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때문에...' 한국일보, 여성기자 해외연수 지원 탈락 논란

박서연 기자 2024. 9. 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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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5년 업력 중 3년 육아 휴직…노조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사측 "향후 부장급 역할 위해 역량 키워야 하는 차원에서 언급"

[미디어오늘 박서연 기자]

▲한국일보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한국일보가 해외연수 추천 대상자 선발에 지원한 여성 기자에게 “가장 걸림돌이 된 게 출산”, “육아휴직 때문에 적지 않은 공백이 있는 상황” 등 이유를 거론하며 탈락시켰다. A 기자는 만 15년의 기자 생활 중 3명의 아이를 출산해 총 3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한국일보 사측은 “향후 부장급의 역할을 하기 위해 현재 역량을 키워야 함을 논하는 차원에서 언급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일보 노조는 “A 기자는 육아휴직 외에 업무 공백이 없었다. 육아휴직을 쓰지 않았다면 업무 공백이 많았다는 지적을 받을 여지가 없다”며 사측을 비판했다.

23일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일보는 지난 7월 '2025년 외부 기관 해외연수 추천 대상자 선발' 일정 공고를 올렸다. 해당 모집 공고에 따르면 한국일보는 기자 경력 7년 이상을 대상으로 지원받았고, 최종 2명을 선발한다고 밝혔다. 선발된 2명은 LG상남언론재단과 한국언론진흥재단, 관훈클럽, 여기자협회 등 외부 기관의 해외연수를 지원할 수 있다.

서류 접수 마감 뒤 한국일보는 지난달 29일 면접 절차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이성철 사장, 권동형 전무, 김영화 뉴스룸국장, 이태규 논설실장이 배석했다. 이성철 사장은 A 기자에게 '최근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이 많았다. 연수보다 계속 업무를 하면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지금 연차에서 연수를 다녀오면 갈 수 있는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회사 입장에서도 연수 다녀온 A씨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라 난감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질문 중에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지난 6일 김영화 국장은 A 기자를 직접 만나 탈락 사유를 전했다. 김영화 국장은 “가장 걸림돌이 된 게 출산, 육아휴직 때문에 적지 않은 공백이 있는 상황에서 연수라는 자발적인 업무 중단을 다시 받아들여 주는 게 맞느냐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고 했다. 김 국장은 “지금은 현업에서 더 집중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남녀고용평등법 '육아휴직' 조항을 보면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정승균 일과사람 변호사는 23일 미디어오늘에 “남녀고용평등법상에 육아휴직으로 인한 불리한 처우를 금지하고 있다. 해고나 임금에 따른 불이익 조치가 아니더라도 해외연수 추천 배제 이유가 육아휴직 때문이라면 불리한 처우에 해당한다”며 “당사자가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한) 12년간 한국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육아휴직 외에 별도로 휴직을 사용한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지부장 유환구)는 지난 10일 사측에 해당 사안과 관련한 문제의식을 전달했다. 그러나 사측은 “향후 부장급의 역할을 하기 위해 현재 역량을 키워야 함을 논하는 차원에서 언급된 것”이라며 육아휴직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면접 중 A 기자에게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이 많다' 등의 질문을 한 적이 있느냐는 미디어오늘 질의에 이성철 사장은 23일 “한국일보 내부에서 상의하겠다”고만 밝혔다.

김영화 뉴스룸국장은 23일 미디어오늘에 “해당 기자는 연수를 다녀오면 부장단 합류를 앞두고 있는 시점인 만큼 회사의 향후 인사운용 측면, 그리고 연수계획서의 적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전한 뒤 “회사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연수 기회에 불이익을 준 적이 없고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노조 성명서에 나와 있듯 '향후 부장급 역할을 하기 위해 현재 역량을 키워야 함을 논하는 차원에서 업무 공백이 언급된 것일 뿐'”이라고 했다.

▲Gettyimages.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는 23일 <육아휴직 사용자에 대한 위법한 추천 탈락 즉각 철회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경영진은 명백하게 위법하고 시대착오적인 판단을 했다. 조합이 의견을 구한 노무법인 역시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여진다'고 답했다”며 “해당 조합원은 육아휴직 외에 다른 사유로 인한 업무 공백이 없었다. 육아휴직을 쓰지 않았다면 업무 공백이 많았다는 지적을 받을 여지가 없었다.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차별이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육아휴직 기간을 빼더라도 10년 넘게 근속한 구성원에게 역량을 키우는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 역시 공감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지부는 또 “경영진은 '연수 대상자를 꼭 선발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특파원처럼 반드시 선발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연수 선발 탈락을 '불리한 처우'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면서 “해외연수는 단체협약에 명시된 회사의 대표적인 복리후생 제도다. 복지혜택을 누릴 기회를 배제시키는 것이 불리한 처우가 아니라면 무엇이 불리한 처우인지 되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지부는 “많은 구성원은 육아휴직 사용까지 운운하며 사실상 유일한 재교육·재충전 제도인 해외연수 기회를 박탈하려는 경영진에 분노하고 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경영진은 심사 과정에서 발생한 차별·위법 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시정 조치해야 한다. 육아휴직 사용자에 대한 불이익과 차별을 우려하는 구성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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