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이 웃을 만했다… 대표팀 좌·우 에이스 대충돌, 훗날 이 비는 어떻게 기억될까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정규시즌 3위 자격으로 준플레이오프에 오른 LG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정규시즌 4위 두산을 2연승으로 격파하고 올라온 kt의 기세에 고전했다. 되도록 빨리 시리즈를 끝내고 플레이오프에 가는 게 중요했지만, 끝내 5차전까지 간 끝에 3승2패로 겨우 준플레이오프를 통과했다.
포스트시즌은 수준 높은 팀들이 전력으로 부딪치는 무대다. 100%, 아니 120%의 힘을 끌어다 쓴다. 정규시즌 한 경기의 체력 소모와는 완전히 다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크다. 게다가 LG는 준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유독 낮 경기 일정이 많기도 했다. 더 지쳤다. 선발이 버텨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불펜도 지쳤다. 포스트시즌 기간 동안 불펜으로 이동한 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는 5경기를 다 나갔다. 무리라는 것을 다 알지만,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발이 무뎌진 LG는 13일 삼성과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4-10으로 완패했다. 선발 최원태가 버티지 못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불펜 소모가 많았던 LG도 과감하게 승부를 걸기는 어려웠다. 결국 6회 이후로는 사실상 출구 전략을 선택했다. 타선도 방망이가 무뎠다. 게다가 2차전 삼성 선발은 올해 국내 투수로는 최고 성적을 낸 토종 에이스 원태인이었다. LG의 가슴이 답답했을 법하다.
그런데 여기서 LG에 행운이 미소를 지었다. 이날 대구 지역은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포스트시즌 일정 전체가 조정될 수도 있어 웬만하면 경기를 하려고 했지만 계속 비 예보가 있어 결국 순연을 결정했다. 양팀도 대체적으로 수긍했다. 부상 위험도 있었고, 만약 경기를 하다 비가 많이 내려 더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선발 카드를 하나 날릴 판이었다. 실제 대구 지역은 저녁까지 많은 비가 내려 이날 취소 결정은 현명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염경엽 감독이 웃었다. 지친 팀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었다. 게다가 LG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2차전 선발을 바꿀 수 있다. 당초 LG는 13일 2차전에 외국인 좌완 디트릭 엔스를 예고했다. 예고하면서도 찜찜했다. 올 시즌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엔스는 포스트시즌에서도 부진했다. kt와 준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8⅔이닝 동안 1패 평균자책점 7.27에 그쳤다. 그런데 비로 2차전이 14일 열리면서 손주영으로 선발을 바꿀 수 있었다. 트레이닝파트와 선수의 의사를 확인한 LG는 잽싸게 선발을 바꿔 예고했다.
손주영은 사실상 LG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만하다. 5전 3선승제에서 먼저 2판을 내주고 이를 뒤집은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확률적으로 희박하다. 그런데 여기서 최근 가장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는 카드를 낼 수 있게 됐다. 손주영은 시즌 28경기에서 144⅔이닝을 던지며 9승10패1홀드 평균자책점 3.79로 선전하며 올해 LG의 최고 수확으로 떠올랐다. 정규시즌 막판 컨디션도 좋았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불펜으로 활용됐다. 기대에 부응했다. 3차전과 5차전 중요한 승부처에 나서 7⅓이닝을 던지며 단 2피안타 1볼넷 11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최고 구속이 거의 시속 150㎞에 이를 정도로 쾌조의 컨디션을 과시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는 다시 원래 위치인 선발로 돌아왔다. LG로서는 손주영을 2차전에 쓰지 못해 내심 아쉬운 상황이었는데 비가 순번을 바꿔준 것이다.
손주영은 올해 삼성전에 강했다. 삼성전 3경기에서 17⅓이닝을 던지며 2승 무패 평균자책점 1.04의 짠물 피칭을 했다. 상대적으로 타자 친화적인 대구에서도 경기 내용이 아주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세가 좋다. kt와 준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구위는 좌완 에이스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LG의 승리 확률이 기적적으로 높아진 건 아니다. 삼성도 에이스 카드다. 원태인이다. 올해 리그 국내 선수로는 최고 투수였다. 시즌 28경기에서 159⅔이닝을 던지며 15승6패 평균자책점 3.66을 기록했다. 외국인 선수들이 독주한 개인 성적표에서 토종의 자존심을 지켰다. 2021년 플레이오프 당시의 부진 당시의 그 투수보다 또 성장했다. 올해는 진짜 에이스 면모가 기대되는 선수다. 휴식도 충분했다.
올해 LG를 상대로는 2경기에서 평균자책점 4.09, 피안타율 0.302로 다소 약했다. 최근 3년의 LG전 성적도 자신의 평균을 밑돈다. 그러나 원태인이라는 네임밸류는 그런 것들을 잠시 잊고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다. 1차전에서 홈런 세 방을 포함해 10점을 폭발한 타선도 든든하다. 수비도 리그 최정상급임을 다시 증명했다.
만약 손주영이 원태인을 요격하며 시리즈를 1승1패로 만들 경우 LG도 힘이 생긴다. 삼성의 3차전 선발은 황동재다. 4차전 선발로는 나흘 휴식을 하고 대니 레예스가 다시 등판한다. 코너 시볼드의 공백이 크기는 크다. 반대로 삼성이 손주영까지 무너뜨리면 시리즈 전체의 추가 삼성 쪽으로 확 기운다. LG가 준비한 가장 강력한 카드를 깨뜨렸다는 의미다. 삼성은 2승이라는 전적을 떠나 기가 살고, 핀치에 몰린 LG는 심리적으로 시리즈를 놓을 수 있다. 2차전이 중요한 이유다.
한편으로 두 선수는 오는 11월 열릴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 나란히 승선할 가능성이 크다. 원태인이야 당연히 우완 에이스다. 현재 대표팀에 좌완 선발감이 많지 않다는 평가도 있는데 훈련 소집 명단 중 가장 돋보이는 좌완 선발은 역시 손주영이다. 현재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젊은 좌·우완 에이스들의 맞대결에도 관심이 모인다. 플레이오프 시리즈가 끝났을 때, 과연 13일의 비는 어떻게 기억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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