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미엄 아트 거래 플랫폼,
VART(바트) 이사, 김지원 -
1.간단히 자기소개 해주세요.
이달 말 오픈 예정인 퍼블릭 아트 플랫폼 바트(VART)의 이사로 있는 미술애호가 "Art Enthusiast" 김지원입니다. 좋은 전시와 좋은 작가와 좋은 공간 좋은 기획 사냥을 다니며 좋은 아트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죠.

1.지금의 커리어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이 크시다면서요
네. 막대합니다. 어려서부터 도자기 공장을 운영하셨던 아버지 덕에 자연스럽게 ‘미술’과 ‘경영’을 늘 가까이에서 접하고,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제가 태어난 집이기도 한 공장은 도자기 화공들이 아름다운 도자기를 구워내는 멋지고 신나는 나의 놀이터였어요. 전쟁 피난민 출신이신 아버지는 67년 도자기 공장을 설립하셨고, 전쟁 후 가난 속에서 힘든 화가들에게, 거처가 될 수 있게 먹고 잘 곳을 제공하셨어요. 그 덕에 화가들이 늘 친구였죠. 그중에는 크게 이름을 떨치시게 된 분도 계셔요.
대학에서는 당연히 경영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제게 미술은 항상 쉼이었어요. 대학생에 된 후 집안이 갑자기 기울었던 어느 날,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의 액자가게로 달려가 봐놨던 싼샤갈의 포스터를 걸면서 언젠가는 원화를 꼭 걸어야지 하며 다짐한 기억이 납니다. 힘든 시간 중에도 꿈꿀 수 있게 해주었어요.
2.경영을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 바로 미술 일을 시작하셨나요?
대학 졸업 후 현재의 LG-CNS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시작하여 오라클 코리아의 시스템 컨설턴트로 일했지만, 기업 공채입사로 배치된 결과물이 평생의 업이 되어있으니 늘 마음을 IT 쪽에서 잡지는 못했었어요. 결혼 후에는 쥬얼리 사업, 레스토랑 사업, 키즈카페 운영, 디지털 장비 공급 등 다양한 업종의 사업들을 직접 운영하며 실전에서 ‘경영’의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전혀 다른 비즈니스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업이 커져서 아이보다 소중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에요. 저의 아버지 따라 아버지 공장에 자주 다니던 기억이 하도 좋아서, 일을 할 때는 항상 아이가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요. 그러니까 업무 셋업이 조금 영향받을 수 있죠. 전업어머니, 일하며 육아하며 성공하는 선후배어머니들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필리핀 이민을 계기로 시작한 자영업인 쥬얼리 사업은 두 개의 상설매장과 세 개의 팝업 매장까지 규모로 키웠지만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6년간 운영한 후에는 더 이상 새로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순차적으로 다른 일에 도전하게 되었고 레스토랑, 디지털 장비임대업을 겸한 키즈키페 등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또 다른 배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늘 맘에 걸리다 보니 본격적 일을 하지 못하는 제게, 힘이 된 것은 아버지의 말씀이셨어요. 큰 그릇을 만들려면 바닥만 만드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릇이 바닥이 넓어 크면 높이 쌓아서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 제 사업과 삶의 속도에 가르침을 주셨지요.
3.경영 컨설턴트, 스타트업 엑셀레이터, 개인사업체 운영 등 경영자로서의 커리어 패스를 걷다 어떤 계기로 미술 분야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서울예술재단이 계기이겠네요. 아이 유모차 밀고 다니던 무렵, 삼청동, 네이처 포엠빌딩이 있는 청담동 등 갤러리 밀집 동네를 정말 자주 갔어요. 아이 낮잠 재우려고요. 그때만 해도 갤러리들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늘 유모차 밀며 갤러리를 돌았어요. 그렇게 한 관장님이랑 친해졌고 그분은 지금까지 제 멘토입니다. 마닐라 이민 간 지가 12년 전인데, 그분께서 서울예술재단을 열게 되었고, 재단 일을 하는 동안 매주 한국을 나왔어요. 3일은 마닐라에서 엄마로 살고, 4일은 한국에서 미술 일을 하였습니다. 제 멘토이신 표관장님의 재단 수업을 듣고, 소더비 온라인 클라스들을 들었어요. 국내외의 온갖 미술책을 시대별 지역별 작가별로 분류하여 스크랩핑하고, 엑셀로 차트 만들어서 트렌드를 보고, 요즘도 항상 어디선가 미술 관련 수업을 듣고 있어요. 서점들에 늘 찾고 있는 책을 문의해놓고 기다리고 있지요. 어떤 일을 업으로 하던 중이든지 자유시간에는 작가와 작품세계들에 대해 상상의 나라를 펼치며 다녔죠. 그러다 보면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버려서 죄책감이 들 만큼 모든 업을 접고 최근 아트 부산 일을 하는 동안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만하게 행복했어요. 잠 안 자고 안 먹고 미술만 다루고 싶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게 일이라니.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한다는 것. 이렇게 중요했네요.
크게 아파 보니, 삶이 너무 소중해졌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 결심했지요.
코로나가 기승이던 21년 9월, 배에 생긴 염증이 패혈증까지 가서 삶과 죽음의 귀로에서 겨우 삶으로 돌아왔죠. 지나간 숨 가쁜 날들에 대한 후회가 가득 찾아왔어요. 절실함을 느꼈어요. 다시 사는 것 같은 남은 이 인생은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 아닌, 한순간 한순간이 마지막인 것같이 행복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본업을 접어버리고 아트로 들어온 결정적 계기이겠네요.
4.서울예술재단, 백합문화재단, 아트부산, 프리즈까지 여러 단체 및 아트페어와 일하고 계신데 올해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에서는 어떻게 함께 하시게 되었나요?
앞서 소개처럼 미술은 저의 일상의 일부여요. 지금은 육아와 병행하며 제 상황에 맞게 할 수 있는, 주로 ‘아트페어’와 같은 단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아트부산’과 ‘프리즈’ 같이 굵직한 국제 아트페어를 함께 하며 예술적 영감을 받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 프리즈도 우연찮게 함께 할 수 있은 기회를 갖게 되었어요.
코로나가 끝난 후, 결심했던 대로, 원래 좋아하는 여행을 다니다가 만난 갤러리여요. 8월에 정말 마법처럼 만나서 이번 프리즈 동안 부스를 함께 지켰죠.
아트 부산이 끝난 후에 넉 달 동안 대부분 가족들과 여행을 다녔어요. 어디를 여행을 가든지 그 도시에서 보고 알고 싶은 작가의 목록을 업데이트해두죠. 그런데 베트남의 몇몇 대단한 작가님들 전시목록에 한 갤러리에 이름이 아크릴과 되풀이되는 거였어요. 찾아가 보니 정말 좋아서 그다음 주에 미술관계인들 모시고 다시 다녀왔어요. 무언가같이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베트남 갤러리 이름은 갤러리퀸(Galerie Quynh)이에요.
에폭시, 레진, 플라스틱으로 작업해 불안한 상태에서 얼어붙은 인물을 묘사하며 몽환적인 구성을 연출한 도 탄 랑(DTL)의 작품과 ‘Life Paintings’라는 연재로 어리석음, 부조리, 변덕스러움, 광란의 삶을 반영한 윌 터먼 WT의 작품을 가지고 왔어요.
부스에서는 직접적으로 배치, 설치부터 고객응대, 해체와 배송, 몇 점은 설치까지 전천후로 다 갤러리스트와 함께 다 했네요. 갤러리 퀸이 도움되거나 퀸에 도움될만한 분들을 연결시켰어요. 전시가 열리는 동안 많은 작가와 미술 애호가들을 만나며 베트남 미술과 작가,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데 온 힘을 쏟았어요. 빠듯한 일정에 몸은 피곤했지만, 매일 눈앞에 펼쳐진 황홀한 그림들을 보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정말 충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6.올해 프리즈서울 2023는 어땠나요?
저의 관점은 조금 다를 거여요. 무엇보다도, 부스 각각의 완성도와 프로그램, 일과의 운영, 규칙 등등을 주로 보았고, 프리즈 각 행사지역간 차이를 찾아보려 했어요. 프리즈는 오랜 매거진 운영으로 탄탄한 심사진이 엄선하였으니, 가고시안, 하우저 워스, 페이스 등 메이저 갤러리 외에도 아노말리 실버렌스 ROH 같은 전 세계의 탄탄한 갤러리들이 오죠. 아트위크도 이번엔 굉장했던 거 같아요.
7.개인적으로 어떤 작품을 좋아하시나요?
크리스천 볼탕스키, 브루스나우만을 좋아해요. 제가 벽에 걸고 싶은 작품은 어릴 때는 벨라가 있는 샤갈이었지만 지금은 집 없어도 싸이 톰볼리 한 점만 있으면 싶고요.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이건 그냥 조크여요 ^^
크리스천 볼탕스키는 제게 큰 가르침을 준 작가에요. 불탕스키를 보기 위해 나오시마 심장소리 아카이브도 두 차례 다녀오고,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때는 전시 남은 날 수만큼 전구에 불이 켜져있는 걸 보고 싶어서 일곱 번 다녀왔어요. 50년간 센터퐁피두가 찍은 영상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너무 좋아서, 그리고 그 비디오를 통해, 작가를 대하는 국가적 시선의 중요성도 깨달아서.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탑이라 생각합니다.
브루스 나우만 역시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주는 작가죠. 작가로서의 오류가 단 하나도 없는 작가라고, 작가는 걷기만 해도 작품이라는 게 딱 맞는, 작년 베니스비엔날레 중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했던 contrapposto studies같은 전시는 놀라움이죠. 그 외에도 정말이지 좋아하는 작가님 작업들 넘치고 넘칩니다.

크리스찬 볼탕스키_crepuscule

브루스 나우만_Contrapposto Studies, Venice 2022
8.일반 대중들도 미술품 투자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미술을 알고 나면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미술 작품을 통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로 들어가 그 시대를 산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에요. 책, 영화, 음악은 그런 것들을 즐기는 데에는 개인의 취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미술도 마찬가지로 각자 자기의 취향대로 작품을 즐기게 되는데, 그림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1대1로 해요^^. 그렇지만 많이 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으로 가격이 비싼 작가들은 결국 그 매출이 그 나라 안에서 이뤄지더라고요. 우리도 작품에 대한 투자가 늘었으니 앞으로 우리나라 작가들도 미래가 굉장히 밝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절대 내국민의 지지가 필요하죠.
9.다양한 커리어와 미술 분야의 일은 서로 어떤 시너지를 주고 받나요?
미술 분야 중에도 특히 컨템포러리 아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 없는 지식은 없다고 보면 되요. 제가 살아오면서 겪고 알아온 모든 것들이 다 예술을 이해하는 원천이 되지요. 3년 전 학점인정제로 컴퓨터공학과 수업을 들었던 본질적 계기도, 잭슨폴락의 프랙탈 아트, 히로시스기모토의 대놓고 쓰는 수학공식 아트, 제네러티브아트 등을 좀 더 특별하게 접하기 위한 미술수업이죠. 약간 ‘기승전 미술’ 이런 경향이 있긴 하지만, 미술은 모든 것을 이롭게 합니다
10.미래의 커리어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한마디로 ‘미술을 콘텐츠로 전체적 관리 경영을 하는 파트너’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함께 뜨겁게 퍼부어 일할 파트너’입니다. 돈도 아주 많이 벌어야죠^^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한 본업은 육아입니다. 아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앞으로 3년간은 사랑해 마지 않는 그림도, 열정을 쏟고 있는 사업도 모두 부업입니다. 최우선 순위의 일을 위해 여러 경험을 쌓아가며 배우고 있는 지금이 즐겁습니다. 아이가 독립할 때까지의 3년 동안, 큰 사업을 같이 할 파트너들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여러 일을 해본 덕에 추진력과 일정관리의 달인, know-where의 달인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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