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볼모 삼은 버스 파업은 정당한가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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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버스 파업으로 출퇴근길이 아수라장이 됐다.
보통은 1시간 넘게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면서도 눈감고도 갈 만큼 익숙한 길이었다.
만원 버스 안 경계 가득한 눈빛은 타려는 이들을 매섭게 밀어냈다.
고난의 출퇴근길에서 버스 파업의 정당성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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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정당해도 공공 이익 지켜져야
필수공익사업 지정해 파업 제한해야

서울 시내버스 파업으로 출퇴근길이 아수라장이 됐다. 보통은 1시간 넘게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면서도 눈감고도 갈 만큼 익숙한 길이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탈 것을 잃자 눈뜨고도 갈 길이 없었다. 하릴없이 버스가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기다렸다. 나뿐이 아니었다. 손주를 봐주러 이른 아침 서둘러 나온 70대 노모는 버스 안내 전광판만 쳐다보며 덜덜 떨었다. 임신한 아내의 출근길을 배웅하는 남편은 택시가 안 잡혀 발을 동동 굴렀다. 재난은 약자부터 덮친다.
경기에서 넘어온 버스 한 대가 때마침 반갑게 나타났다. 문이 열렸지만 들어설 곳은 없었다. 만원 버스 안 경계 가득한 눈빛은 타려는 이들을 매섭게 밀어냈다. 이제 믿을 건 허연 입김만 뿜어내는 얼어붙은 혈혈단신뿐. 빙판길을 엉금엉금 걸었다. 무사히 지하철역에 도착해 안도할 찰나 ‘지옥철’이 도착했다. 타인의 무게에 비명이 터졌다. 재난은 약자를 악전고투하게 한다.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일은 처절하다.
고난의 출퇴근길에서 버스 파업의 정당성을 곱씹었다. 파업의 명분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 요구. 버스노조는 사측에 지하철 등 다른 대중교통 노동자의 임금 인상률(3%)에 걸맞게 임금을 올려달라고 했다. 버스회사들은 버스 운행 적자를 운운하며 0.5% 임금 인상률을 제시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노조는 파업을 단행했다. 수천억 원의 적자는 노동자 탓이 아니라고 외쳤다. 인건비와 유류비 상승, 승객 감소 등에 대비하지 못한 회사를 탓했다. 회사의 부실 경영을 부추긴 정부의 보전금은 노조의 뒷배가 돼 줬다.
새삼 버스 운행 적자 원인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값진 노동에 따른 최소한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의 파업은 정당하다. 다만 대중교통을 운행하는 공공 노조의 파업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일반의 파업과는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공공 이익을 담보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원칙이 지켜질 때 공공 노조의 파업은 지지와 존중을 받는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철도, 도시철도, 항공운수 등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해 최소한의 운행 기준을 두어 이들의 파업을 제한한다. 해당 업무가 정지됐을 때 공중의 일상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스는 제외됐다. 공공성 강화를 위해 혈세를 퍼부으면서도 공공성 약화에는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는 상황은 모순이다.
노조는 파업 이틀 만에 사측으로부터 2.9%의 임금 인상안을 얻어내며 완승했다. 정년을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하고 불만이 높았던 서울시의 버스운행실태 점검(암행감찰)도 재논의하기로 했다. 상여금 통상임금 포함 여부도 이번 협상에선 뺐다. 하지만 당장 먹고살기 위해 버스를 탈 수밖에 없는 이들을 볼모 삼아 얻어낸 성과치곤 초라하다.
완승한 버스들이 거리로 돌아왔다. 차디찬 거리로 내몰렸던 이들은 임금이 오른 기사가 운행하는 버스를 다시 탄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버스 노사 간 임금 협상이 타결된 지 이틀 만에 도심 한복판에선 버스가 건물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해 13명이 다쳤다. 차라리 파업이 길어졌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까. 성배를 들긴 아직 이르다.
강지원 전국부장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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