할 따름이다. 그는 “국내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필로폰의 경우 1회 투여량이 0.03g이기 때문에 1kg의 밀수를 적발하지 못하면 3만3000회의 투약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셈”이라며 “직원 모두가 ‘마약 단속 요원’이라는 생각으로 밀수 차단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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