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가려진 아시리아의 역사… '잔혹한 제국' 뒤 '세계 최초 제국'을 읽다

최다원 2026. 4. 1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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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야마다 시게오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2015년 2월 26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동영상에서 캡처한 사진. 이라크 북부 모술 소재 니네바 박물관에서 고대 유물을 해머로 부수고 있다. AP=연합뉴스

전 세계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 조직인 이슬람국가(IS)의 공포 속에 떨던 2015년 2월. 외신을 통해 전해진 짧은 영상은 고대 제국 '아시리아'의 이름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아시리아 유물이 전시된 이라크 모술 박물관에서 석상과 조각품을 깨부수고, 군용 차량을 동원해 유적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IS의 행태에 유네스코는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며 정치·종교지도자 차원의 대항을 촉구했다.

사실 인류사에서 아시리아가 연구 대상으로 인식된 건 200년도 채 되지 않는 일. 구약성경에서 묻어나는 적개심 때문이었다. 유대인에게 아시리아는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약 20년 후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을 포위한 '민족의 원수'였다. 성경은 서구 문명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아시리아는 오랫동안 잔혹한 제국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기원전 2025년 무렵 작은 도시국가로 독립한 아시리아가 기원전 8세기 세계 최초 제국이 된 비결은 오로지 무력이었을까. 고대 오리엔트사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진, 야마다 시게오 일본 쓰쿠바대 교수가 쓴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는 방대한 1차 사료를 통해 균형 있는 시각으로 아시리아 제국을 해석한 책이다. 국내에 출간되는 첫 아시리아 통사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선 사료의 양을 기준으로 구아시리아, 중아시리아, 신아시리아를 구분해 서술을 시작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점토판 기록을 남기고 세계 최초의 도서관을 세운 아시리아에 있어 사료의 많고 적음은 국가의 흥망성쇠와 관련 있다. 점토판은 불에 타거나 썩지 않아 약 2,000년 동안 타임캡슐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고대 아시리아어로 쓰인 점토판 2만3,500점이 출토됐던 튀르키예 퀼테페-카네시 유적지. 국가유산청

기원전 2000년대 중반 오늘날 이라크 북부인 티그리스강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성립한 구아시리아는 상인들의 도시국가였다. 직선거리로 800㎞에 달하는 원격지 교역이 활성화돼 있었으며, 현대의 투자신탁을 떠올리게 하는 형식의 계약도 존재했다. 최고 통치자는 행정을 집단으로 관리한 엘리트 상인 중에서 해마다 한 명을 뽑았다. 왕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아시리아가 주변 도시를 지배하는 왕정국가로 변모한 건 기원전 1300년대 중반. 이때부터 이미 대국으로서 지위를 굳게 유지하고 있던 전통 국가 바빌로니아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다. 바빌로니아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원정에 나서고 끝내 정복에 성공하면서도 아시리아는 종교문화 중심지였던 바빌로니아의 문화를 파괴하기보다 수용하는 편을 택했다.

정복 지역을 고유 영토로 병합하며 영향력을 키워 나가던 아시리아가 초대국으로 발돋움한 신아시리아 시대는 기원전 10세기부터 350년 정도다. 이때 왕권 강화를 위해 단행한 새 수도 건설 과정에서 아시리아는 대대적인 강제 이주 정책을 실시한다. 현대인의 눈으로는 "이런 독재도 없다" 싶지만, 주민 간 결속을 약화시켜 반란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병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대륙을 횡단하는 역참 시스템을 개발해 지배에 활용한 것도 인류 역사상 아시리아가 처음이었다. 지방의 종교적·문화적 전통도 허용했으며 포로들이 가진 원래의 문화적 정체성을 정책적으로 완전 소멸시키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유대인 관점에서 쓰인 구약성경은 아시리아인의 유다 원정과 예루살렘 포위가 사실상 실패했다고 묘사하는 등 역사의 상당 부분을 각색하곤 했다.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야마다 시게오 지음·더숲 발행·403쪽·2만5,000원

지금의 시선에서 보면 비상식적이기 그지없는 점술은 대륙 곳곳에 심어진 첩보망과 함께 내란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불길한 징조를 재빨리 발견해 미리 막으면 변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가장 심각한 흉조로 여겨지는 일식과 월식이 다가올 기미가 보이면 전쟁 포로나 사형수, 왕의 적대자를 ‘왕의 대역’으로 세워 일정 기간 가짜 왕 노릇을 하게 한 뒤 살해했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 계속된 전쟁 속에서 불안한 왕위 계승을 반복하던 아시리아는 기원전 609년 바빌로니아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다. 구약성경 등 고대 서아시아 문서는 이를 '오만불손한 행동으로 신들의 노여움을 산 결과'라고 말하지만, 현대 연구자들은 몸집이 커질 대로 커진 아시리아가 정치·행정적 위기에 잘 대처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근도 유력한 설 중 하나다.

흥미롭기는 해도 한국에서부터 직선거리로 7,700㎞나 떨어진, 그것도 3,000년 전 제국사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감수를 맡은 이희철 서울디지털대 교수는 이렇게 썼다. "오늘날 아시리아 이야기가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이 제국이 무엇을 정복했는가보다 무엇을 기억하려 했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중동이 전쟁의 폭풍 속에 휘말려 들어간 지금, 우리는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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