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외면 속에서도 꽃은 피고 있다(이만수 칼럼)

<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도 꽃은 피고 있다 >
치악산은 사계절 내내 다른 얼굴을 보여 주는 팔방미인의 명산이다. 그 산기슭 도시 원주에는, 산만큼이나 강인하고 조용히 빛나는 소프트볼 팀이 있다. 상지대학교 소프트볼 팀이다. 전국에 이름난 강호가 즐비하지만, 이들은 늘 열 명 남짓한 선수로 대회를 휩쓴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2025 회장기 전국소프트볼대회'에서 4전 전승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감독 이후정이 선수 10~12명을 데리고 전국무대를 제패한 세월은 길다. 그에게 "어쩌다 해마다 이런 성적을 내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담백하다. "처음 들어올 때는 평범한 선수들입니다. 실력 좋은 선수들은 낯선 원주까지 오려 하지 않지요." 하지만 평범함은 그의 손에서 재능으로 바뀐다.
팀의 가장 큰 무기는 '원주태장체육단지'다. 야구장 네 면, 소프트볼 구장 한 면이 한곳에 모여 있다. 덕분에 중·고·대학 지도자들이 한데 모여 훈련 노하우를 나누고, 선수들은 언제든 다른 팀과 합동 훈련을 할 수 있다. 인원이 부족하니 한 선수가 두세 포지션을 소화하도록 가르친다.
이후정 감독은 왜 훈련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땀 흘리는지 끊임없이 설명한다. 여자 선수들이라 개인적인 꿈도 많지만 "선수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동안은 개인 연습과 단체 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데이트도, 맛집 탐방도, 여행도 마음껏 즐기고 싶은 나이지만 우선순위는 분명하다. 대학생인 만큼 수업은 더 엄격하다. 오전이나 오후에 운동했다면 저녁 야간 수업은 전원 출석이 원칙이다. "공부해도 과 수석 하는 선수들이 있어요." 감독의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묻어난다. 그 과정이 힘들어 중도에 그만둔 선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버틴 이들은 졸업 뒤 "그때가 그립다"고 말한다. 실업팀과 사회 곳곳에서 그들은 당당히 자기 길을 개척하고 있다.
소프트볼은 비인기 종목이다. 진로와 취업은 늘 불안정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방망이를 쥔 선수들은 쉽게 손을 놓지 못한다. 30도를 웃도는 인조잔디 위에서 팔굽혀펴기와 런지, 스프린트를 거듭하며 얼굴이 까맣게 타도 웃는다. "진정한 대한민국 여장부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55년을 야구 한길로 달려온 나도 깨달았다. 야구(그리고 소프트볼)는 스포츠를 넘어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다. 낡은 시대의 호랑이식 지도 탓에 꽃 피우지 못한 재능을 얼마나 봐 왔던가. 오늘날엔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지도자의 연구와 성찰은 필수다. 원하는 방향으로 선수를 이끌려면, 먼저 선수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배우는지 공부해야 한다. 팀 색깔이 감독이 바뀔 때마다 흔들린다면, 전통이라 할 수 없다.
미국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뛰며 배운 것도 그것이었다. 아무리 이름난 감독이라도 새로운 팀에 가면 그 팀 고유의 색을 존중해야 했다. 전통이란 그런 것이다.
상지대 소프트볼의 전통은 단단하다. 이후정 감독은 사령탑이자 운전기사, 기숙사 사감까지 맡는다. 2016년 3월 취임 이후 10년째다. 그 세월 동안 팀은 몇 차례 해체 위기를 맞았지만, 그는 밤낮 가리지 않고 뛰었다.
강원도체육회와 학교가 재정 지원에 나선 배경에는 그의 뚝심과 헌신이 있었다.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운동하고 공부할 환경만 되면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장비 비용을 아끼고, 훈련과 학업을 병행할 시스템을 지켰다.

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은 언제나 '선수 수급'이다. 인기가 낮은 데다 힘든 종목인지라 지원자가 적다. 지난 몇 년간은 아홉 명밖에 없어, 경기 중 부상 한 명이면 기권해야 할 상황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 신중하다. 무리한 훈련은 금물이다. 열 명을 온전히 지켜 내기 위해 매일매일 훈련 강도와 일정을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지금도 그는 총장과 지역 체육회 도움에 고마움을 표현한다. 그리고 바란다. "비인기 종목이라 해도 우리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어 세계를 누비면, 그것만으로도 원주와 대한민국의 자랑이 될 겁니다."
프로야구는 1천만 관중 시대를 맞았다. 그 화려한 조명 뒤에서, 소프트볼 선수들은 사람들의 외면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있다. 그라운드에 흘린 땀방울이 언젠가 큰 결실로 돌아오리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방망이를 쥐고 앞으로 나아간다.
정리하자면 꼭 기억해 둘 건, 빛이 덜 비춰져도 꽃은 피어난다는 사실이다. 관중이 적고 지원이 부족해도, 가치를 믿는 이들이 땀을 흘리면 어느새 그라운드 한복판에 꽃이 선다. 상지대학교 소프트볼 팀이 그 증거다. 우리가 할 일은 그 꽃이 스러지지 않도록 한 번 더 시선을 주고, 응원을 건네는 일이다.
사진=헐크파운데이션 이만수 이사장
라오브라더스 구단주
SK 와이번스에서 감독으로 근무했음
SK Wyverns에서 수석코치로 근무했음
Chicago White Sox에서 Coach(으)로 근무했음
Indios de Cleveland에서 근무했음
국가대표에서 수위타자로 근무했음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근무했음
Hanyang University, Seoul에서 공부했음
대구상원고등학교 졸업
(편집자주 : 헐크파운데이션 이만수 이사장이 SNS에 올린 회고 글을 바탕으로 정리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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