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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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 올랐을 때 또는 항공기를 이용할 때 일시적인 어지러움이나 불안감을 경험하신 적 있으신가요? 이는 일반적인 생리적 반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심박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손발에 땀이 나며 극도의 공포심을 느낀다면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고소공포증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고소공포증은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비합리적이고 과도한 공포 반응으로, 개인의 일상생활과 사회적 기능에 상당한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고소공포증은 말 그대로 높은 곳에 대한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높은 곳에 가면 자연스럽게 조심하게 되는데, 고소공포증을 가진 분들은 이러한 안전 본능을 넘어선 과도한 공포 반응을 보입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럼증을 느끼며, 심한 경우 공황 발작과 유사한 증상, 즉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답답하며 곧 죽을 것 같은 느낌까지 받습니다. 이러한 증상 때문에 직업 선택에 어려움을 겪거나, 야외 활동을 피하게 되는 등 삶의 질이 크게 저하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고소공포증은 왜 생기는 걸까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의 충격적인 경험, 예를 들어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위험한 상황을 목격한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공포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또한, 유전적 요인이나 뇌의 특정 부위 활성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추정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특정 사건 때문이라기보다는, 높은 곳에 대한 위협을 과장하여 해석하는 인지적 오류가 고소공포증을 강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떨어질 것 같다'는 비합리적인 생각이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고소공포증의 치료는 다른 공포증과 마찬가지로 인지 행동 치료가 매우 효과적입니다. 이 치료법은 두려워하는 상황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고, 점진적으로 공포 대상에 노출시켜 불안에 익숙해지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높은 곳의 사진을 보거나 영상을 시청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점차 고층 건물의 낮은 층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층수를 높여가며 실제 높은 곳에 노출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불안이 실제 위험과는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공포 상황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가상 현실(VR) 기술을 활용한 노출 치료 역시 효과적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실제와 유사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노출 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 방법이 많이 사용됩니다.
약물 치료 또한 고소공포증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불안 증상이 심하거나 공황 발작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경우, 항불안제나 항우울제 등을 사용하여 증상을 조절하고 인지 행동 치료와 병행하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물은 보조적인 수단이며, 정확한 진단과 처방 없이는 오남용의 위험이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해야 합니다. 고소공포증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약물에만 의존하기보다는 행동 변화를 통한 극복 노력이 필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나는 본래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성향이다”라고 자가 판단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증상을 감추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소공포증은 임상적으로 효과적인 치료법이 확립되어 있으므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정확한 평가를 받고, 환자분의 상태에 맞는 치료를 해나가셔야 합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강록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