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KBO 포스트시즌 중계방송을 하면서 이 질문 많이 받았습니다.
"대체 풀카운트에서 뭐라고 하는 건가요?"
답부터 말씀을 드리면 'Payoff Pitch'입니다.
SBS스포츠에서 정규시즌 중계방송을 하면서는 몇 년 전부터 가끔씩 썼던 표현이고 해설위원과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말씀을 드렸던 바가 있는데요.
아무래도 매 경기 이 용어를 이야기할 때마다 설명을 드릴 수는 없다 보니, 대중의 영역에서 방송이 되는 지상파 중계방송에서는 아무래도 이 용어에 대한 낯섦이 있었나 봐요.
또 많은 분들이 'KO 피치'라고 들으셨더라고요. 충분히 그러실만합니다.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을 했으니까요.

저는 제 첫 야구중계방송을 2004년에 MLB로 시작했습니다.
해외 중계방송의 경우는 현지 중계진의 중계방송 멘트가 있을 경우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라고 하더라도 오디오 감독들에게 현지 중계방송을 제 귀에 넣어달라고 하는 편입니다. 그러면 뜻은 모르더라도 분위기는 대략 파악할 수 있거든요.
얼마 전, 저는 1월에 방영될 다큐멘터리를 위해서 한국시리즈와 같은 기간에 진행이 됐던 '2025 항저우 여자야구 아시안 컵'도 중계했었는데요. 그때도 중국어 중계진의 방송을 들으면서 중계방송했습니다. 중국어로 아는 단어는 '니 하오'와 '셰셰' 정도밖에 없었는데도요. 그래도 중계진의 톤 변화에 따라 대략의 현장 분위기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영어의 경우는 잘은 하지 못하지만 지금까지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고, 덕분에 야구 서적도 두 권을 번역했습니다.
중계방송 커리어의 초창기에는 미국 캐스터들의 스타일도 많이 따라 해 보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따라 했던 것들이 마치 제 시그니처 멘트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들도 있는데요.
그 대표적인 멘트가 제가 예전에 홈런콜로 몇 차례 사용한 적이 있는
'담장 밖에서 뵙겠습니다.'
그리고
'투투피치'입니다.

'담장 밖에서 뵙겠습니다.'는 뉴욕 양키즈의 팀 캐스터 마이클 케이의 'See ya'에서 응용한 멘트입니다.
See ya는 다음에 보자는 작별 인사죠. 마이클 케이야 주 시청층이 뉴욕의 팬들이고 양키 쪽으로 기울어진 중계를 해도 문제가 없는 사람이니 양키즈 선수의 홈런 타구가 나왔을 때 '담에 봐요!'라고 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 팀만 방송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걸 그대로 쓰면 홈런을 허용한 팀에서 조롱처럼 느낄 여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하고 이걸 어떻게 바꿔서 응용을 해볼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중계방송을 듣다가 스티브 스톤(당시 해설과 캐스터를 번갈아 했던 방송인)의 홈런 멘트를 듣게 됐습니다. 2층에 올라갔던 대형 홈런타구였는데 이렇게 단어단어를 끊어서 길게 내뽑더군요.
"SEE! YOU! UPSTAIRS!"
'오! 이거 괜찮은데? 넘어가는 대상을 정해주면 되겠어.'
그래서 공이 넘어가는 대상으로 '담장 밖'을 콜에 넣기로 했고 그래서 탄생한 홈런콜이 '담장 밖에서 뵙겠습니다'입니다.

'투투피치'는 말 그대로 볼카운트 투투에서 던지는 공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MBC 양진수 캐스터의 중계방송을 참 좋아했습니다.
특히 그는 단어 하나로 좌중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절정이 '투투'였습니다.
저는 중계방송을 켜놓고 딴 짓을 하다가도 그가 낮은 목소리로 '투투'를 한 번 외치면 자연스레 화면으로 집중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느꼈던 건데 '투투'라는 볼카운트는 투수에게 정말 중요한 카운트더라고요.
2-2는 투수가 반드시 결정구를 던져야 하는 볼카운트고, 타자는 어떻게든 그 공을 때리거나 골라내야 하는 카운트였습니다.
볼카운트별 출루율을 확인해 보면 이 카운트가 얼마나 중요한 카운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위 표는 2025 KBO 정규시즌 볼카운트 별 타격 성적입니다. 사실 이 표만 놓고도 야구 이야기를 하면 한도 끝도 없이 나눌 수 있을텐데요. 일단 오늘은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12개의 볼카운트 중에 평행카운트는 세 번이 있습니다. 0-0, 1-1, 2-2 이렇게요.
이 세 경우에서 볼이 하나 늘어나면서 타자가 유리해지는 카운트는 1-0, 2-1, 3-2입니다. 그 변화중에 2-2에서 3-2만큼 극적으로 출루율에 큰 변화를 보이는 카운트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2에 대한 카운트 강조는 매우 중요합니다.
풀카운트가 되면 타자의 출루율이 25% 포인트 이상 극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에 타자는 3-2로 끌고 가야 하고, 투수는 여기서 승부를 끝내야 하는 카운트가 됩니다.
위와 같은 통계 정보 없이도 양진수 아나운서는 80,90년대에 볼카운트 2-2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송을 본능적으로 하고 있던 겁니다.

이 일을 시작하고, 저도 2-2 카운트를 강조하고 싶었지만 제 목소리는 양진수 아나운서만큼 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편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중계에서 쓰는 용어를 그대로 가져오기로 한 겁니다.
'투투'에 두 글자를 덧붙인 '투투피치'가 제가 찾은 해답이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중계 캐스터들은 매 2-2 카운트 때마다 '투투피치'를 외쳤거든요.
제가 처음 KBO리그를 중계방송 했던 2006년만 하더라도 볼카운트를 스트라이크부터 부를 때였습니다.
사실 당시 메이저리그 캐스터들은 스트라이크와 볼을 부르던 순서가 우리와 달랐기 때문에 제 딴은 이걸 편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제 투투피치는 '투 스트라이크 투 볼'이었다면 메이저리그의 캐스터들은 지금의 우리처럼 '투 볼, 투 스트라이크'였습니다.
순서는 달라도 투투피치는 공통의 용어가 될 수 있었고, 마치 제 고유의 멘트처럼 굳어졌습니다.
2012년 KBO의 볼카운트 표기도 볼 먼저, 스트라이크 나중이 됐고, 투투피치는 변함없이 쓸 수 있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그다음인데 바로 3-2 풀카운트에서 메이저리그 캐스터들이 주로 콜 하는 'payoff 피치'였습니다.
pay off는 '(그 간의 고생을) 보상을 받다'로 가장 많이 쓰입니다.
야구에서는 pay와 off를 붙여서 형용사 혹은 명사로 씁니다. '결과를 내는' 또는 '결과를 만드는 공'의 뜻입니다.
영어사전에 'payoff pitch'를 '결정구'라고 소개한 곳도 있던데 그건 stuff로서의 결정구가 아니라 결과를 정한다는 의미의 '결정구'로 봐야 합니다.
사실 저는 많은 메이저리그 중계방송을 들어봤어도 현지 캐스터들이 3-2 카운트에서 '풀 카운트 피치'라는 말을 쓰는 것은 과장 조금 보태서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볼카운트를 그대로 부르는 '3-2 pitch'를 씁니다. 그리고 payoff pitch를 여러 표현으로 다양하게 섞어 씁니다.
'Payoff pitch'
'Ready for the payoff'
'Payoff'
이런 식으로요.

저는 이걸 언제 어떻게 써볼까 거의 10년 넘게 고민을 했습니다.
사전에 소개하고 있는 '결정구'는 투수의 승부구인 'stuff' (혹은 일본식 표현인 'winning shot')의 결정구와 혼동을 줄 여지가 있어서 쓰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고, 최근 2~3년 전부터 그냥 'payoff pitch'를 그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정규시즌 중계를 하면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로 시작해서 2주에 한두 차례, 그리고 올해 와서는 3연전 중계에 한 두 차례 이 용어를 써봤습니다.
그리고 이번 포스트시즌에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 중계를 하면서 한 경기에 한 번 정도, 이걸 썼는데 귀에 익지 않은 용어여서 그런지 튕겨내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플레이오프와 코리안시리즈 중계방송에서는 이 단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하겠구나.'
생각하면서 말이죠.

물론 그 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께 중계방송을 서비스하는 제 입장에서는 '이건 맞는 표현입니다!'라고 강요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심지어 이번 포스트시즌 중계를 하면서도 틀린 표현을 써서 방송인으로서 매우 부끄러운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완벽한 중계를 꿈꾸지만 그게 맘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야구 중계방송에서의 단어 선택도 이렇게 어려운 것을 보면 야구가 어려운 건 비단 선수에게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