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 하드털이] ‘KBL 사상 최강 동안’ 강혁의 24년 전 모습은?

최창환 2023. 12. 1. 10: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00년 1월 창간한 점프볼은 최근 발행된 2023년 12월호까지 23년 동안 총 288권의 매거진을 발행했다. 더불어 KBL, WKBL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마대회, 국제대회 현장도 부지런히 취재하며 수많은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해왔다.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스타의 어린 시절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는 영상이 화제다. ‘이랬는데 요래됐슴당’이라고 하면 설명이 더 쉬울까. 점프볼은 이 영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KBL에서 활약 중인 스타들의 성장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코너를 기획했다.

[점프볼=최창환 기자] 최근 KBL에 입문한 팬들은 강혁이라고 하면 ‘쇼부’가 가장 먼저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그는 현역 시절 ‘2대2 마스터’라 불릴 정도로 2대2 능력을 겸비한 최정상급 슈팅가드였다. 또한 동안이자 포커페이스였다. 예나 지금이나 동안인 건 마찬가지인 강혁의 뽀시래기 시절부터 사령탑의 자리에 오른 현재까지의 농구 인생을 점프볼 하드에만 있는 사진을 통해 돌아봤다.

경희대 출신 가드 강혁은 1999 신인 드래프트에서 5순위로 삼성에 지명됐다. 조상현이 전체 1순위로 선발된 드래프트였으며 조우현, 황성인, 김성철, 조동현, 하상윤, 손창환 등이 드래프트 동기다. 데뷔시즌부터 식스맨으로 눈도장을 받은 강혁은 2년 차인 2000-2001시즌에 식스맨상을 수상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는 5경기 평균 25분 42초를 소화하는 주축으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삼성의 처음이자 마지막 통합우승 멤버로 이름을 남겼다.
강혁은 상무 제대 후 핵심 전력으로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2003-2004시즌에 데뷔 후 첫 평균 두 자리 득점을 기록했고, 수비5걸에도 선정되며 공수를 겸비한 가드로 공인을 받았다. 강혁은 2006-2007시즌에 이르기까지 4시즌 연속 수비5걸에 이름을 올렸다.

강혁의 커리어에서 단연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시즌은 2005-2006시즌이다. 당시 삼성은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KBL 최초의 스윕을 달성했고, 당시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된 선수가 바로 강혁이었다. 대학 신입생이라 해도 믿을만한 얼굴로 그물을 커팅하고 있는 강혁의 당시 나이는 31살이었다.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된 직후 단독으로는 처음 점프볼 표지를 장식했던 강혁은 이후 약 3년 만인 2009년 2월에 다시 점프볼 표지모델로 나섰다. 이때는 ‘가드왕국’을 합작한 이상민, 이정석이 함께 했다. 강혁의 ‘2대2 학개론’을 비롯해 삼성에 대한 진심, 은퇴 후 계획 등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커버스토리였다.
‘영원한 삼성맨’일 것만 같았던 강혁에게 2010-2011시즌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치른 마지막 시즌이 됐다. 데뷔시즌이 그랬듯, 삼성에서의 마지막 시즌 역시 ‘플레이오프는 기본’이었다. 강혁은 삼성에서 치른 10시즌 모두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은 후 삼성을 떠났다. FA 신분이 된 후 1년 계약, 사인&트레이드 형식으로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었다. 강혁을 대신해 이병석, 김태형이 삼성으로 향했다(강혁은 훗날 인터뷰에서 “많은 걸 이뤘던 삼성을 떠나야 한다는 점이 서운했다.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라고 트레이드 당시를 회고했다). KBL 역대 최장 기록인 9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랐던 삼성은 강혁이 떠난 후 거짓말처럼 암흑기에 빠졌다.
웬만하면 경기 도중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강혁이었지만, 은퇴 순간만큼은 벅차 오르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전자랜드 이적 후에도 2시즌 모두 플레이오프에 출전, 12시즌 모두 플레이오프에 나서는 진기록을 세웠던 강혁은 2012-2013시즌 4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3점슛을 넣으며 선수로서 마지막 득점을 남겼다. 이어 전자랜드의 시즌이 마무리된 직후 진행된 은퇴식을 통해 코트를 떠났다.
38살에 은퇴한 강혁은 곧바로 모교인 삼일상고(현 삼일고) 코치를 맡으며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송교창, 이현중, 하윤기 등이 삼일상고 시절 강혁과 스승-제자로 인연을 맺었던 선수들이다. 이어 2017년, 현주엽이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LG 코치로 합류하며 프로 지도자 커리어도 막을 열었다. 강혁은 LG에서 D리그 코치도 겸했다.
선수로서 마지막을 전자랜드에서 장식했던 강혁은 전자랜드의 마지막 코칭스태프 가운데 1명으로도 이름을 남겼다. 2020년 전자랜드의 부름을 받았다. 전자랜드는 2020-2021시즌을 마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대구 한국가스공사가 농구단을 인수했다. 가스공사에서도 D리그 코치를 겸하며 지도자 경험을 쌓았던 강혁은 올 시즌을 앞두고 감독대행으로 선임돼 또 다른 출발선에 섰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SK와의 홈경기에서는 감독 데뷔 첫 승을 신고했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혁 기자)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