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인사이트] 정부·지자체가 먼저 시작한 ‘65세 정년’… 연금 개혁과 맞물린 ‘뜨거운 감자’

손덕호 기자 2024. 10.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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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대구시, 공무직 정년 65세로 높여
기아차·현대차도 내년부터 정년 연장 논의
전문가들 “해외 사례 봤을 때 사회적 합의 이루는 게 핵심”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무직 근로자가 청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정안전부와 대구시가 공무직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기로 했다. 그동안 대기업 노조가 주장해 오던 정년 연장을 정부와 지자체가 먼저 시작한 것이다. 또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은 75세까지 ‘일하는 노인’으로 남을 수 있게 하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년 상향은 연금 개혁과 맞물려 있는 ‘뜨거운 감자’” “해외 사례를 봤을 때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게 핵심” 등으로 말하고 있다.

◇행안부·대구시 공무직 정년, 65세로 단계적 상향

26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정부청사에서 환경 미화와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공무직 근로자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행안부 공무직 등에 관한 운영 규정’이 지난 14일 시행됐다. 공무직은 기관에 직접 고용된 무기계약직 근로자로, 대상자는 230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공무직도 법정 정년인 60세를 적용받았다. 다만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은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사가 합의하면 정년을 60세보다 높이는 것은 가능한데, 이번에 ‘65세’ 문을 행안부가 열어놓은 것이다. 65세 정년이 전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1964년생(올해 60세)은 63세, 1965~1968년생(56~59세)은 64세, 1969년생(55세)부터는 65세로 계단식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대구시도 뒤를 따랐다. 대구시는 지난 22일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본청 등에 소속된 공무직 근로자 정년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한다고 밝혔다. 내년에 60세가 되는 1965년생 정년은 1년 연장되며, 2029년에 정년이 65세가 된다. 정년 연장 대상은 본청과 산하 사업소에서 시설물 유지보수와 관리를 하는 412명이다.

행안부와 대구시 공무직 정년 연장은 다른 공공 부문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년 연장 확대 시행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정년 연장이라는 사회적 논의를 위한 첫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 노사가 작년 6월 13일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교섭대표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단협 상견례를 열고 있다. /현대차 제공

◇민간에선 현대·기아차가 내년부터 정년 연장 본격 논의

대기업 거대 노조는 ‘65세 정년’을 아직까지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기아차 노조는 정년 연장을 꾸준히 요구해 왔지만, 아직은 생산직이 60세 정년을 보장받고 원하면 62세까지 일할 수 있는 수준이다. 기아차 노조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으로 사측과 특별팀(TFT)을 구성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정년 연장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노조는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방안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도 사정이 비슷하다.

대기업 중에서는 지난 2022년 동국제강이 정년을 60세에서 61세로 늘렸고, 올해 다시 62세로 높였다. 숙련 인력이 필요한 사측과 더 올해 일하고 싶어하는 노조 측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덕분이다.

또 제19대 대한노인회장에 당선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법적 노인 기준 연령 상향을 정부에 건의하겠다면서 75세까지 ‘일하는 노인’을 늘리자고 제안했다. 정년 연장 첫해(65세)에는 정년 피크임금의 40%를 받고, 10년 후인 75세에도 20% 정도를 받도록 한다는 대략적인 틀도 내놓았다. 일을 하는 기간에는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등 기존 노인들이 받는 혜택은 받을 수 없게 하자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60세 퇴직하면 3~5년 ‘소득 공백’… 노동계 주장에 정부·지자체 호응한 셈

노동계가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것은 60세에 퇴직하면 국민연금(노령연금)을 받을 때까지 수년간 ‘소득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2013년 61세를 시작으로 5년마다 1세씩 높아지고 있다. 올해는 63세부터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정년퇴직한 1961년생은 최근 3년간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않았다면 모아 놓은 돈을 헐어서 생활해야 했다.

행안부도 이 문제에 공감해 공무직 정년을 연장한 것이다. 홍준표 시장도 “단순히 퇴직 연령을 늦추는 것이 아니라 고령화 및 국민연금 개시 연령에 따른 소득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노사정대표자 회의에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왼쪽부터),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이 회의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 의무가입 64세로 상향 추진…한국노총 “64세까지 일하고 65세부터 연금받자”

정년 연장은 대통령 소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논의하고 있다. 법정 정년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재고용이나 정년 폐지 등 ‘계속 고용’ 방법을 전반적으로 논의 중이다. 해외 사례가 폭넓게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60세 정년을 유지한 상태에서 근로자가 원하면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2011년에 정년을 전면 폐지했다.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은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 정년 연장과 관련해 “국민연금 개편 논의에 맞춰 집중 논의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달 발표한 연금개혁안에서 국민연금 의무가입연령 상한을 현재의 59세에서 64세로 상향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은 지난 해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법정 정년을 맞춰 64세까지 일한 뒤 65세가 되면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요국은) 일하는 연령과 연금 혜택을 받는 연령이 연동돼 있다”며 “(한국의 정년 연장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로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연금과 관계 없이 정년을 없앤 사례도 있다. 대만에서는 법정 정년이 65세였지만 지난 7월 정년 제도를 폐지했다. 고령자 고용을 확대해 인력 부족 현상을 완화하겠다는 취지였다, 대만의 공적연금은 올해는 63세부터 받을 수 있고, 내년에는 64세, 2026년에는 65세로 높아진다.

또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에서는 근로자들이 정년 연장에 부정적이다. 프랑스에서는 2030년부터 정년 및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방안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가 있었다. 독일도 66세인 정년을 상향하기로 했는데 지연되고 있다. 연금 재정 고갈을 막기 위한 시도였지만 근로자들의 반대가 거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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