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 에디터들이 추천하는 이달의 책 4

오, 윌리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문학동네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마 중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웨이브에서 서비스 중인 HBO의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를 꼽겠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드라마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동명 원작이 담고 있는 얼음 칼 같은 서정을 다 품지는 못한다. 이 작가가 그만큼 섬세하게 줄거리 밖의 이야기를 짜낸다는 뜻이다.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다시 올리브〉로 이어지는 스트라우트의 사가가 바다 마을 이야기라면, 그 반대에는 루시의 이야기가 있다. 〈버지스 형제〉 〈내 이름은 루시 바톤〉으로 이어지는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들. 가난한 동네에서 자랐지만, 가장 화려한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가장 화려한 도시에 살면서 가난했던 과거와 대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 윌리엄!〉 역시 루시의 이야기에서 바통을 건네받았다. 부자로 태어났고, 부자로 살았으며, 상아탑의 온실에서만 움직이는 전 남편 윌리엄과 함께 노년의 소설가 루시 바톤이 움직인다. 소설의 중반부터 당신은 아마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다. 박세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리 매킨타이어 / 위즈덤하우스
이 책의 제목은 놀랍게도, 어떤 종류의 은유도 아니다. 말 그대로다. 가짜 뉴스 문제와 탈진실 시대를 연구해온 저자 리 매킨타이어는 실제로 ‘2018 플랫 어스 국제 학회’에 참석해 이틀 동안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무수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뿐만이 아니다. 석탄 광부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기후 위기와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듣는가 하면, GMO를 맹목적으로 불신하는 ‘유식한 좌파’ 친구들과 먹거리의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들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그것을 변화시킬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신입 회원을 끌어들이는 방식에서 가장 좋은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조용히 들어주고, 존중을 보이고, 대화에 호응하고, 약간의 신뢰를 쌓는 것.” 너무 당위적인 결론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촘촘한 연구 인용과 어마어마한 분량의 참고 문헌, 작가 본인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차분한 주장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오성윤


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필로소피 미디엄/ 한국경제신문
‘생각지 못한 변수’를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파워 J형의 인간인 내게 한 달에 책 한 권을 만들어내는 일을 함께하는 건 지뢰밭을 걷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퇴근을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육아는 그보다 훨씬 예측 불가능한 일의 연속이니까. 잠자리에 누워도 온갖 걱정은 계속된다. 그런 일상에 ‘철학’이 비집고 들어왔다. 책을 통해 직장생활에서 겪는 부정적인 감정 15가지를 저명한 철학자의 말과 함께 곱씹어본 덕분이다. 이번 달 마감을 하면서는 순자의 ‘허일이정(虛一而靜)’을 떠올리며 차근차근 일을 처리해나갔다. 그 정도 내공은 없지만, 생각을 가다듬는 건 예상보다 업무 처리에 큰 도움이 됐다. 물론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얘기가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다. 맹목적인 낙관이나 체념 어린 비관은 거부하는 게 철학자의 역할이니까. 그만큼 뜬구름 잡는 위로로 고민을 덮어버리지도 않는다. 우선순위를 알고 있으면서도 여러 일이 겹쳐 손에 잡히지 않은 경험을 나만 겪은 건 아닐 테니, 흔한 자기계발서보단 훨씬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김현유


이토록 작은 세계로도

김예진 / 북다마스
“바람 불면 넘어진대.”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마스에 책을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을 하겠다고 할 때마다 저자가 들은 말이다. 차에 파워 스티어링 기능이 없어 운전대를 돌릴 때마다 낑낑거려야 하고 최고 속도가 시속 99km밖에 되지 않아 고속도로에서 상향등 공격을 받기 일쑤지만, “레트로 같지 않아?”라고 웃어넘긴다. ‘이동 책방’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1종 보통 면허를 따고 중고차 시장을 돌아다니고 다짜고짜 카페에 찾아가 주차장을 내어줄 수 있느냐고 묻는 좌충우돌의 나날이 일기처럼 책에 담겨 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현실에 지친 그녀는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의 3등석에서 펑펑 울기도 하고 7500원짜리 우동을 먹어도 될지 한참을 고민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마스의 바퀴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세상에서 최고 좋은 직업을 가지신 것 같아요”라고 말해주는 사람, 추우니 카페에 들어와서 좀 쉬라는 사람, 응원한다며 간식을 건네는 사람이 있어서다. 역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박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