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를 타면 세금 부담이 적다는 인식이 더는 안전하지 않게 됐다. 영국 정부가 전기차·PHEV 운전자에게 주행거리당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공식 발표하면서 글로벌 시장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친환경 이동 수단이었던 전기차는 혜택 중심의 초기 단계를 지나, 실질적인 유지 비용 부담 시대의 시작점을 맞게 됐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정책 변경이 아니라, 전기차 정책 패러다임 전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지난 10년 동안 각국 정부가 환경 목표 달성을 위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경쟁적으로 제공했지만,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영국 재무부는 급감한 연료세 수입 보전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기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EV 세금 현실화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라 예측한다. 실제로 미국 일부 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이미 시범 또는 정식 운영 중이며, 한국 역시 관련 연구가 본격 진행되고 있다. 소비자 선택 기준도 단순 구매 가격에서 ‘운영 비용’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졌다.
영국, 2028년부터 주행거리당 과금제 확정… EV 1마일 3펜스 부과

영국 정부는 2028년 4월부터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운전자에게 주행거리 기준 세금 부과 제도(Pay-per-mile)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EV는 1마일당 3펜스(약 40원), PHEV는 1.5펜스(약 20원)이 적용된다. 연간 평균 주행거리인 8,500마일(약 13,700km)기준으로 계산하면, EV 운전자는 약 255파운드(약 43만 원)을 부담하게 된다. 이는 같은 거리를 주행하는 휘발유 차량 대비 약 절반 수준이지만, 전기차의 핵심 장점이었던 유지비 우위를 크게 희석시킨다.
이번 정책의 직접적인 배경은 급격히 감소한 유류세 수입이다. 영국 재무부는 EV 확대 이후 도로 인프라 유지 비용 충당이 어려워졌다고 진단했으며, 첫해 약 1.1억 파운드(약 1조 9천억 원) 세수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판매 확대를 독려하는 동시에 세수 구조를 보전하는 절충안이라는 설명이지만, 소비자들의 반발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전기차 시장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보완책도 함께 제시했다. 차량세(VED)에서 고가 차량으로 분류되는 기준을 4만 파운드에서 5만 파운드(약 6,800만 원)로 상향하고, EV 구매 보조금을 2029~2030년까지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당근과 채찍’ 전략이라는 업계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전기차가 내연기관보다 비싸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우려도 번지고 있다.

구체적인 과금 방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주행거리 측정을 차량 ODD(계기반), 텔레매틱스, 또는 충전 인프라 데이터 연동 방식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 되든 개인 위치 정보 노출 우려가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영국 소비자단체는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정책이 영국만의 독자적 움직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오레곤·유타주는 이미 주행거리 기반 과금제를 도입, 뉴질랜드는 전기차에까지 RUC(도로 사용료) 적용을 확대했다. 독일·싱가포르는 확대 가능성을 검토중이며, 각국 정부는 공통적으로 EV 확대로 인한 세수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찾고 있다. 업계는 이를 글로벌 조세 체계 전환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도 비켜가기 어려운 흐름

한국은 현재 전기차에 대해 주행거리 세금 체계를 적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EV 보급 확대는 이미 내연기관 대비 세수 감소 문제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고, 정부 연구기관과 학계에서는 주행거리 기반 과금제 도입 필요성이 본격 논의되고 있다. 영국의 결정은 한국 정책에도 강한 참고 사례가 될 전망이다.
소비자 관점에서 중요한 변화는 ‘운행 비용’이 구매 결정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충전비, 보험, 감가상각 부담과 더불어 주행세까지 추가되면 EV의 경제적 매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업계는 보조금 정책과 과세 체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시장 판도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영국의 발표는 단순한 조세 개편이 아니라, 전기차 전환 시대가 ‘혜택의 시대’에서 ‘현실 비용의 시대’로 넘어간 상징적인 분기점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지금, 전기차 보급 확대의 다음 단계인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 구축이라는 진짜 숙제 와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