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려 돈 버는 보통 직장인 사기 꺾는 ‘엄·카 펑펑’ 무늬만 직장인

결혼 후에도 모든 지출은 부모명의 카드로…야근·특근·승진 거부 등 회사 생활은 ‘설렁설렁’
[사진=뉴시스]

상속·증여세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결혼·출산 후에도 모든 지출을 부모님 카드로 해결하는, 이른바 ‘엄카족’이 급증하면서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단순히 세금 회피로 인한 세수 부족을 넘어 건강한 사회 분위기를 저해하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야근이나 특근, 심지어 승진까지 거부하는데도 부모님 명의 카드로 호의호식하는 ‘엄카족’으로 인해 생계를 위해 땀 흘려 일하는 보통의 직장인들이 절망감과 좌절감을 느끼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행위가 사회 전반에 무기력증에 빠뜨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탈세신고 간소화 및 보상 강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설렁설렁 회사 다니던 유부남 김 대리의 정체, 꼼수 절세 의심되는 ‘평생 엄카족’

서울소재 한 대기업에 근무 중인 직장인 강상철 씨(43·남·가명)는 같은 부서의 한 직원 때문에 고민이 많다. 보통의 신입 직원과는 태도나 회사 생활을 하는 마인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평범한 신입 직원이라면 업무를 익히고 팀원들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그 직원은 회사 생활 자체에 시큰둥한 편이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가끔 야근을 할 때도 있는데 그 직원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빠져나간다. 심지어 얼마 전까진 외국에서 학교를 나와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주변 동료들과 말도 섞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외국에서 거주한 기간은 고작 2~3년에 불과했다.

그 직원의 씀씀이 역시 남들과 다르다. 일찌감치 결혼해 아이까지 있다는 그 직원은 아직 신입사원임에도 이미 강남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 옷이나 악세사리 등도 고가의 제품을 많이 착용한다. 누가 봐도 ‘금수저’라는 것을 단 번에 알아 챌 정도다. 그런데 강 씨는 얼마 전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해당 직원이 아직까지 부모님 명의 신용카드를 쓴다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생활비부터 아이 교육비까지 전부 부모님 카드를 쓰고 본인의 월급 통장은 손도 댄다는 소리를 듣고 허탈함을 넘어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감정이 들었다.

▲ 편법 증여 사례를 발표 중인 국세청 관계자의 모습. [사진=뉴시스]

강 씨는 “평소 일에 의욕도 없고 회사 생활 자체를 크게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부모 잘 만나서 호강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며 “그런데 그런 사람이 세금을 아끼기 위해 꼼수까지 쓰는 모습을 보니 허탈감과 좌절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의 책임도 다하지 않고 회사 생활을 설렁설렁하면서 주변에 피해를 끼친 것 아니냐”라며 “법의 테두리를 넘나들며 꼼수를 부려가면서 누릴 것 다 누리는 것을 방치한다면 누가 희망을 품고 땀 흘려 열심히 일하겠나. 주변 동료, 나아가 사회 전체의 무기력증을 유발하는 행위라고 본다”고 성토했다.

현행 여신전문금융법에 따르면 신용카드는 타인에게 양도·양수가 불가능하다. 타인의 범주에는 명의자 본인을 제외한 배우자, 가족까지도 해당된다. 단, 미성년자 등 소득이 없거나 일반적으로 생활비를 지원받는 자녀는 예외다. 만약 타인에게 신용카드를 양도·양수한다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결국 결혼·출산 후 직장까지 다니는 자녀가 부모 명의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셈이다. 여기에 수익이 있는 자녀가 부모 소유 재산을 사용하는 것이므로 불법 증여로 비춰져 조세 회피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현행법 상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써 조세를 포탈하거나 조세의 환급·공제를 받은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포탈세액, 환급·공제받은 세액(이하 “포탈세액등”이라 한다)의 2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에 처해진다. 만약 불법 증여로 인정되는 금액이 연간 5억원 이상일 경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최소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세무당국 관계자는 “부모 명의 신용카드 지속적인 사용은 실수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어떠한 목적이나 의도가 있는 행동으로 비춰지기에 충분하다”며 “결국 조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불법을 저지른 것이기 때문에 사법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절세 목적 부모 카드 사용 현실적으로 막기 어려워…고령의 고액 자산가 지출 확인해야”

▲ 주요 대기업이 몰려 있는 광화문 일대 전경. ⓒ르데스크

문제는 단순 불법을 넘어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 ‘엄카족’ 행태에 제동을 걸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적발이 어려워 제재 시도조차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국세청이 주기적으로 부모의 신용카드로 호화 생활을 하는 ‘엄카족’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서곤 있지만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을 취득한 이들만으로 조사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 모든 직장인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벌이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는 탓이다. 결국 평범한 직장인 흉내를 내면서 호화생활을 해도 눈에 띄는 행보만 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세무당국의 감시망을 피해나갈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앞서 국세청이 ‘엄카족’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였을 당시에도 조사 대상에 오른 이들은 소득과 보유 자산이 눈에 띄게 차이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편법증여 적발 사례 역시 부모 돈으로 생활비와 거액의 대출금 상환을, 자신의 소득으로 주식·부동산 등 재테크에 투자한 경우나 신용카드·주택은 본인 명의이지만 소득이 현저하게 적은 경우 등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모두 주식, 부동산 등 실체가 있는 현물 자산을 취득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반면 현물 자산 없이 호화생활을 하다 적발된 사례는 사실상 전무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신용카드 실사용자를 확인하려면 전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밖에 없는 만큼 자산 취득자로 조사 대상을 선정한 것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상속·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법이 갈수록 고도화되는 만큼 조사 방식에 변화를 시도해 편법 증여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일정 규모 이상 자산을 보유한 고령층의 카드사용 내역을 조사하거나 신용카드 양도·대여 행위 근절을 위해 카드 가맹점에도 일정 부분 책임을 물리는 방식 등이 대안으로 꼽혔다.

경제시민단체 관계자는 “편법 상속·증여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데 반해 세무당국의 감시망은 여전히 허술한 측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며 “조사 대상 선정, 조사 방식 등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우리 사회 저변에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손해 본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데 조세 정의를 바로 세워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땀 흘려 일하는 게 최고인 사회’라는 인식이 생겨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