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야구가 알고 싶다
타인의 삶에 스며들고 함께 호흡하는 일이 점차 줄어드는 세상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억울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온 도준우 PD. 30년이 넘는 야구팬이기도 한 그는 가장 소외된 야구인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누군가는 여자가 야구하면 미쳤다고 하지만, 도준우는 여자가 야구에 땀을 쏟을 때 함께 눈물을 흘렸다. 무명의 선구자들이 낯선 땅에서 새로운 역사를 작성하는 순간, 그는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고 세상에 다큐멘터리 ‘미쳤대도 여자야구’를 남겼다. 그의 노력 앞에서, 대중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여자야구가 알고 싶다”라고.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Daeeun Park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그알PD’와의 첫 만남
<더그아웃 매거진>과 첫 만남입니다!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해요. (1월 7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도준우 PD입니다. 상상조차 못 했던 만남이네요! 저는 롯데 자이언츠의 오랜 팬이라서 자이언츠 TV만 봤지, 솔직하게 <더그아웃 매거진>은 존재만 알았거든요. 이번 기회에 인터뷰를 할 수 있어, 야구팬으로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2025년 하반기에 여자야구 현장을 열심히 누볐습니다. 새해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신년 방송을 준비하면,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사라져요. 계속 영상을 편집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새해를 맞이하는 보신각 타종은 함께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12월 31일에는 밤 11시 50분에 퇴근했죠! 집에서 아내와 타종 방송을 보고, 다시 일했습니다. (현재는 편집이 마무리됐나요?) 2부 방영을 앞두고 있어 아직은 바쁘네요. ‘미쳤대도 여자야구’ 편집은 얼추 마무리됐는데, 음악과 CG 작업 같은 후반 작업이 남아있습니다.
인스타그램 하이라이트에 ‘망원’ 카테고리가 있어요. 망원동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망원동에 거주하고 있거든요! 데이트하러 다니던 예전부터 분위기가 번잡하지 않고 시장과 한강이 있어 매력을 느꼈던 동네였죠. 그 기억을 품고 망원동으로 이사를 온 지 4년 정도가 됐는데, 애정을 듬뿍 가지고 있어요. 맛집을 찾을 때마다 스토리에 기록을 남겨 둡니다.
추천할 만한 망원동 맛집이 있을까요?
그럼요. ‘또간집’에서 망원동에 맛집이 적은 것처럼 언급되길래 내심 서운했거든요. (억울) 합정과 망원 사이에 돈가스 강자들이 많은데, 저는 ‘돈까스광명’을 강추합니다. 특히 ‘상등심’을 추천하는데, 하루 판매 개수가 한정돼 있으니 일찍 가 보시길 바라요.

#범죄 전문 PD가 야구 다큐멘터리를?
‘PD 도준우’의 이력을 살펴보면 S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야구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연출을 10년 정도 맡아서, 흔히 절 ’범죄 전문 PD’라고 알고 계시는데요. 오히려 제가 야구를 좋아한 지는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제겐 야구가 최고의 취미이기에, 야구를 소재로 방송을 연출하고 싶다는 마음은 늘 지니고 있었어요.
예능 PD로 입사한 뒤 시사교양국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죠. 스포츠 다큐멘터리는 또 다른 분야인데 어땠나요?
스포츠는 처음 시도해 보는 장르였어요. SBS에서도 스포츠 다큐멘터리를 많이 촬영하지 않았었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애를 먹었어요. 촬영팀을 적게 꾸렸는데, 현장에 가니 안 되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불꽃야구’나 ‘최강야구’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예능은 촬영이 우선이라면, 다큐는 야구가 우선이잖아요? 선수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선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했어요.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재밌는 촬영이었습니다.
소재를 찾아서 실제 방송으로 연출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기획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은 참 길고 어려운 일이에요. 연 단위로 기획했다가 엎어질 때도 허다하죠. 유튜브 채널에서의 연출은 비교적 간소하고, 제작비도 적어서 수월한 편이에요. 하지만 TV 방송에서는 관여하는 이도 많고, 제작비도 더 들기에 새 아이템이 곧장 수용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다행히 ‘미쳤대도 여자야구’는 쉽게 통과된 편이었습니다. 야구의 인기가 절정을 달리는 시기에, 미국에서 여자 프로야구가 출범된다는 확실한 이슈가 매력적이었죠.
“범죄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소재의 엄중함을 끝없이 의식해야 한다”라고 수차례 강조해 왔는데, 야구 다큐멘터리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적었나요?
오랜만에 마음 편히 촬영했어요. 처음에는 범죄 소재 다큐멘터리를 기획했었죠. 가장 깊이 알고 있는 분야고, 주변 지인도 다들 범죄 분야 전문가들이니까요. 그러다 문득 ‘하고 싶은 것을 해 보자’라는 결심을 했고, 야구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범죄 프로그램은 저와 인터뷰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쫓아서 설득해야만 했는데, 여자야구를 촬영한다고 하니 모두가 도와 줬습니다. 확실히 편했고, 감사히 촬영할 수 있었죠.
반면 스포츠 다큐멘터리에서만 오는 고민도 존재했을 텐데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연출할 때와는 다른 듯 비슷한 사명감을 지니게 됩니다. ‘이 방송이 많은 사람에게 닿도록 해야겠다’라는 마음이죠. 대중들에게 여자야구의 존재를 익숙하게 만들 방법이 뭘지 고뇌했습니다. 홍보도 열심히 했고, 선수들의 매체 출연도 독려했어요.

#30년 차 롯데 팬
롯데 팬이라고 했는데, 계기가 궁금하네요.
‘모태신앙’이라고나 할까요? 제 고향이 부산이거든요. 어릴 땐 부모님, 학창 시절엔 친구들과 사직야구장을 찾았죠. 자연스레 롯데 팬이 됐어요. (최애 선수가 있나요?) 요새는 전준우와 김원중에게 마음이 가요. 돈보다 팀에 대한 사랑을 더 중시한, 낭만 가득한 선수라고 느꼈어요. 또 제 이름이 ‘준우’지 않습니까? 그래서 유니폼도 전준우로 마킹했죠. (웃음)
롯데의 지난 시즌은 아쉬움이 컸는데, 팬으로서 어떻게 지켜봤나요.
어쩌면 다행인 게요. 제가 ‘미쳤대도 여자야구’를 연출하면서 미국으로 촬영하러 갔었어요. 미국 여자 프로야구(이하 ‘WPBL’)의 트라이아웃이 열렸거든요. 제가 미국으로 향하자마자, 롯데의 12연패가 시작됐지 뭡니까! 분명 한국에 있었을 때는 롯데가 3위였는데, 귀국하고 나니 순위가 저 밑으로 떨어져 있더라고요. 12연패의 악몽을 기사로만 접해서 상처를 덜 수 있었죠. 여자야구가 야구에 대한 사랑을 채워 주기도 했고요. 게다가 작년에는 롯데가 여름까지 야구를 잘했잖아요? 그걸로도 만족합니다.
그렇다면 2026시즌에는 더 기대가 크겠는데요?
늘 기대합니다! 올겨울에는 롯데가 이적 시장에 투자하지 않았지만, 내실을 다졌다고 생각해요. 육성에 초점을 맞춘다고 했고, 그만큼 유망한 자원이 많잖아요. 올해가 김태형 감독의 마지막 계약 기간이니까, 일을 내지 않을까요? 가을야구는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미쳤대도 여자야구
6개월 전만 해도 여자야구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들었어요. 여자야구의 존재를 어떻게 알게 됐나요?
그저 야구를 방송의 소재로 삼고 싶다는 팬심에서 출발했어요. 뻔한 아이디어만 떠오르던 시기에, 우연히 여자야구 관련 뉴스를 읽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죠. 영화 ‘야구소녀’를 봤던 것도 떠올랐고요. 개인적인 호기심이 커지면서 여자야구에 관한 조사를 시작했고, 알아 갔습니다.
‘미쳤대도 여자야구’ 1부에서는 세 명의 여자야구 선수(김라경, 김현아, 박주아)가 등장하고, 모두 WPBL에 진출하죠. 완벽한 서사였는데, PD로서의 ‘감’이 작용했던 걸까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여자야구 관계자에게 물어도, 셋 모두 합격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죠. 저 역시 한두 명만이라도 합격할 수 있기를 바라며 촬영했고요. 상상 그 이상의 일이 현실이 됐네요.
현장에서 만난 세 선수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PD 관점에서 바라보면, 라경이는 전형적인 휴먼 다큐의 주인공입니다. 리틀야구를 할 때부터 직접 자신의 길을 개척한 사람이니까요. 라경이도, 스태프도 눈물을 자주 흘리며 촬영했어요. 주아는 저희끼리 ‘쾌걸주아’라 불러요. 긍정적인 의미로 ‘MZ’스러움이 있달까요? 야구에서 파생되는 도전을 거침없이 이어 가는 사람이에요. ‘최강야구’ 트라이아웃에도 도전하고, ‘골 때리는 그녀들’에도 곧 출연하고요. 현아는 다소 현실적이고 솔직한 사람이죠. 처음 현아를 만났을 때, 졸업을 유예하고 취업 준비를 병행하고 있던 것이 떠오릅니다. (결국 야구로 취업에 성공했네요.) 1라운드에 지명됐죠! 지금도 미국 진출을 준비하기 위한 어학연수를 고민하는 현실적인 친구입니다.
김라경은 2025년부터 일본 프로구단 산하의 여자야구팀인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스’에서 고독한 도전을 이어 가고 있죠. 일본에서 직접 그 도전을 지켜볼 때의 감정이 궁금하네요.
우리 모두에겐 마음껏 꿈꾸던 시기가 있잖아요. 저 역시도 한때 래퍼를 꿈꿨어요. 어릴 적엔 제한 없이 꿈꾸지만, 나이가 들면서 현실과 타협하는 일이 늘게 되죠. 라경이도 이십 대 중후반을 향해 가고 있는 시기인데, 어떻게 보면 벽 같은 곳에 공을 던지는 도전을 이어 가는 거잖아요?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져요. 저 사람의 꿈이 이뤄졌으면 하는, 응원의 감정인 거죠. 눈물도 났습니다.
가장 울컥한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미국에서의 마지막 인터뷰가 떠올라요. 라경이가 가족이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 종종 울었거든요. 그날엔 트라이아웃 합격 덕분인지 울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편하게 스태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어봤어요. 그 질문에 라경이가 우는 겁니다. “여자야구 선수들의 꿈을 믿어 줘서 고맙다”라면서요. 현장에 있던 모두가 울었습니다. 사실 라경이가 촬영에 엄격한 면이 있었어요. 누구보다도 야구에 집중하는 사람인지라, 조금이라도 훈련에 방해가 되면 촬영에도 제약이 있는 편이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라경이가 미안함을 품고 있다가, 마지막에 눈물이 터진 것 같아요. 저희도 그 마음을 잘 알아서 같이 눈물을 흘렸죠.

김현아와 박주아 역시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해 야구를 그만두기 직전에 만났잖아요.
둘 다 현실적이었지만, 현실을 대하는 방식은 달랐습니다. 처음 현아를 만났을 때는, 전공을 살려 취업을 준비하는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WPBL 트라이아웃에 신청했음에도 특별하게 생각하진 않는 듯 보였어요. 야구로는 수입을 얻기 어렵다는 현실을 알고 있었거든요. 훈련을 거듭할수록 포수의 재미를 느끼고, 더욱 깊이 야구에 빠져들었죠. 주아는 ‘여자야구 선수’로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본인을 알려야 여자야구도 알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 거죠. 방송 출연에도 적극적이었고요. 촬영 당시 주아를 촬영하는 두 팀이 더 있을 정도였어요.
포수로 전향한 김현아는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보스턴에 지명되는 쾌거를 거뒀죠.
현아가 포수로 전향한 지 4~5개월 차에 촬영이 시작됐어요. 프로야구도 2루 송구가 쉬운 플레이는 아니잖아요? 더욱이 여자야구에는 노바운드 송구가 거의 없거든요. 현아가 노바운드로 송구하는데, 제가 봐도 송구가 빠르게 잘 가는 겁니다. 현아의 도루 저지를 보며 막연히 ‘여자야구에서는 귀한 포수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죠.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에서 포수 전체 1순위로 지명됐어요. 정말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내심 세 명 중에서 현아가 최우선으로 지명될 것이라고는 예상했어요. 정말 귀한 포수가 될 것이라는 야구팬으로서의 직감이었달까요. 앞으로 더 성장할 일만 남았네요.
선수들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선수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나요?
다들 국가대표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고충이 커요. 특히 라경이와 자주 이야기를 나눴죠. 라경이가 주아, 현아와 다른 숙소에서 머물게 돼, 제가 라경이를 픽업해 주고, 장도 봐 주고, 밥도 자주 사 줬거든요. 라경이가 저를 ‘PD님’으로 부르다가, 미국에 다녀온 후로는 ‘파더님’이라 부른답니다! (흐뭇) 제가 전문 야구인은 아니지만, “맞아도 되니까, 볼넷 내주지 말고 붙어라!”라는 이야기도 해 줬어요. 아시안컵에서 라경이가 필리핀을 상대로 거둔 완투승 기념구를 가져왔는데요, 선물로 받아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영화 ‘야구소녀’의 주연으로 출연했던 배우 이주영에게 내레이션을 맡겼어요.
‘야구소녀’를 감명 깊게 봤어요. 대한민국 여자야구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안향미 선수와, 김라경이가 주인공의 모티브가 됐거든요. 이주영 배우와는 이전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적도 있는 데다, 이주영 특유의 보이시한 목소리가 다큐멘터리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일찌감치 고려하고 있었죠. 사실 처음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처럼 내레이션 없이 연출할 계획이었는데요, 쉽지가 않아서 막판에 목소리를 추가하기로 했어요. 급하게 섭외를 요청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흔쾌히 수락해 줘서 즐겁게 작업을 마쳤습니다.

#트라이아웃
올해, 70년 만에 미국 여자 프로야구 리그가 부활합니다. 트라이아웃 현장은 어땠나요?
출국하기 전에 굉장히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나요. WPBL 측에서 촬영 허가 여부를 애매하게 답했거든요. 그래서 제작팀끼리 작전을 짜서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김라경의 삼촌인 척(?)을 하고, 제일 작은 카메라를 챙겨가기로 했죠. 근데 막상 현장을 갔더니, 너무나도 자유로운 분위기인 거예요. 아무도 저희를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점차 촬영 규모를 키우다가, 마지막 날에는 삼각대까지 챙겨서 편하게 촬영했습니다.
가장 마음이 갔던, 혹은 걱정됐던 선수가 있었을까요?
주아는 워낙 씩씩하고 거침이 없는 데다, 현아도 실수에 무던한 편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요. 오히려 라경이를 걱정했습니다. 투수이기도 하고, 실수에 민감한 편이라 본인의 모습을 다 보여 주지 못할지 우려했죠. 120%로 투구하려다 보니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서, 본인부터 스태프까지 항상 “70%로만 투구하자”라고 독려했던 기억이 나네요.
김라경이 본업인 투수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다가도, 타자로서 안타를 기록하는 반전을 보여 줬죠.
라경이가 홀로 경기를 치렀고, 선발로 등판해 1이닝을 소화한 후 내려가서 촬영진도 쉬는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누가 “라경이가 헬멧을 썼는데?”라고 외쳤어요. 의아해하면서 급히 카메라를 다시 켰는데, 라경이가 안타를 치더니 도루에 득점까지 하더랍니다. ‘김라경은 주인공이 맞구나’라는 생각을 곱씹은 순간이었습니다.
식사하던 중 2차 트라이아웃 결과가 찾아왔고, 세 선수 모두가 합격하는 경사가 났죠.
WPBL에서 합격 여부를 메일로 발송했거든요. PD로서 마지막 합격 여부는 세 명이 함께 있을 때 카메라에 담고 싶었죠. 예정된 20시보다 일찍 메일이 올 것을 예상해서, 19시 정도에 일식당을 예약해서 저녁 식사하는 장면을 촬영했어요. 근데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메일이 온 거죠! 방송에 길게 담기진 않았지만, 다들 엄청나게 긴장한 상태였어요. 한 명씩 결과를 확인했는데, 모두 합격 통보를 받자 서로 얼싸안고 난리가 났습니다. 합격 통보와 함께 프로필 사진 촬영을 위해 바로 근처 호텔로 오라는 소식을 접해서, 밥을 다 남기고 급하게 호텔로 이동했죠. (제작자로서 감각이 발현되는 순간이었네요.) 왠지 일찍 메일이 올 것 같았어요. 근데 메일이 너무 빨리 왔어요. 밥을 다 먹었을 즈음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요. (웃음)

#여자야구 아시안컵
2025 항저우 여자야구 아시안컵을 함께했습니다. 아시안컵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아시안컵임에도 관중이 적어 저희부터 목이 터지라 응원했어요. 대만과 중국의 경기를 제외하면 관중이 매우 적었죠. 촬영팀으로서는, 경기장의 그물이 너무 두꺼운 데다 구멍을 뚫는 것도 불허돼 촬영이 쉬운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아시안컵을 지켜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나 순간은 언제였나요?
대만전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일본은 세계 최강의 전력인지라 차마 넘기 어려운 산이었고, 대만을 꺾는 것이 대표팀의 현실적 목표였거든요. 사실 격차도 워낙 큽니다. 아직 대만을 상대로 승리한 적이 없고, 직전 아시안컵에서도 콜드게임 패를 당했거든요. 근데 이번엔 1 대 4로 지고 있다가 6 대 4로 역전에 성공했더라고요. 경기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어졌죠. 결국엔 다시 역전을 허용했지만, 대등하게 싸웠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경기였습니다.
대만과 홍콩에 석패를 거두며 아쉽게 메달 획득에 실패했죠. 한 끗 차이로 고비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컸겠어요.
아쉽게 재역전패를 당한 대만전이 야간 경기였고, 바로 다음 날 오후에 홍콩과의 3·4위전이 펼쳐졌어요. 사실 홍콩은 쉽게 이길 줄 알았던 상대였는데, 역전을 당했죠. 모두 ‘멘붕’에 빠졌고, 야구에서 흐름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참 어려운 스포츠예요.
현재 여자야구 대표팀은 단 한 곳의 기업 후원도 받지 못하고 있어요. 열악한 인프라의 고충을 체감한 순간이 있나요?
그래도 명색이 국가대표인데, 색상별로 유니폼이 하나씩만 지급됩니다. 여벌 유니폼이 없는 거죠. 빨래도 직접 해야만 하고요. 음료와 생수가 풍족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개인 로커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이번 기회를 빌려서라도 선수들에게 로커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 스튜디오를 로커처럼 만들었습니다. 스튜디오를 처음 본 선수들이 놀라면서, 좋아해 줬습니다. “평소에 지니고 있던 꿈이었다”라면서요.
취재를 이어 온 PD의 관점에서, 한국 여자야구 발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고등학교에 처음 여자야구부가 생기며 점차 확산한 일본 여자야구의 인프라를 고려했을 때,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먼저 여자야구팀이 하나라도 창단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본격적으로 미국 여자 프로야구 리그가 개막하면, 세 선수가 멋진 활약을 보여 줄 텐데요. 후속 취재 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미국에 다녀온 후부터, 두 명 이상이 지명된다면 후속 취재를 할 수 있도록 방송국에 요청해 둔 상태예요. 올해부터 WPBL이 출범하지만, 7월에는 여자야구 월드컵도 열리거든요. 아직 우리나라 대표팀이 여자야구 월드컵에서 승리한 적이 없어요. 새로운 도전을 후속으로 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앞으로 다루고자 하는 새로운 콘텐츠가 있나요?
하고자 했던 콘텐츠는 꽤 다뤘어요. 힙합도, 야구도 모두 소재로 활용했거든요. 대개 소재는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편인데, 올해는 여자야구를 더 조명해 보고 싶습니다. 아, 하고 싶은 게 하나 있긴 한데, (번뜩) 롯데 자이언츠 이야기를 양질로 다루고 싶은 사심이 가득합니다.
한국PD대상에서 ‘올해의 PD상’을 이미 두 차례나 수상했을 정도로 뚜렷한 성과를 남겨 왔습니다. ‘PD 도준우’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나요?
PD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 제가 제작한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얻을 때거든요. 제 개인보다, 프로그램이 여러분께 긍정적으로 작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들에게 인사를 전하며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국내 유일 야구 문화 잡지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다니, 처음에는 '선수가 아니라 나를?'이라 생각해서 당황했지만, 진심으로 영광이었습니다. 언젠가 롯데의 우승을 함께하고, 사직야구장에서 시구도 하고 싶네요. (웃음) '미쳤대도 여자야구'는 넷플릭스에서도 시청할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6년 178호 (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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