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보다 높은 이재명 정부 ‘금지’ 문턱
“로봇 프리미엄은 누구 몫인가” 근본 질문
정의선 ‘승계 실탄’보다 주주 보상이 먼저
지금은 ‘김칫국’보다 ‘설득’을 준비할 시간
현대차 주가가 다시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주당 50만원을 넘어 60만원, 70만원을 돌파합니다. 이유는 자동차가 아닙니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로보틱스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BD) 때문입니다. 시장은 현대차를 더 이상 완성차 회사로만 보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나 이 신호가 너무 빠르고, 너무 크게 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기폭제는 다음 달로 다가온 소프트뱅크 풋옵션 시한입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소프트뱅크로부터 BD 지배지분을 인수했습니다. 당시 BD의 기업가치는 11억 달러였습니다. 인수 뒤 현대차그룹은 80%, 소프트뱅크는 20%를 보유했습니다. 당시 계약에는 일정 기간 안에 상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소프트뱅크가 잔여 지분을 현대차그룹 측에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이 붙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장이 2026년 6월을 다시 쳐다보는 이유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반론도 없지 않지만 소프트뱅크가 이번에 풋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BD의 시장가치가 이미 인수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커졌고, 아틀라스 상용화 로드맵까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소프트뱅크 입장에서는 지금 서둘러 회수하기보다 더 큰 상장 차익을 기다리는 편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BD IPO는 풋옵션에 쫓겨 강제로 하기보다 현대차그룹이 선택해야 할 ‘전략적 이벤트’로 봐야 합니다. 시장 일각에서 말하는 ‘6월 결단론’을 확정된 상장 일정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소프트뱅크 풋옵션 행사할까 안할까
시장은 이 BD IPO 이벤트를 정의선 회장의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으로 읽고 있습니다. 이유는 지분 구조 때문입니다. BD는 HMG글로벌, 현대글로비스, 정의선 회장, 소프트뱅크가 나눠 보유하고 있습니다. HMG글로벌은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출자한 미국 투자법인입니다. 정의선 회장은 BD 지분을 20%대 초반 보유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BD 가치가 30조원이면 정 회장의 지분가치는 6조원대입니다. 100조원이면 20조원을 넘습니다. 이 돈은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 지분 확대, 순환출자 해소, 상속·증여 재원 마련 등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실탄’이며, 현대차 계열사 주가가 많이 올랐어도 10조원 이상이면 정의선 회장은 이 모든 것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정 회장의 모든 고민을 BD 상장이 원샷에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꿈은 큽니다. 차세대 전동식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현대차 미국 조지아 공장에 투입되고, 로봇이 자동차를 만들고, 현대차가 피지컬 AI 플랫폼 기업으로 재평가된다면 BD 상장은 현대차그룹 역사에서 결정적 장면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차가 자동차 회사에서 로봇·AI 제조 플랫폼 회사로 넘어가는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현대차와 계열사 주가에 붙은 프리미엄입니다.
그러나 IPO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습니다. 첫째는 밸류에이션입니다. 국내 증권사들은 BD의 가치를 수십조원에서 100조원 이상까지 보고 있습니다. 30조원, 50조원, 70조원, 128조원 같은 숫자가 나옵니다. 하지만 현재의 BD는 아직 돈을 버는 회사가 아닙니다. 2025년 매출은 1501억원이고 순손실은 5284억원입니다. 매출보다 손실이 세 배 이상 많습니다. 이 회사가 30조원으로 평가받아도 현재 실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100조원대 평가는 더더욱 현재가 아니라 2030년대의 성공을 먼저 당겨온 숫자입니다. 국내 증권사들의 평가는 여러 전제가 충족돼야 가능한 매우 공격적이고 낙관적인 평가에 가깝습니다.
둘째는 중국입니다. 휴머노이드 시장은 미국 기업들의 독무대가 아닙니다. 중국 기업들은 가격, 물량, 부품 공급망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도 강력합니다. 중국 업체들은 저가형 휴머노이드를 빠르게 출하하고 있고, 자국 제조 생태계를 바탕으로 원가를 낮추고 있습니다. BD, 피겨AI, 테슬라 옵티머스가 미국 제조 현장에서는 강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가격 경쟁에서는 중국 기업을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BD가 프리미엄 산업용 로봇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중국과 정면 가격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 길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멀고 먼 IPO…중국·밸류에이션 등 ‘첩첩’
하지만 가장 큰 산은 기술도, 중국도 아닙니다. 중복상장 금지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에서 중복상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돼 왔습니다. 그래서 정책 방향도 분명합니다. 중복상장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상장의 이익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구조와 전체 주주에게 공정하게 귀속되는 구조를 엄격히 구분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현대차그룹은 반론을 준비할 것입니다. BD는 현대차에서 물적분할한 회사가 아닙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로봇 회사입니다. 현대차그룹이 외부에서 인수한 해외 법인입니다. 미국 고객, 미국 기술 생태계, 미국 자본시장을 겨냥한다면 나스닥 상장이 자연스럽다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한국거래소가 나스닥 상장을 직접 승인하거나 불허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형식이 전부는 아닙니다. BD는 이미 현대차 주가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현대차 주주들은 자동차 본업만 보고 현대차를 산 것이 아닙니다. 아틀라스, 피지컬 AI, BD 상장 가능성까지 보고 현대차 주식을 사고 있습니다. 그런데 BD가 별도 상장되고, 현대차 일반주주는 BD 주식을 받지 못하고, 정의선 회장 개인 지분만 대규모로 현금화된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한 해외 자회사 상장이 아닙니다. 현대차 주가에 반영된 로봇 프리미엄이 특정 지배주주의 승계 재원으로 전환되는 구조로 보일 수 있습니다.
중복상장 논란으로 상장이 철회된 LS 사례도 있습니다. LS는 미국에서 인수해 키운 에식스솔루션즈를 한국거래소에 상장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중복상장 논란에 부딪혔고, 소액주주 반발과 이재명 대통령의 문제 제기 이후 상장 신청을 철회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에식스솔루션즈가 미국에서 인수한 회사였다는 점입니다. 해외에서 산 회사라는 사실은 면죄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핵심은 모회사 일반주주의 가치가 훼손되는지 여부입니다.
LS는 못했는데 현대차 BD는 할까
현대차 인도법인 상장을 방패로 삼기도 어렵습니다. 인도법인 IPO는 2024년에 이뤄졌습니다. 지금처럼 중복상장 원칙금지 기조가 본격화되기 전입니다. 또 인도법인은 현대차가 100% 보유하던 현지 영업법인이었고, 현대차는 지분 17.5%를 구주매출로 판 뒤에도 82.5%를 보유했습니다. 무엇보다 그 돈은 현대차 본사로 들어갔습니다. 정의선 회장 개인 지분 현금화 문제가 없었습니다. BD는 다릅니다. BD에는 정 회장 개인 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BD 상장은 인도법인보다 훨씬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발표한 새만금 프로젝트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다시 읽힙니다. 현대차그룹은 새만금에 로봇·AI·수소 에너지 혁신거점을 만들겠다며 9조원 투자를 발표했습니다. AI 데이터센터,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 연 3만대 규모 로봇 제조 체계 등이 포함됩니다. 공식적으로는 국내 미래산업 투자입니다. 그러나 BD 나스닥 상장을 앞둔 현대차그룹이 국내 로봇 생태계 투자라는 명분을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미국 로봇 회사만 띄우는 것이 아니라 국내 로봇 산업도 키운다’는 논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새만금 투자가 중복상장 논란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국내에 9조원을 투자한다고 해서 현대차 일반주주의 권리가 자동으로 보호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주 보호는 별개 문제입니다. BD 상장으로 현대차 주가에 붙은 로봇 프리미엄이 빠져나간다면 그 손실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제시해야 합니다. HMG글로벌이나 현대글로비스가 구주매출을 한다면 그 현금이 배당, 자사주 매입·소각, 로봇사업 재투자 중 어디로 가는지도 밝혀야 합니다. 정의선 회장 개인 지분에는 더 높은 수준의 투명성이 요구됩니다.
현대차 ‘새만금 투자’는 면죄부 될까
결국 현대차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정교한 주주 보호·보상 패키지밖에 없습니다. BD IPO는 신주 발행 중심이어야 합니다. 구주매출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특히 총수 개인 구주매출은 가장 늦게, 가장 작게, 가장 투명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이사회는 각각 BD 상장이 자사 일반주주에게 미치는 영향을 숫자로 평가해 공시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현대차그룹 상장사 주주에게 BD 청약 기회나 이에 준하는 경제적 보상도 검토해야 합니다. 어렵다면 특별배당과 자사주 소각으로라도 상장 과실을 일반주주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BD의 미국 상장은 현대차그룹에도, 정의선 회장 개인에게도 매혹적인 카드입니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성공하면 현대차는 자동차 회사를 넘어 피지컬 AI 기업이 됩니다. 정의선 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의 실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현대모비스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도 현실이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기대 앞에는 이재명 정부의 중복상장 금지 원칙이라는 벽이 있습니다. 나스닥의 문턱보다 더 높은 문턱이 서울에 있습니다.
현대차가 BD를 상장시키려면 미국 투자자만 설득해서는 안 됩니다. 국내 일반주주, 금융당국, 그리고 이재명 정부를 설득해야 합니다. “BD는 미국 회사이니 중복상장이 아니다”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BD 상장의 이익이 총수와 일부 계열사가 아니라 현대차그룹 일반주주 전체에 공정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먼저 보여줘야 합니다.
BD 상장은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여는 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습니다. 소프트뱅크 풋옵션, 아틀라스 상용화, 중국 기업과의 경쟁, 밸류에이션 검증, 정의선 회장 개인 지분 논란, 그리고 무엇보다 중복상장 금지라는 정치·제도적 장애물을 모두 넘어야 합니다. 현대차그룹도, 정의선 회장도, 현대차 투자자들도 멀고도 험한 BD 상장을 앞두고 김칫국부터 마실 일은 아닙니다. 지금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에게 필요한 것은 기대가 아니라 정부와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설득이고, 축배가 아니라 주주 전체가 납득할 수 있는 보상책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일입니다.

박종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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