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회용 좀 제발 그만" 잔소리꾼 딸 이렇게 컸어요

LG소셜펠로우 13기 사라나지구·써스테인어스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왼쪽부터) 써스테인어스의 채재훈 대표와 사라나지구의 서사라 대표. /더비비드

특정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습관’은 변화의 동력이 된다. <성공한 CEO들의 성공을 만든 습관>같은 콘텐츠가 대중에게 소구되는 이유다. 스타트업 사라나지구의 서사라 대표(23)와 써스테인어스의 채재훈 대표(33)도 습관의 힘을 믿었다. 서사라 대표는 세제를 구매하는 대신 리필 하는 습관을 들이면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 리필 자판기를 개발했다. 채재훈 대표는 폐식용유의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인지하고, 보다 쉽고 편리하게 재활용할 수 있도록 폐식용유 무인회수기를 개발하였다.

환경을 위한 새로운 습관을 제안한 두 기업은 모두 LG소셜펠로우 선정 기업이다. LG전자·LG화학이 운영하는 LG소셜캠퍼스는 기후환경 분야 사회적경제기업 지원 프로그램 ‘LG소셜펠로우’를 13년째 운영하고 있다. 비즈니스를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스타트업을 다방면으로 돕는다. 두 대표를 만나 건강한 습관이 환경에 미칠 나비효과에 관해 들었다.

◇일회용품 쓰지 말라고 잔소리하던 중앙대생이 세상을 위해 만든 자판기

지구자판기로 세제를 리필하고 있는 모습. /사라나지구

플라스틱 재활용에 앞장선 이들에겐 김빠지는 소리겠지만 샴푸나 세제 플라스틱 용기의 90% 이상은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사라나지구는 재활용이 플라스틱 문제의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제세 리필 자판기를 개발했다. 플라스틱 용기에 든 주방 세제나 세탁 세제를 구매하는 대신 리필하는 습관을 고안해 플라스틱 배출량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자판기의 이름은 ‘지구자판기’. 이용법은 간단하다. 자판기에 있는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인식하면 주문 창이 뜬다. 100ml 단위로 용량을 선택한 후 휴대폰으로 결제하면 자판기에서 이용자가 구매한 만큼의 내용물이 토출된다. 주방세제, 섬유유연제, 세탁세제 3종류의 세제를 리필할 수 있다. 내용물 역시 친환경 제품이다. 제주도에서 유래한 천연원료로 주방세제를 만드는 꽃마리협동조합 , 어린 아이들에게도 무해한 세제를 모토로 설립된 노닐드 등의 업체에서 납품 받는다.

지구자판기가 상용화 되면 재활용이 안되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인건비와 매장 운영비를 줄인 덕에 소비자는 계면활성제가 없고, 인체에 부하가 없는 친환경 세제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친환경 제품에 대한 인식의 문턱이 낮아지는 것도 덤이다. 게다가 ‘자판기’라는 친근한 형태는 환경 교육 콘텐츠로 활용되기 좋다. 사라나지구는 지구자판기를 여러 기관에 들고 다니며 환경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서사라 대표는 창업과는 별개로 환경 보호에 관심이 많았다. /더비비드

서사라 대표는 어릴 적부터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뚜렷한 목적 의식이 있었다. 중앙대 화학신소재공학부 입학 후 우연히 ‘소셜벤처’ 개념을 접하고 운명이라 느꼈다. “어릴 적 꿈은 의료봉사자였는데요. 성인이 되고 보니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방법이 다양할 것 같아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다녔어요. 그려다 한 스타트업 육성 기관의 데모데이 행사에서 소셜벤처를 접하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습니다. 비즈니스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창업과는 별개로 환경 보호에 개인적으로 관심 많았다. 어머니에게 1회용 랩 사용을 금지시키던 잔소리꾼 딸이었다. “환경 보호를 실천하다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오랜 기간 제로웨이스트 매장에서 생필품을 구매했는데요. 용기를 가져가 샴푸, 세제 등을 리필 해가는 리필 스테이션을 애용했습니다. 그런데 이용에 애로사항이 많았어요. 매장이 왕복 2시간 거리에 있어서 양 손에 세제통을 들고 다니는 게 힘들었고, 매장 운영 시간이 길지 않아 이용이 제약이 있었어요. 학교 수업이 끝난 후 가면 문 닫아 있는 경우가 많아서 한 달 동안 세제 없이 물로만 빨래를 한 적도 있었죠.”

인간형 자판기로 MVP 테스트를 하는 모습. /사라나지구

용기없는 고체 세제라는 대안이 있었지만 어딘가 아쉬웠다. “소셜벤처 동아리 친구들과 쌀 부산물을 업사이클링한 고체 세안 용품을 개발하기로 하고, 시장조사를 했는데 그 어떤 제품도 저를 만족시키지 못했어요. 청결하게 사용하려면 따로 건조시켜야 해서 관리가 번거로웠죠. 사용감도 아쉬웠고요. 일상 속 환경 보호 수단으로 삼기엔 고제 세제의 진입장벽이 높다고 생각했어요. 문득 ‘진입장벽이 낮은 편인 리필 스테이션의 접근성을 낮추는 게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집 근처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 자판기 형태면 좋을 것 같았죠. 실제로 외국에서는 세제를 리필할 수 있는 자판기가 이미 운영되고 있었어요.”

수요 검증을 하기 위해 MVP(최소기능제품) 테스트부터 시작했다. ‘인간형 자판기’로 출발해 기계형 자판기로 발전해 나갔다. “학교 쓰레기장에서 냉장고 박스를 주운 후 꾸몄어요.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직접 무게를 잰 후 리필해주는 인간형 자판기를 운영한 후 300명의 이용자에게 설문 조사를 받았어요. 자판기 출시 시 사용 의사와 불편함 등을 수렴해서 2021년 7월 1차 시제품을 출시했어요.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차근차근 사용성을 개선해 나가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입장과 관리자의 입장 등을 다방면으로 고려하고 있어요.”

(왼쪽부터) 지구자판기 이용법을 설명 듣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환경 교육을 받고 지구 자판기로 세제 리필 체험을 한 어린이들. /사라나지구

지난 5월, 창업 꿈나무 시절부터 꿈꿨던 목표를 달성했다. LG소셜펠로우 13기에 선정된 것이다. “너무 훌륭한 프로그램인데 저희가 지원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쟁쟁한 스타트업만 선정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실력 있는 심사위원들에게 뾰족한 피드백을 받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는데 선정됐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기뻤어요.”

LG소셜펠로우를 통해 다음 단계를 구체적으로 그리는 중이다. “비즈니스 모델 다각화에 대한 고민이 깊었는데요. 그로스해킹(growth hacking) 멘토링을 받고 소비자 데이터를 활용하는 모델을 추가했습니다. 신형 자판기를 활용하면 소비 데이터를 쉽게 받을 수 있는데요. 이 때 어떤 정보를 받아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멘토진들과 함께 했습니다. LG그룹과의 협업을 위한 제안서도 작성 중입니다. LG생활건강이나 LG화학 같은 기업의 사옥에 지구자판기를 설치하고, 임직원을 대상으로 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을 것 같아요. 기업 임직원 대상 교육을 진행한 경험이 있으니까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서 대표는 창업 꿈나무 시절부터 염원했던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됐다. /더비비드, 사라나지구

지금까지 동작구 내 카페와 학교, 중앙대, 한국사회적경제진흥원, 이케아 기흥점/광명점 등 30여곳에 지구자판기를 렌탈로 공급했다. 올해 12월 카드결제가 가능한 키오스크형 자판기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화여대와 구리시청소년재단과 설치계약을 맺었습니다. 많은 대기업의 러브콜도 받고 있어요. 신형 자판기는 소비 데이터와 연동돼 있어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데요. 사용자 데이터를 탄소중립포인트 같은 정부 환경 정책과 연계해 리필 소비의 접근성을 낮출 구상입니다. 리필스테이션 운영사 같은 플레이어와 합심해 제로웨이스트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싶습니다.”

◇폐식용유, 쓰레기가 아닌 중요한 자원입니다.

(왼쪽부터) 폐식용유 무인회수기 ‘ON리유’ 사용법을 설명 중인 채 대표와 무인회수기의 모습. /써스테인어스

정부는 2012년부터 자동차용 경유에 바이오디젤(biodiesel)을 의무적으로 혼합해서 사용할 것을 법제화하고 있다. 바이오디젤의 원재료는 폐식용유 같은 동식물성 유지다. 최근 대한항공 항공유에 급유된 바이오항공유는 2세대 바이오연료로, 동식물성유지를 원재료로 한다. 처치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애물단지 취급받던 폐식용유가 산업계에서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화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폐식용유가 자원으로 활용되려면 수거량이 증가해야 하는데 현재의 수거체계는 1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폐식용유와 관련된 공식적인 데이터가 없고 관련 정보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자원으로서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폐식용유의 재활용 가능성에 대한 인식도 낮다.

스타트업 써스테인어스(Sustain Us)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식용유 무인회수기 ‘ON리유’(온리유)를 개발했다. 적절한 처리방법이 없어 버려지거나 수거되지 않는 가정용 폐식용유를 재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이용자는 가정에서 쓰고 남은 폐식용유를 페트병에 담은 후 무인회수기에 넣기만 하면 된다. 폐식용유를 투입한 이용자는 현금으로 환급가능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채재훈 대표는 석유 시장에서 경력을 쌓고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를 연구한 이 분야의 전문가다. /더비비드

써스테인어스의 채재훈 대표는 석유 시장에서 경력을 쌓고,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를 연구한 전문가다. 7년간 정유사와 석유화학회사에서 석유 제품의 국내외 영업과 물류 관련 업무를 하며 이 시장을 보는 눈을 키웠다. 중앙대 창업경영대학원에서 기후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직장인 시절 채 대표는 자동차용 경유의 국내 판매를 위해 바이오디젤을 구매하면서 바이오연료 분야에 입문했다. 폐식용유의 가치도 일찌감치 알았다. “바이오디젤을 비롯한 바이오 연료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원재료의 중요성도 부각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게다가 국내에서 확보할 수 있는 원재료는 폐식용유가 유일했죠. 하지만 수거 과정이 비효율적이고, 자원으로서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게 아쉬웠어요. 직장 다닐 땐 누군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리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도 변하는 게 없더라고요. 문득 ‘내가 창업을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면 사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7년 간 막대한 자료와 아이디어를 쌓아 뒀거든요.”

식용유 무인회수기의 모습. /써스테인어스

폐식용유를 비롯한 기존의 재활용 시장의 구조는 수거업체 중심으로 짜여져 있었다. “가정이나 소규모 음식점에서 발생한 폐식용유를 회수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었어요. 수거함을 비치한 아파트가 더러 있었지만 관련 정보가 부족했고, 폐식용유를 수거함까지 가져가서 부어야 해서 번거로웠죠. 폐기한다고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 유인책이 없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의식과 양심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나 생활양식 속에 재활용을 녹여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재활용 자원을 환경에 이로우면서도 경제적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기업의 몫이고요.”

2023년 3월, 써스테인어스 법인을 설립하고 8개월간 폐식용유 무인회수기를 개발했다. “일반인, 음식점, 수거업체 등 다양한 이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의견을 들었습니다. 철저히 이용자 입장에서 기계를 설계했죠. 폐식용유를 붓는 구조가 아니라 폐식용유가 담긴 페트병을 통째로 기계에 투입하는 구조입니다. 이용자뿐만 아니라 폐식용유의 배출주기, 물량, 품질 등 관련 데이터를 쉽게 수집하고 연결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개념이라, 이를 기계로 구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채재훈 대표(왼쪽)는 LG소셜펠로우를 발판으로 LG그룹과 다양한 협업을 도모할 계획이다. /더비비드

지난 5월, LG소셜펠로우 13기에 선정됐다. “최종 명단을 보고 약간 의아했습니다. 설립되지 얼마 안 된 신생 기업이었으니까요. 한편 아이디어와 그동안의 노고를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소셜펠로우를 통해 자금과 홍보 지원을 받은 덕에 무인회수기를 성공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LG그룹과는 시도해볼 일이 많아요. LG화학이 최근 국내 HVO(수소화식물성오일) 공장설립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HVO의 원재료인 폐식용유를 보다 많이 필요로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가 폐식용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체계를 만든 후 납품을 하면서 LG화학과 건강한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싶습니다.”

서울시 동작구 상도3동에 위치한 성대전통시장과 협약을 맺어 11월부터 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시작으로 무인회수기 판매와 설치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시범사업을 진행한 후 공공기관이나 지자체를 대상으로 설치 대수를 늘려 나가는 게 1차 목표입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납품하지 않았는데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요. 기관 고객을 확보한 후에는 기업 시장에 진출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환경부가 주최한 ESG 친환경대전에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참가했는데요. 유명 식품/유통 기업 여러 곳으로부터 문의를 받았습니다. 식용유를 쓰는 곳은 도처에 널려 있으니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