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람이라고? 동인인물 될 뻔한 두 남자의 기막힌 사연
장기하부터 35mm 필름 촬영까지... '패스트 라이브즈' 비하인드 스토리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된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가 3월6일 개봉을 앞두고 영화를 둘러싼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3월1일 기준 전 세계 여러 영화 시상식에서 76관왕에 올랐다. 3월11일(한국시간) 열리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신인감독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셀린 송 감독은 연출 데뷔작으로 크리스토퍼 놀란과 마틴 스코세이지 등 세계적인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와 한국의 CJ ENM이 공동으로 투자배급하는 미국 영화이지만,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이 연출을 맡고, 절반 이상이 한국어 대사로 이뤄졌다. 서울이 주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두 남녀의 로맨스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생을 뜻하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라는 제목처럼 지나간 삶부터 이번 생, 다음 생까지 이어질 '인연'이라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개념을 통해 사랑과 관계의 의미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를 통한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며 전 세계 평단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국내 개봉에 앞서 영화를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관전 포인트를 살펴봤다.
● 장기하가 왜 거기서 나와? 유태와 친구 역할 맡은 이유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둘의 인연을 다룬 이야기다. 두 사람이 돌고 돌아 재회하고 보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에서는 12살, 24살, 36살의 나영과 해성의 모습이 그려지는 가운데 해성의 친구 역할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가수 장기하다. 해성 친구 일행 중 한명으로 깜짝 등장해 반가움을 안긴다.
셀린 송 감독에 따르면 장기하는 처음 해성 역할로 오디션을 봤다. 하지만 해성 역할은 결국 유태오에게 돌아갔다. 이후 송 감독은 장기하에게 '주인공 친구 역할이라도 할 수 있겠냐'고 제안했고, 이를 장기하가 수락하면서 출연이 성사됐다.
그에 앞서 장기하는 해성 역할을 오디션으로 뽑는 사실을 접하고, 정식으로 영화 주연을 맡기 위한 오디션 절차를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셀린 송 감독은 장기하에 대해 "친구 역할을 진짜 잘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외국의 카메라 팀도 (장기하를 가리키며)'저 배우 누구냐, 멋있다'고 물어봐서 진짜 유명한 가수라고 말하니까 '오 마이 갓!'이라며 놀랐다"고 현장의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 영화에 '넘버 3' 아닌 '넘버 11'이 등장하는 이유
셀린 송 감독은 '넘버 3'(1997년)와 '세기말'(1999년) 등을 만든 송능한 감독의 딸로도 유명하다. 어릴 때 캐나다로 이주해 성장한 감독은 한국과 캐나다 그리고 미국을 오가면서 쌓은 경험과 정서를 '패스트 라이브즈'에 담았다.
극중 나영 아버지의 직업도 영화감독으로 나온다. 극중 나영 아버지는 '넘버 11'을 연출한 감독으로, 짧게 스쳐 지나간다. 영화 속 이러한 설정은 송 감독의 배경을 아는 이들에게는 흥미롭게 다가간다. 송 감독은 송능한 감독의 영화를 오마주하고 싶어서 '넘버 11'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고 했다.
첫 영화 연출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을 묻자 송 감독은 "복잡한 얘기는 없으셨고, 그저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해줬다"고 말했다.
● 韓촬영 후 필름을 포장해서 뉴욕으로 보낸 사연
'패스트 라이브즈'는 필름 촬영으로 감각적인 비주얼을 완성했다.
나영과 해성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연의 관계가 우아하고 섬세하게 전달되는 이유에는 아날로그 예술 형식인 35mm 필름 촬영이 큰 몫을 한다. 서울과 뉴욕의 아름다운 풍경에 필름 질감이 더해져 보는 재미를 더한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더 이상 필름으로 영화를 촬영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셀린 송 감독은 "현상을 할 수 없어서 (한국에서 촬영 후)밤마다 촬영본을 담은 박스를 포장해서 뉴욕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송 감독은 "조금만 잘못돼도 촬영분이 전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면서 "필름 카메라를 다루는 스태프를 뉴욕에서 섭외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