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4.3진상조사보고서는 끝 아냐...밝혀야 할 4.3의 진실 아직 남아

허호준 2026. 2. 2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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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 ① 허호준 / 기억과 해석을 넘어-4.3 본질 연구의 필요성과 방향

2028년이면 제주4.3은 80주년을 맞는다. 기나긴 야만의 시간을 지나, 특별법 제정과 희생자 보상까지 성사되는 등 많은 진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그것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2월 5일부터 6일까지 열린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4.3융합전공 제5회 학술대회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는 4.3 연구의 2기를 여는 자리로 평가받을 만큼, 유의미한 내용들이 공유됐다. [제주의소리]는 독자들과 함께 4.3 80주년 이후를 함께 고민하고자, 4.3융합전공과 함께 제5회 학술대회 기조발제문을 순차적으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1. 4.3 연구의 현재와 본질 연구

제주4.3 연구는 2000년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하 4.3특별법)을 제정한 이후 눈에 띄게 발전해왔다. 정부가 4.3특별법에 따라 4.3의 진상을 조사하고, 2003년 10월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이하 정부 보고서)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폭력의 실체를 최초로 정부가 인정하고, 공식화한 보고서이다. 이는 4.3의 사회적 담론 형성과 국가 책임 인정,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 정책의 추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 보고서 발간 이후 4.3 연구는 기억, 문학, 역사, 예술, 트라우마, 종교, 여성, 기념공간, 기록물,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연구가 증가했다. 필자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최근 10년 동안(2015~2025) 나온  4.3 관련 석·박사 학위논문을 확인한 결과 최소한 박사 논문 7편과 석사논문 42편이 확인됐다.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4.3융합전공이 2024년부터 해마다 2차례 여는 학술대회가 제4회까지 21편(기조발제 제외)의 연구 발표가 있었고, 이번 제5회 학술대회 28편의 연구 발표를 포함하면 49편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논문 가운데 4.3 시기 '본질'을 다룬 연구는 석·박사학위 논문 42편 중 1~2편, 4.3융합전공에서는 49편 중 많아야 4~5편 정도에 불과하다. 연구의 양적 증가와 확산에도 불구하고 본질에 접근하는 학술적 연구는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4.3 연구는 그동안 진실 규명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피해자 명예회복에 큰 기여를 했으며, 4.3을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과거사 문제이자 이의 해결에 가장 모범적 해결사례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부 보고서 발간 이후 22년의 연구 흐름을 보면, 4.3 연구는 '사건 이후'를 다루는 '사후 연구'(Post-4.3 Studies)에 집중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연구는 정부 보고서가 제시한 서술을 사실상 '기준'으로 받아들였고, 이를 넘어선 본질 규명 시도는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다.

연구의 중심축이 기억과 해석이라는 사건 이후에 치우치면서 이에 대한 논의는 풍부해졌지만, 4.3의 진실을 규명하는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이다. 이러한 편향성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예컨대 1948년 4월 3일 무장대는 "미제는 즉시 물러가라"는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제주도민에 보내는 호소문에 "미제 식인종과 주구들의 학살 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 봉기했다고 나와 있지만, 정작 4.3 시기 무장대가 미군 시설이나 미군을 공격한 사례는 없다. 미군 정보보고나 외교문서에서 '대량 학살' 또는 '집단학살'이라고 표현되는 용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제주도 상황을 보고했음에도 왜 실제 이를 막기 위한 개입은 없었는지 여전히 해명되지 않았다.

특히 보고서가 다루지 못했던 군·경, 우익세력의 동원과 가해자 규명은 물론, 초토화의 작동 기제와 정책 결정 과정, 무장대의 구성원과 조직·의사결정구조, 4.3과 냉전 형성기의 국제정치적 맥락, 그리고 그것이 4.3에 끼친 영향, 4.3 시기 재일동포 사회, 외국 언론, 한국 정부 및 미국 내부 정책 등 외부 변수 등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전되지 않았다.

연구의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후 연구와 함께 본질 연구라는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4.3의 전체상을 바로 보게 되는 길이며, 사후 연구를 더욱 풍요롭게 할 밑바탕이 된다. 
정부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 정부 보고서 이후: 다시 질문해야 할 것들

정부 보고서는 4.3 시기 피해 규모와 학살의 양상을 폭넓게 기술함으로써, 국가폭력의 실행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보고서는 4.3특별법의 목적에 따라 진상규명과 희생자 유족들의 명예회복에 중점을 두고 당시 접근 가능한 사료와 증언을 최대한 집약해 피해 규모와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 대통령 이승만의 책임과 군 지휘관의 책임, 그리고 미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일부나마 명시한 것은 중요한 성과다. 이 보고서가 없었더라면 4.3 시기 국가폭력의 실체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늦었을 것이고, 이에 따른 국가의 사과와 명예회복의 제도화는 더 늦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피해 실태에 방점을 둔 만큼, 사건의 구조나 행위자 분석을 심층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보고서는 연구자들에게 과제를 안겨줬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정부 보고서는 현지 진압 책임이 있는 제9연대장과 제2연대장에게만 1차적 책임을 물었을 뿐 곳곳에서 가해진 집단학살의 책임자와 집행자들에 대한 실체는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경찰 역시 군과 마찬가지로 당시 반인륜적 행위에 책임이 있는 기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지휘체계와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다. 군·경 토벌대의 전위대 또는 주체로서 참여한 서북청년회나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도 마찬가지다.

또한 미군정이 실시한 4.3 무장봉기의 원인(遠因)인 3.1사건 진상조사 결과 보고서는 여전히 발굴되지 않았다. 1947년 3월 1일의 발포가 우발적이었는지, 누구의 명령에 의한 발포였는지 규명되지 않았다. 수장 학살은 누구의 명령으로, 어떤 행위자가 집행했는지도 모른다. 4.3특별법은 4.3의 종료 시점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 9월 21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산사람'이 1957년 4월 2일 체포된 사실을 고려하면, 이 종료 시점 설정의 타당성 역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라산의 개방과 출입금지는 작전구역과 기간에 따라 수시로 이뤄졌다. 이러한 쟁점들은 모두 본질 연구의 영역에 속한다.

사후 연구의 토대가 돼야 할 본질 연구는 아직도 여러 부분이 비어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 보고서 발간 이후의 4.3 연구를 하는 데 있어 이 보고서의 서술을 사실상 교과서로 받아들여왔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이 이상의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사료의 발굴로 정부 보고서의 서술 오류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드러나는데도 이에 대한 비판적 검토나, 이를 토대로 사건의 본질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4.3에는 아직 밝혀야 할 진실들이 남아 있다. 이행기의 정의의 요소 가운데 하나가 가해자 처벌이지만 4.3 시기의 가해자는 이미 대부분 고인이 됐다. 처벌의 실효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해세력 가운데 군·경 토벌대의 간부들이 누구인지, 서청 등 우익세력의 간부는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규명해야 한다.

본질 연구가 정체돼 온 이유는 네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정부 보고서를 통해 이미 진상이 충분히 밝혀졌다는 인식. 둘째, 정부 보고서를 넘어서는 해석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사료 발굴의 어려움. 셋째, 본질 연구의 범위와 방법론 설정의 난점. 넷째, 사료 발굴의 노동 강도에 비해 연구 성과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부담이다.

그럼에도 정부 보고서 발간 이후 지난 20여년 동안 새로운 사료는 더디지만 발굴되고 있다. 국내외 문서와 신문사료 등 1차 사료의 발굴은 사건의 본질을 보완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기존에 알려진 1차 사료 또한 재검토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4.3의 진실에 보다 더 다가가기 위한 본질적 질문들을 다시 던져야 할 때다.

허호준

제주 출생으로 1989년부터 2025년까지 한겨레 기자로 활동했다. 제주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제1회 4.3언론상 본상(2022)을 수상했다. ▲4.3, 19470301-19540921 - 기나긴 침묵 밖으로(2023) ▲그리스와 제주, 비극의 역사와 그 후(2014) ▲4.3, 미국에 묻다(2021) 등을 펴냈다. ▲현대 사회와 제노사이드(공동, 2005) ▲20세기의 대량 학살과 제노사이드(공동, 2006)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무덤에서 살아나온 4.3 수형자들(2002) ▲그늘 속의 4.3(2009) ▲4.3과 여성(전3권) 등 구술집 작업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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